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바뀐 적 없다”지만…윤 ‘실용 외교’로 노선 트나

“미·중은 선택 문제 아냐” 발언 주목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5일(현지시각) 페루 리마에서 2년 만에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리마/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 회담에서 한-중 협력을 강조한 데 이어, 18일(현지시각) “한국에 있어 미국과 중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귀환을 앞두고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 역할론’을 부쩍 강조하는 모습이다. 윤석열 정부가 한-미, 한-일 중심의 ‘가치외교’에서 벗어나 실용외교로 전환하려는 신호가 아닌지에 관심이 모인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방문한 윤 대통령은 이날 브라질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 있어 미국과 중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며 “한국은 미·중 양국과 긴밀히 협력해나가겠다”고 했다. 그는 지난 15일 페루에서 시진핑 주석과 2년 만에 정상회담을 하면서도 “중국은 우리가 안보, 경제, 문화 인적교류 등 세가지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있는 중요한 국가”라며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내실 있게 발전시켜나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에 전보다 신중한 모습을 보이며, 러시아와 외교적 해결을 부쩍 강조하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와 관련해 “우크라이나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방어 능력을 갖도록 보충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방어 능력 보충’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뜻하느냐는 물음에 “우크라이나 특사단을 먼저 받아서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며 재고의 여지를 뒀다. 이 관계자는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뒤 거론될 것으로 예상되는 우크라이나 종전 문제와 관련해서도 “주러시아 대사관이 러시아 정부와 필요한 얘기를 수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이런 태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그동안 표방해온 가치외교에서 탈피해 균형·실용외교로 기조를 전환하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한-미, 한·미·일 협력 올인해온 외교안보 사령탑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방어적 변화 신호’를 넘어 의미있는 전략적 전환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지난 2년 반 동안 국익을 중시하는 우리 전략은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며 “중국과의 관계도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호혜적으로, 서로 한-중 관계를 계속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왔다”고 강조했다.

많은 전문가는 윤 대통령의 ‘방중’이 향후 외교 기조 변화를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각각 서로에게 방한·방중을 요청한 바 있는데, 시 주석은 내년 하반기 경주에서 열리는 아펙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건은 윤 대통령의 방중 시기다. 보수층을 중심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중을 했던 만큼, ‘의전’에 맞게 시 주석이 방한한 뒤 윤 대통령이 방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신봉섭 광운대 교수(전 선양총영사)는 “지금과 같은 불안정한 시기에서는 중국과 자존심 싸움을 할 때가 아니”라며 “윤 대통령이 과감하게 내년 초 방중해 북한 문제나 경제 등 우리가 필요한 현안을 풀고, 시 주석이 답방 형식으로 방한해야 한국이 외교·안보에서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리우데자네이루/장나래 기자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