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도 난방도 끊긴대요"… 현실이 된 `미분양 공포`
시행사 자금난에 전기요금 못내
한전, 공실 공과금 미납시 단전
신탁사 "주민불편 최소화 노력"
2~3년 전 부동산 침체기 당시 불거졌던 미분양으로 인한 입주자 피해가 현실로 나타났다. 미분양 공실의 공과금을 아무도 내지 않으면서 애꿎은 입주민들만 단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행사와 시공사, 신탁사, 대주단 등 사업 리스크를 짊어져야 하는 사업 주체들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인천광역시 서구 '청라가림스위트오피스텔' 입주민들은 최근 한국전력공사로부터 전기공급 제한 예고서를 받았다. 전기요금 미납으로 오는 25일부터 전기공급을 끊겠다는 통지였다.
전기 제한과 함께 급수펌프도 제한된다. 전기와 급수가 모두 끊기면 자연스레 난방도 불가능해진다. 입주민들은 공과금을 모두 납부했지만, 미분양으로 인한 공실의 공과금이 미납됐다.
통상 공실의 공과금을 포함한 관리 의무는 시행사에 있다. 하지만 시행을 맡은 가림이엔씨가 자금난을 겪으며 공과금을 미납했고, 이로 인한 피해는 입주민들만 겪고 있다.
가림이엔씨는 이 단지뿐 아니라 계열 '가림홀딩스'를 통해 시행한 파주 오피스텔에서 비슷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고, 현재 시공 중인 청라가림스위트오피스텔 2차는 공사가 멈춘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금난으로 공사비 지급도 하지 못해 가림이엔씨를 포함한 관계사 전반에 가압류가 들어온 것으로 안다"며 "계열 시행사인 가림홀딩스는 다른 법인이지만, 결국 윤정무 대표가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고 전했다.
입주민들은 자금력이 부족한 시행사를 대신해 건물을 위탁 관리하는 신탁사나 자금 집행 권한이 있는 대주단이 나서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신탁사와 대주단 모두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시행사의 자금난으로 인한 입주민 피해 사례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시행사가 20% 미만의 자기자본 비율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에서 대주단과 신탁사 등은 관련 책임을 모두 시행사에 집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부동산 개발사업은 대주단은 신탁사에 책임준공을 요구하고, 신탁사는 시공사에, 시공사는 시행사를 보증하는 구조다. 결국 자금력이 가장 부족한 시행사가 부도를 내더라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해당 오피스텔의 신탁사는 교보자산신탁으로 이 사업장을 포함해 가림이엔씨 3개 사업장을 관리하고 있다. 대주단은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신한캐피탈, IBK투자증권 등이다. 대리금융기관은 IBK투자증권이 담당하고 있다.
한 입주민은 "분양가가 5억원이 넘는데 공과금조차 내지 못해 단전이 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미분양 사태 리스크를 감수하고 입주한 입주민들은 갑작스레 '날벼락'을 맞은 꼴"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현재 단전 문제가 오는 25일까지 해결되지 않으면 한전과의 계약이 완전 해지되는 상황"이라며 "계약이 해지되면 이후 새로운 계약을 위한 보증금을 내야 하는데 입주민의 부담은 그만큼 커진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신탁사와 대주단 모두 건물의 관리 책임을 모두 시행사에 몰았다. 관련 계약서를 보면 건물의 수선과 보존, 개량비용 모두 시행사가 책임지도록 했다. 시행사가 부도 등으로 지급여력이 없더라도 신탁사나 대주단의 책임이 없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교보자산신탁 관계자는 "법적 책임과 별개로 입주민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대주단, 한전 등과 협의하고 있다"며 "신탁사가 자체 계정으로 관리비를 먼저 납부하고 대출금보다 선순위로 자금을 회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음 달 중 시행사가 가지고 있는 미분양 공실을 공매에 넘겨 자금을 확보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같은 방안 역시 대주단의 동의가 필요해 최종 결정까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현재 시행사가 해당 사업장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조차 상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주단이 관리비를 선순위로 올리는 것을 허용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신탁업계 관계자는 "최근 신탁사와 대주단 사이 이와 유사한 사례의 소송이 있었지만, 법원은 결국 대주단의 선순위권을 인정해줬다"며 "대주단은 이미 책임을 신탁사와 시행사에 떠넘긴 상황에서 손해를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수 단전과 함께 하자보수 처리에 대한 책임도 애매해졌다. 시행사가 하도급 업체에 공사비를 제대로 주지 못하면서 하도급 업체는 해당 건물의 하자보수 보증서 발급을 거절한 상황이다. 관리비가 해결되더라도, 입주민들의 피해는 여전한 셈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문제가 이미 예견된 사태였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개발사업구조는 분양이 잘되면 낮은 자본금으로 수천배의 이득을 볼 수 있지만, 사업이 안되면 자본금 10억이 안되는 시행사 하나만 부도내면 되는 비정상적인 구조"라며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침체했던 지난 2022년부터 결국 피해는 입주민에게 돌아갈 것이란 우려가 나왔지만, 아직까지도 이같은 사업구조가 유지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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