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 정도라니” 일본·대만 합쳐봤자…플라스틱 온실가스, 어떻게 줄이지? [지구, 뭐래?]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한국 기업들의 플라스틱을 생산에서 비롯되는 탄소배출량이 일본과 대만을 합친 수준이라는 연구가 나왔다. 환경단체들은 주요 플라스틱 생산국이자 국제플라스틱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 개최국으로서 한국 정부가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포함한 구속력 있는 협약을 이끌 것을 촉구했다.
국내외 15개 시민사회 단체가 연대한 플라스틱 문제를 뿌리 뽑는 연대(플뿌리연대)는 19일 서울 용산구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석유화학 산업이 플라스틱 오염과 탄소 배출을 심화하는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린피스가 이날 공개한 한국·일본·대만 동북아 3국의 플라스틱 생산 현황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플라스틱 원료(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능력은 연간 1992만톤 규모다. 일본과 대만의 연간 플라스틱 원료 생산능력은 각각 1304만톤, 902만톤으로 한국의 규모 절반에서 3분의 2수준이었다.
이는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국·일본·대만에서 플라스틱 생산능력이 많은 기업 순으로 보면 1위가 대만의 포모사, 2위가 한국의 롯데, 3위가 일본의 미츠이로 나타났다. 10위권으로 넓히면 이 중 7개 기업(한화·LG·DL·효성·SK·대한유화)이 4~9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석유화학 산업에서 공급이 수요보다 넘친다는 데 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 S&P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에틸렌 수요는 1억7653만톤인데, 생산능력은 2억2382만톤이다. 이들은 2010년부터 공급과잉이 지속되고 있으며, 2020년을 기점으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의 공급 과잉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이다. 그린피스는 가동률을 기준으로 보면 유럽은 70~75%, 일본은 90%를 밑도는데, 한국의 가동률은 70%에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다니엘 리드 그린피스 기후 에너지 캠페이너는 “단기 및 중기적으로 보면 에너지 비용이 오르고 경쟁이 심화한 탓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탈탄소’의 구조적인 변화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전통적인 탄소 다배출 산업들이 공격적으로 감축에 나서고 있어서다. 교통 부문에서는 내연기관 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이, 발전 부문에서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전세계 원유 수유에서 석유화학 산업의 비중은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석유화학산업의 원유 수요가 2030년까지 전체의 3분의 1, 2050년까지 50% 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플라스틱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봐도 한국이 일본과 대만을 압도했다. 한국의 탄소배출량은 4955만톤(2021년 기준)으로 일본(2761만톤)과 대만(2277만톤)의 배출량을 합한 양과 맞먹을 정도다.
플라스틱에서 비롯되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생산을 줄이는 데 있다. 플라스틱을 만들고, 쓰고, 버리는 전 생애 주기 중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약 85%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기 때문이다. 원유나 가스가 플라스틱 제품이 되기까지 시추부터 증류와 열분해까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매 단계마다 탄소가 배출된다.
2022년부터 네 차례에 거쳐 정부간협상이 이뤄졌지만 아직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두고 의견을 좁히지 못한 상황이다.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이 생산을 줄이지 않더라도 재활용 등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플라스틱 오염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서다.
물론 한국도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관해 침묵을 유지해왔다. 최근 김완섭 환경부 장관이 “플라스틱을 재활용하기보다 감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환경단체들은 네 차례에 걸쳐 열린 국제플라스틱협약 정부간협상위원회에서 한국 정부가 소극적으로 임했다고 비판했다.
유새미 녹색연합 활동가는 “공식 문서로만 판단하건대 한국 정부가 강력한 의견 활발하게 개진한 것 같지 않다”며 “르완다, 파나마, 러시아, 사우디 등 국가들이 복수의 의견서를 내며 협상장에서 강력하게 피력한 데 비해 한국 정부는 단 한번 의견서를 제출한 데 그쳤다”고 꼬집었다.
협약에 법적 구속력을 둘 지, 각국이 플라스틱 생산 감축량을 어떻게 정할지 등도 부산에서 열릴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에서 매듭 지어야 할 난제다.
아비게일 아길라르 그린피스 캠페인 스페셜리스트는 “법적 구속력을 가진 플라스틱 생산 저감 수단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게 국제플라스틱협약의 책무”라며 “엄격한 측정과 평가 보고 등을 바탕으로 각 국에서도 상응하는 조치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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