[단독]고령화에 ‘老老상속’ 20조원… 5년새 3배로
고령층에 富 머물러 내수위축 악순환
전문가 “증여세 완화 등 대책 필요”
19일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세가 부과된 피상속인(사망자)의 나이가 80세 이상인 경우는 1만712건으로 전체 상속 건수의 53.7%에 달했다. 이들이 물려준 재산은 총 20조3200억 원(재산가액 기준)이었다. 전년보다 3조9100억 원 늘어난 규모로, 80세 이상이 물려준 재산이 20조 원을 넘은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5년 전(6조6100억 원)과 비교하면 3배가 넘는 규모다. 국세청 관계자는 “피상속인이 80세 이상이라면 상속 받는 자녀는 적어도 50대 중반은 넘긴 경우가 많다”며 “고령층 인구가 크게 늘어나면서 노노 상속 사례도 증가하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노노 상속이 늘어나면서 국내에서도 일본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은 늘어난 노노 상속으로 부가 돈을 쓸 곳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 넘어가지 않고 계속 고령층에 머물며 경제 전체에 돈이 돌지 않는 악순환이 나타난 바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자산에서 유동화시키기 어려운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노노 상속이 늘면 내수를 더욱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높은 증여세나 상속세 부담 때문에 자녀에게 미리 재산을 물려주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해외로 빠져나가는 자산도 적지 않다”며 “2차 베이비부머 세대(1964∼1974년)의 고령화까지 염두에 두고 부의 이전을 돕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稅부담에 증여 막혀 ‘부의 고령화’… 60세이상이 순자산 44% 보유
[고령화에 늘어나는 ‘老老상속’]
60세이상 순자산 10년새 3배로… “고령층에 부 몰려 내수 침체 초래”
老老상속 73% 부동산, 유동화 과제… “경제 활력 차원 세제 개편 필요”
수도권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이모 씨(58)는 최근 재산 일부를 미리 자녀들에게 넘겨주려다가 관뒀다. 시가 20억 원대인 아파트를 증여하려고 알아보니 증여세만 6억 원이 넘었다. 별다른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자녀들이 내기에는 큰 액수였다. 이 씨는 “결혼과 출산 등을 앞둔 자녀들에게 재산을 좀 나눠주려 했는데 세금 부담이 너무 컸다”며 “결국 공장 법인 주식을 자녀에게 증여하고 배당 등으로 조금씩 재산을 넘겨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노노(老老) 상속’이 5년 새 3배 이상으로 늘어난 데는 최고 세율이 50%에 달하는 증여세율도 영향을 미쳤다. 높은 부동산 비중도 미리 재산을 넘기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정부 안팎에서는 젊은 세대보다 씀씀이가 적은 고령층에 부가 집중되면서 내수 침체를 비롯해 경제 전반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높은 증여세 부담에 고령화되는 ‘부(富)’
19일 대학원생 장모 씨(35)는 “부모님이 올해 말 입주를 앞둔 서울의 한 신축 아파트 지분을 동생과 절반씩 증여받는 게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셨는데 세금 때문에 선뜻 결정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억 원이 넘는 해당 아파트를 증여받을 경우 그와 동생은 각각 2억 원 이상의 증여세를 부담해야 한다.
현재 30억 원이 넘는 자산을 증여하면 세율은 50%가 적용된다. 10억 원 초과, 30억 원 이하 자산인 경우에도 증여세율은 40%다. 세무법인 대륙아주의 강정호 세무사는 “과거보다 많은 자산을 보유한 고령층이 늘면서 자녀들이 경제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청년기에 자산을 넘겨주려는 경우도 많아졌지만 증여세 부담이 커서 직접 넘겨주기가 힘든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노노 상속의 73%가 부동산 자산
노노 상속이 늘면서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고령층이 부동산 자산을 유동화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부부 합산 1주택 이하인 기초연금 수급자가 10년 이상 보유한 주택 등을 팔아 연금계좌에 납입하면 최대 1000만 원까지 양도소득세를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고령층의 부동산 유동화를 돕는 것을 고령화시대의 중요한 과제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정부는 자녀가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양가를 합쳐 최대 3억 원까지 증여세 없이 재산을 물려줄 수 있도록 세법을 개정한 바 있다.
‘부의 대물림’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내수 활성화와 경제 활력 차원에서 자산 이전 문제를 바라볼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의 축적이 아니라 소비와 투자에 도움이 되는 경우라면 증여세 부담을 줄여주는 식의 대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며 “부동산에 집중된 한국의 자산 특징을 고려하면 양도세 대신 보유세 중심으로 세제를 개편해 쉽게 팔 수 있게 해주는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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