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 심장도 뚫는다… 발정기 사슴뿔 주의보 [방구석 도쿄통신]
사슴떼로 유명한 나라공원, 뿔에 찔린 부상 7배 급증
사슴을 통제하냐, 사람을 통제하냐 ‘딜레마’ 빠진 당국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르고, 일본은 한국을 너무 잘 안다.
일본 내면 풍경, 살림, 2014
국내 언론 매체들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를 주로 정치나 경제, 굵직한 사회 이슈에 한해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일본에서 교환 유학을 하고, 일본 음식을 좋아하고,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기자가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일본에서 진짜 ‘핫’한 이야기를 전달해드립니다.
‘방구석 도쿄통신’,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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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좀 가봤다 하는 독자분이면 오사카·교토와 인접한 간사이(関西) 나라(奈良)현을 가본 적 있으실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호류지(法隆寺), 길이 15m에 달하는 대불(大佛)을 볼 수 있는 도다이지(東大寺) 등 전통 있는 불교 사찰들로 특히 유명하죠.
하지만 관광객이 가장 꼽는 나라현의 명물(名物)은 도다이지와 가까운 나라현 나라시의 나라공원(奈良公園), 그중에서도 이 공원에 수놓듯 풀어놓고 사는 꽃사슴떼일 것입니다. 올 7월 발표 기준으로 1325마리입니다. 차를 타고 공원에 내리는 순간 자유롭게 어슬렁거리던 사슴들이 관광객을 반깁니다. 후각으로 스며드는 거리에 맘껏 배설된 정겨운 분뇨(糞尿) 냄새는 덤입니다.
인근 상가에서 먹이용 센베이(煎餅·전병)을 사 공원에 가면 주변에 사슴 수 마리가 금방 모여듭니다. 센베이를 줄까, 말까 하며 사슴들과 ‘밀당’하는 관광객이 자주 보입니다. 나라현이 이 공원 부지에 사슴을 풀어놓고 산 건 나라공원이 개원(1880년)하기도 전부터의 일. 그만큼 사람 손을 많이 타서 처음 보는 관광객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사슴의 눈을 보고 목례하면 답사로 고개를 꾸벅 숙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슴, 귀엽게만 봐선 안 됩니다. 한약재 녹용(鹿茸)으로도 유명한, 길게는 60㎝에까지 달하는 날카로운 수사슴의 뿔이 관광객을 해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지지통신은 지난 14일 나라공원을 찾은 관광객이 사슴 뿔에 찔려 다치는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발정기인 9~11월 가을엔 수사슴의 난폭성이 커지기 때문인데, 요새 그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올 9월 피해자 수만 35명.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일곱 배나 늘었습니다.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었다고 합니다.
나라현은 부상자 대부분이 사슴을 만지는 과정에서 뿔에 찔린 케이스였다고 밝혔습니다. 한 관광객은 허벅지로 뿔이 수㎝나 뚫고 들어와 크게 다쳤다고 합니다. 지역 담당자는 “수사슴이 예년보다 100마리가량 늘어난 것이 원인”이라며 “안전을 위해 8월쯤부터 하루 10~15마리씩 뿔을 잘라내고 있음에도 사고가 이례적으로 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 전문가는 “수컷들이 번식을 위해 주변 지역에서 나라공원으로 유입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습니다.
나라공원은 아니지만, 인근 교토 후쿠치야마(福知山)에선 지난달 초 농사를 짓던 68세 남성이 야생 수사슴 뿔에 의해 사망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뿔로 심장이 뚫린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나라공원 사슴은 기본적으로 국가 천연기념물입니다. 때는 768년, 나라현에 신사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가 세워졌을 때 신(神)이 흰 사슴을 타고 왔다고 고사기(古社記)에 쓰여 오랜 기간을 신성시돼 왔습니다. 사슴을 해치는 것도 당연히 금기시됩니다. 근데 반대로 사슴이 사람을 해치니, 당국 입장에선 비상입니다.
나라공원 인근 긴테츠나라역(近鉄奈良駅) 개찰구엔 지난달부터 ‘사슴에 손대면 안 된다’ ‘사슴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라’고 외국어로 적힌 경고문이 걸렸습니다. 나라 사슴애호회(鹿愛護会)까지 나서 시내 관광객 왕래가 잦은 전철역 열두 곳에 ‘발정기의 수사슴은 공격성이 높다. 최근 뿔에 의한 부상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전광판 광고를 달았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습니다.
지난 4일엔 나라 사슴애호회가 ‘사람과 사슴의 공생’을 주제로 회의를 개최, 관련 전문가만 무려 160명이 참가했습니다. 사람이 사슴을 만지는 것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등 규정을 강화해야 한단 의견이 주로 나왔습니다.
애호회 부회장인 나카니시 야스히로(中西康博)는 19일 아사히신문에 “과거 사슴은 ‘신의 심부름꾼’이란 거룩한 존재로 여겨졌지만, 갈수록 이들을 함부로 만져서 안 된다는 가치관이 통용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우려는 오랜 역사로 쌓인 야생 사슴들과 사람의 조화가 깨지지 않을까 하는 것. 행여 사슴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가, 공원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을까란 걱정이죠. 나라현 공원실(公園室) 관계자는 “공원에 오지 않는 게 좋다는 오해를 사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당분간은 사슴 접촉 자체를 금지할 것이냐를 두고 나라현과 관련 단체들의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나라공원에 여행 계획이 있으시다면, 고운 꽃사슴 얼굴 뒤로 가려진 포악성에 주의하세요. 센베이 ‘밀당’이 하고 싶으셔도, 안전을 위해 입에 곧장 밀어 넣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다음 주 다시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63~64편 링크는 아래에서 확인하세요.
“오사카 공항서 도톤보리까지, 이제 ‘터치’로 전철 타세요”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11/06/P5PBP4GAUFAQVC7NXHU24B2JQI/
데뷔 3년만 전국투어, J팝 신예 다음 목표는 ‘韓 진출’ ☞ 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11/13/BVLXSNO6TBED3LSMJBCWIKVS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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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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