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어르신들은 뭐하고 놀까… 일단 한번 타보세요, 77번 버스!
올해 신문사 창간 77주년을 맞아 국제신문 박호걸·김진룡·신심범 기자는 창간기획을 내놨다. 7대 특별·광역시 중 고령화가 가장 극심한 부산의 노인문제를 들여다봤다. 더 정확히는 노인 여가, 그러니까 부산 노인들은 ‘뭘 하고 노는지’를 살폈다. 다룰 만하지만 새롭게 여겨지긴 어려운 사안에 장치 하나를 추가하며 ‘한끗’이 달라졌다. 관광버스로 부산 곳곳의 ‘어르신 핫스팟’을 찾아가 여가와 유흥을 직접 제공하고 취재에도 활용해서다. 박 기자는 14일 전화 인터뷰에서 “노인들이 친숙하게 느낄 장치로 버스를 생각했다. 같이 어울려 흔들고 노래하는 모습을 떠올렸고 버스로 부산을 훑자 싶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도 섭외해서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가 됐으면 했다. 바라던 그대로 되진 않았지만 어르신들과 벽을 허물고 접점을 만들기엔 충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박 기자가 취재원과 대화에서 ‘어르신들이 제일 신나하는 게 관광버스 안이더라’는 말을 들은 게 <77번 버스가 간다> 기획의 시작이었다. 버스를 활용한 이벤트, 복지 기사를 생각했지만 내근 차장으로 발령 나며 여건이 바뀌었고, 올해 2월 창간기획 준비를 위한 특별취재팀을 꾸리고서야 본격 재착수할 수 있었다. ‘창간’기획이 되며 ‘버스’와 ‘77주년’을 연계하는 게 필요해졌다. 마침 사옥 앞으론 부산 77번 시내버스가 다니고 있었는데 여기서 제목을 따고, 취재장소도 버스 노선을 중심으로 고르기로 했다. 9월1일 창간일 77일 전부터 매주 1회씩 총 11회차를 연재하는 구성도 정했다.
45인승 버스를 섭외했고 출동할 시기가 됐다. “어르신 뭐하고 노세요. 77번 버스가 간다” 플래카드를 부착한 채 77번 노선 근처 대표적인 노인 여가 장소로 10여 차례 출격했다. ‘치매 예방 체조’, ‘내장 튼튼 박수’, ‘성격 테스트’ 등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하고, 짧은 나들이를 했다. 이동식 부스처럼 버스를 활용해 “놀게 해주는 봉사단” 역할을 하고 “설문조사를 받는 장소”, “어르신 얘길 듣는 곳”으로 썼다. 신 기자는 “버스로 모시는 게 정말 어려웠다. 남자 두세 명이 ‘더위 피하고 가세요’, ‘버스 안에서 놀아드립니다’ 하니까 이상하게 보거나 무서워하는 일도 많았다”며 “초면인데도 버스에 스무 명이 모이면 한 분은 꼭 분위기 메이커였다. 성지곡에서 70대 할아버지가 강사 호응 유도에 큰 목소리로 답하고 옆 할머니를 찔러가며 분위기를 풀어주시는데 정말 감사했다”고 했다.
이벤트 요소가 첨가됐지만 기획 근간은 3인 기자의 현장 취재였다. 부산 사상구 학장동부터 금정구 부산대까지 노선을 따라 도심하천 변 운동터, 파크골프장, 마을회관, 무임승차 여행, 콜라텍 및 커피숍, 시청광장 내기바둑, 성지곡 요양, 미디어 이용, 복지관, 노인대학 등이 대상이었고 버스와 함께 또는 별도로 움직여 취재했다. 과정에서 65세 이상 노인 500명 대상 설문을 진행해 ‘혼자서’(사람). ‘돈 없이’(돈), ‘몸 덜 쓰는’(건강)이란 키워드도 뽑아냈다. 경제·사회·신체적 제약이 ‘그럼에도 잘 놀고픈’ 욕구와 만난 교집합이었다.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 경로당 등은 꺼리고, 지하철·버스로 구경 다니기를 선호하는 예상 못한 반응도 알게 됐다.
지하철 여행 등을 취재한 김 기자는 “도시락을 싸서 서면에서 다대포까지 와서 먹고 놀다 간다는 노부부를 만났고, 해수욕장 무료 행사를 구경 왔다가 막상 와보니 장애인 행사라 못 즐겼다는 노인 네 분도 봤다. 무료로 탈 수 있는 지하철이 어르신들껜 이동수단이면서 동시에 여행수단이란 게 달리 느껴졌다. 콜라텍에선 백구두, 찢어진 청바지, 베스트, 선글라스 복장의 노인들이 피크타임인 오후 2시에 맞춰 입장하려고 단체 대기하는 모습도 봤는데 젊은 세대와 다를 게 없었다”고 했다.
버스 ‘이벤트’로 출발해 ‘현장’과 ‘설문’으로 채운 기획은 두 달 넘은 연재 끝에 ‘어르신과 함께 하는 국제신문 생일잔치’란 8월30일 노인 초청 행사로 종점에 이르렀다. 취재 전반에선 “글씨가 잘 안 보이는 분들께 설문을 읽어주거나”, “아들, 사위, 딸 얘기를 계속 들어야 하거나”, “‘마, 나는 이기 편해’ 이상의 답을 얻기 위한” 과정이 필요했다. 특히 노인 대상 이벤트 준비는 “더운 날 쓰러질까봐 야외 활동은 지양”하고 “혹시 버스에 준비한 음식을 먹다 목에 걸릴까 과일을 제공”하거나 “버스에 모시려 공짜 어깨 스트레칭 기구를 준비하는” 세심한 고민이 요구됐다.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과 회사 지원으로 가능했던 예산 마련 및 운영도 쉽지 않았다.
각각 2013·2015·2018년 기자 일을 시작한 세 기자는 현재 노인은 과거와 다른데도 여전히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지적 관점에 머물러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박 기자는 “처음엔 병원 협찬이나 건강·재무상담 등도 버스 프로그램으로 염두에 뒀는데 쪼그라든 아쉬움은 있다”면서 “요지는 지금 노인은 상상보다 훨씬 젊고 과거 노인과 분명히 다른데 정책과 언론 취재는 ‘노인 빈곤’ 이슈 등에 몰려 있어 고민이 요구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 기자는 “지원대상으로 보는 인식 속에 노인 여가 연구나 산업은 제한적이었다. 계속 노인이 늘 텐데 재밌게 놀려는 젊은 노인들을 경제활동으로 유도할 여지도 있다고 본다”며 “돈이 많건 적건 공통적으로 ‘할 게 없다’고 하는 게 놀라웠고, 친구가 다 죽어서 놀 사람이 없다는 말에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했다. 신 기자는 “어려운 삶도 조명돼야 하지만 실제 지역을 지키는 노인 전반의 삶 자체를 긍정하는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어 의미 있게 느꼈다. 단순 재미가 아니라 여가에서 사회적 의미를 추구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향후 유심히 살필 지점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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