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땐 적과도 협력해 기회 찾는다 … 정의선 '프레너미' 전략
친환경차 경쟁하는 도요타에
수소 생태계 위해 손 내밀어
외국인CEO 영입 등 파격인사
자연스러운 글로벌화 유도
도심항공 등 미래산업 투자
전방위 포트폴리오 구축 나서
◆ 현대차 신경영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경영 행보가 거침없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리더십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현대차그룹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최근 추진하고 있는 라이벌 기업과 적극적인 협력, 파격적인 인사, 모든 형태의 모빌리티를 아우르는 제품군 확장은 정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혼자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예전의 순혈주의는 현대차그룹 같은 글로벌 기업에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라며 "정 회장이 과감하게 융합형 조직으로 변신을 꾀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식 경영전략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포인트는 경쟁사와 경합을 벌이면서도 협력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적극 협력하는 모습이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인 '프레너미(Frenemy)'라고도 불리는 이 같은 전략은 세계 1위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그룹과 협력한 것에서 도드라진다.
현대차와 도요타는 미국·유럽·동남아·중남미 등 세계 곳곳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펼치는 관계다. 대중적인 차를 만든다는 점에서 고객군도 겹친다. 이 때문에 최근 현대차가 도요타와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두 회사는 기존 내연기관·하이브리드 차량 부문에서 경쟁관계를 이어가지만 미래형 수소에너지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는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공조가 이뤄지는 데는 정 회장의 존재가 큰 역할을 했다.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한 기업 대표는 "도요타는 돌다리도 세 번 두들겨 보고 건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의사결정에 있어 보수적인 기업"이라며 "정 회장이 올해 초 도요다 아키오 회장을 일본으로 직접 찾아가 현대차그룹의 비전과 도요타가 얻을 수 있는 점에 대해 신뢰를 주지 않았다면 도요타가 한국 기업과 협력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 웨이모와 자율주행 분야에서 협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 회장은 자율주행기술을 위해 포티투닷을 인수하고 연구조직도 개편하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엄청난 자본력을 앞세운 미국 업체나 자율주행차 수천 대를 운행하며 데이터를 모으는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기에 벅차다는 판단에 따라 웨이모와 협력관계를 맺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차 입장에서 상대방에 기술을 내주는 건 '위기'일 수 있지만 상대에게서 받은 기술을 활용해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하면 '기회'가 된다"며 "이전의 현대차가 '위기'를 더 크게 보면서 라이벌 기업과 협업하는 데 몸을 사렸다면 '기회'를 강조하는 정 회장은 이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두 번째 포인트는 글로벌화한 인사다. 지난 15일 현대차그룹 사상 처음 외국인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된 호세 무뇨스 사장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임원뿐 아니라 기존 부장급에도 메타·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에서 성과를 거둔 인재들을 영입하고 있다. 한 현대차 직원은 "부서장이 한국말이 서툴러 자연스레 팀원들까지 영어로 소통하게 된 부서도 있다고 한다"며 "회사가 빠르게 글로벌화하고 있다는 점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기아에 몸담고 있던 시절에도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 사장을 영입해 기아의 체질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후 기용한 BMW 출신 알버트 비어만 사장 역시 현대차그룹이 만드는 자동차 성능을 두세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한 외국계 기업 HR 담당자는 "이 둘의 성공을 보면서 전 세계에서 통용될 제품을 만들려면 한국적 인사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점을 체득했을 것"이라며 "그 결과 인사에서 순혈주의를 버린 것이 정 회장식 경영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정 회장 경영 방식의 세 번째 포인트는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한 전방위적인 투자 확대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내연기관부터 하이브리드·전기차·수소차까지 모두 생산·판매하는 몇 안 되는 완성차 업체 중 한 곳이다.
이뿐만 아니라 도심항공모빌리티(UAM)를 비롯한 새로운 형태 모빌리티에도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대차그룹은 어떤 시장에도 대응할 수 있는 최적화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고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제품별로 강점을 지닌 파트너와 손잡는 것도 거리끼지 않는다.
GM과 협력해 북미와 중남미 시장에 맞는 픽업트럭 개발에 나서는 것이 좋은 사례다. 인도 시장에 적합한 소형차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출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승식 한국자동차연구원 원장은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최적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포기하거나 실패했다"며 "현대차그룹의 성공은 여타 자동차 업체들의 연구 대상이 될 정도로 특별하다"고 말했다.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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