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를 너무나 사랑했던 한 일본인의 부고[이즈미 지하루 한국 블로그]
35년간 한국에 살며 활동한 일본인 한국 영화 전문 저널리스트 쓰치다 마키가 지난달 25일,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홋카이도에서 열린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가, 개막식 다음 날 아침 갑작스럽게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13일 고향 야마구치(山口)현에서 장례식과 작별 의식이 열렸다. 나는 영화평론가인 남편과 가까이 지냈던 K 기자, 영화인 Y 씨와 함께 급하게 그곳에 다녀왔다.
그는 일본에서 한류가 시작되기 전인 1990년대부터 한국에 거주하며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일본의 영화 전문지 ‘키네마준보’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일본에 소개했다. 영화 자막이나 시나리오 번역 등 각종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한 영화를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일본 영화계와 한국 영화계를 서로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한 그의 공로는 결코 작지 않다.
내가 그를 언제부터 알고 지냈는지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여러 영화제나 영화 관련 행사장에 늘 있었고,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강제규 감독의 영화 ‘마이 웨이’의 시나리오 교정도 함께 했다. 낯가림이 심한 나와는 달리 겁도 없이 한국인 속으로 쑥 들어가 지내는 그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 어떨 때는 자기를 자랑하고 다니는 모습이 조금 거북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외로운 타지에서 같은 일본인인 그가 ‘도라에몽’처럼 둥글고 큰 덩치로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면 왠지 든든했다. 코로나 팬데믹 때 한참 보이지 않아 걱정하다가, 재회했을 때 기뻐서 ‘살아 있었냐?’고 농담하며 반가워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이별을 맞이하게 되니 말문이 막힌다.
오후에는 마키가 글을 쓰며 자주 찾았던 카페에서 작별 행사가 열렸다. 그 카페에서 보이는 바다를 건너면 부산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느새 가까워지며 한 사람씩 마키와의 추억을 공유하고 울다가 뒤집어지게 웃기도 했다. 여동생이 가업을 이어 남편과 함께 하기(萩)시에서 94년 된 양과자점 ‘겐 마쓰이치’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브랜디 케이크는 한국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이름난 간식이었다. 그로부터 선물받았던 이가 꽤 많았다고 추억했다.
그가 한국에서 고생한 것은 사실이다. 독하지 못해 제대로 보수를 받지 못하거나 돈을 떼여 힘들어하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 이후 고정된 거처 없이 지병 있는 몸으로 옮겨 다녔다. 하지만 그는 한국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역시 기쁘게 지냈다. 이달 5일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서울 용산의 한 호프집에 추모 자리가 마련됐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조의금이 모아져 전해졌다. 유족들은 눈물 흘리며 한국인들의 따스한 정에 감사했다.
그의 고향에 머무는 이틀 동안 우타코 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에서는 가족의 속도 많이 상하게 했지만, 그가 한국에서 잘 지냈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한국과 도쿄에서 온 사람들을 보며 속상했던 마음이 다 풀렸다고 한다. 나는 이번 일을 통해 조금 부족한 그였지만 한국인에게 사랑을 받았고 한국에서 행복하게 지냈다는 것이 피부에 와닿았다.
“韓国を愛し映画を愛した男の最後のエピロ―グ(한국을 사랑하고 영화를 사랑한 남자의 마지막 에필로그)”라는 여동생의 글이 장례식이 열린 절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과 한국인과 한국 영화로부터 사랑받아 더없이 행복했던 쓰치다 마키’로 그를 기억하고 싶다. 그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어 본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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