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기자의 드라마 人 a view] 배우 문소리의 전천후 행보
-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 교수 役
- 젊은 배우와 호흡하며 초심 찾아
- ‘지옥2’ 연상호 감독과의 대화서
- 카리스마 정치인 캐릭터 완성해
- ‘정년이’ 태리 요청에 특별출연
- 천재 소리꾼 과거 가진 엄마 役
- 판소리 ‘추월만정’ 열창 도전
- 연습하고 녹음까지 1년 걸려
배우 문소리가 최근 연극부터 시대극, OTT 시리즈까지 전천후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녀는 2인극인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에서 예일대 교수 벨라 역으로 지난 10월 말까지 두 달 넘게 무대에 섰으며,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시즌2에서는 대통령실 정무수석 이수경 역을 맡아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 모습을 보여줬다.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에서는 정년이의 엄마 서용례 역을 맡아 흡입력 있는 연기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지옥’ 시즌2와 ‘정년이’는 특별출연임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줘 ‘역시 문소리’라는 말을 들었다.
최근 소속사 씨제스스튜디오 사무실에서 만난 문소리는 “비슷한 시기에 장르가 다른 세 작품이 공개되며 다양한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20년 넘게 해 온 것의 연속이고, 한 작품 한 작품씩 고민한 시간이 좋은 평가를 받아서 감사하다”며 “공개나 방송 시기는 제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한 번에 보여드릴 수 있어서 럭키비키한 느낌이다”며 즐거워했다.
그녀의 연기를 보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촬영에 임했는지를 알 수 있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담긴 진정성이 와 닿고, 표정과 몸짓은 대사보다 많은 의미를 담는다. 그녀는 “대본을 받으면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찾아내고 끌어낸다. 그 질문의 답을 계속 찾고, 연결되는 지점을 찾는다. 그러면서 뭔가 만들어가는데, 작품을 하는 동안은 강박증처럼 질문으로 가득 차게 된다”고 작품을 대하는 자세를 설명했다. 그리고 “작품이 끝나면 하루아침에 전량 폐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할까 고민한다”며 웃었다.
물론 ‘사운드 인사이드’ ‘지옥2’ ‘정년이’도 이런 질문과 고민의 산물이다. 문소리에게 세 작품으로 고민했던 것에 대해 들었다.
▮보약 같았던 ‘사운드 인사이드’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한 문소리는 과거 인터뷰에서 “연극은 보약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는 ‘사운드 인사이드’도 드라마 촬영에 지친 자신에게 보약 같았던 작품이었음을 밝혔다.
“공연은 루틴에 따라 움직이니 연습과 공연 기간까지 넉 달 이상 규칙적인 생활을 해서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또 연극은 작업하는 사람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 더 깊은 관계를 쌓게 된다. 그 사이에서 따뜻함도 많이 느끼면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규칙하고 먼 곳으로 가 촬영도 해야 하는 드라마에서 심신이 지쳤는데 연극을 하며 심신이 자연스럽게 좋아진다는 것이다.
2020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토미상을 휩쓴 동명 희곡의 원작 ‘사운드 인사이드’는 오랫동안 신작을 쓰지 못한 소설가이자 예일대 문예창작과 교수인 벨라와 재능 있지만 위태로워 보이는 학생 크리스토퍼가 소설을 매개로 유대감을 나누는 이야기다. 문소리는 내면의 고독함을 소중히 여기지만 시한부 판정을 받아 복잡한 심경을 느끼는 벨라 역을 맡았다.
연극에는 소설에 대한 대화가 많이 나와 색다른 시간을 가졌다. “잘 몰랐던 미국 작가들의 소설을 접하며 상투적이지만 힐링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벨라와 연결되고, 또 ‘사운드 인사이드’와 이어지더라. 그 과정이 진짜 재미있었다.” 앞서 언급한 ‘질문과 대답’을 통해 ‘사운드 인사이드’의 벨라를 만든 것이다.
상대역인 크리스토퍼는 트리플 캐스팅이었다. 연극이 처음이거나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들과 함께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너는 그래서 연기를 어떻게 하고 있니? 너는 지금 어떤 배우니?’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나눴다. 저 스스로에게도 그 친구들의 고민과 질문을 하게 되더라. 저한테 참 좋은 시간이었다.” 많은 기성 배우가 “연극을 하면 초심을 떠올리게 된다”는 말을 하는데, 문소리 또한 젊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연기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갔다..
▮연상호의 세계관으로 들어간 ‘지옥’ 시즌2
지난달 25일 공개된 ‘지옥’ 시즌2는 문소리와 연상호 감독이 처음 만난 작품이다. 정무수석 이수경 역을 맡은 문소리는 세상의 균형을 다시 맞추기 위해 새진리회와 화살촉 사이를 줄타기하며 극의 갈등을 부각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문소리는 고(故) 강수연의 영결식이 끝난 후 연상호 감독, 배우 양익준 등과 강수연의 단골집에서 모였을 때 ‘지옥’ 시즌2의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다.
“이수경 캐릭터는 답이 좀 안 나오더라. 판타지 장르 속 빌런처럼 접근해야 될지, 실제 정치인처럼 접근해야 할지 처음에는 모호했다. 그런데 작품 전체 속에서 내가 해야 할 미션이 무엇인지를 떠올리니 윤곽이 잡혔다.”
캐릭터를 완성하는 데 중요했던 것은 연 감독과 나눈 대화였다. “연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그의 세계 안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고,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지옥’이라는 세계관 밑에 은은히 깔려 있으면서 모든 인물의 컨트롤러를 쥔 인물로 이수경 캐릭터를 잡았다.” 작품을 하나의 체스판으로 생각하고 말들을 움직이게 하는 위치에 이수경을 놓고 캐릭터를 구축한 것이다. “솔직히 이런 식의 캐릭터 구축 방식은 ‘정년이’의 서용례나 ‘사운드 인사이드’의 벨라를 구축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수경은 마지막에 ‘2년 후 지옥에 간다’는 고지를 받고, ‘지옥’ 시즌2는 열린 결말로 마쳤다. 그래서 혹시 ‘지옥’ 시즌3에 출연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지 궁금증을 낳았다. “처음 대본을 읽고 시즌3 생각이 있으시냐고 문자를 보냈는데 ‘‘지옥’ 시즌3는 없다고 생각하라’고 하셨다. 물론 지금 그렇다는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나 빼고 (제작에) 들어가면 서운하겠다.(웃음)”
▮김태리와의 인연으로 시작한 ‘정년이’
대중성·화제성을 휩쓸며 지난 17일 종영한 ‘정년이’에서 문소리는 찬란했던 과거를 외면한 채 정년이(김태리) 엄마로 살아가는 사라진 천재 소리꾼 서용례를 연기했다. 특별출연임에도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까슬한 얼굴과 맛깔스러운 사투리로 무장해 인물이 지닌 감정을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여성 국극을 소재로 한 ‘정년이’의 출연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모녀 역으로 인연을 맺은 김태리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내가 제주도 살이를 하고 있을 때 태리가 집으로 놀러 온 적이 있다. 그때 태리가 ‘정년이’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태리가 판소리 레슨을 받는 것을 알고 있어서 ‘쉽지 않지?’라고 했고, 태리가 ‘연습하는 거 언제 구경 와요’라고 하더라. 태리는 제가 판소리 공부를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노린 것 같다.(웃음) 나중에 ‘엄마 해달라’고 했다. 안 하려고 했는데 태리가 자꾸 ‘언니가 엄마 해줘야 한다, 해줘’라고 하더라. 그래서 인연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이렇게 문소리와 김태리는 두 번째 모녀지간을 연기하게 됐다.
문소리는 대학 시절 국악 동아리 활동을 했고, 휴학했을 때는 고(故) 남해성 선생에게서 소리를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정년이’ 10회 엔딩에서 정년이와 함께 바닷가 바위에 앉아 일출을 보며 ‘심청가’ 한 대목인 ‘추월만정’을 떡목(성대가 상해서 소리가 탁해진 상태)으로 부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불렀다. 레슨 받고 연습하고, 후시 녹음까지 1년이 걸렸다. 소리하는 사람에게도 어려운 대목이어서 1년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남편(영화 ‘1987’을 연출한 장준환 감독)에게 들려줬는데, 남편은 ‘이걸 어떻게 드라마에서 보여주냐’고 물어보더라. 저도 시청자들이 이 곡을 끝까지 즐겨줄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소리가 부르는 ‘추월만정’ 장면은 방송가에 화제를 모았고, OST 음원으로도 공개됐다.
한편 김태리는 ‘정년이’에 등장하는 판소리와 국극을 연기하기 위해 무려 3년간 소리를 연습했다. 문소리는 그런 김태리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렇게 노력하는 배우를 참 오랜만에 본 것 같다. 너무 큰 짐을 지고 가는데도, 분명히 너무 힘든 게 눈에 보이는데도 참 씩씩한 기운으로 (‘정년이’) 전체를 잘 이끌어줬다. 어저께도 ‘대단하다, 너. 참 정말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선후배가 아닌 배우로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두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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