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최악 대기오염' 덮친 뉴델리…건물 형체 흐릿·상점 매출 50%↓
'초미세먼지 980㎍/㎥' 가스실 추락…"매년 그런 건데 뭐" 체념도
(뉴델리=연합뉴스) 유창엽 특파원 = 올겨울에도 인도 수도 뉴델리 대기는 '가스실' 수준으로 추락했다.
하루 중 대기 오염이 특히 심한 오전대를 골라 19일 뉴델리 도심의 대표 관광명소 인디아 게이트를 찾았다.
인디아 게이트 부근은 안개처럼 보이는 짙은 대기오염 물질로 가득했다. 불과 몇백m 앞의 건물은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다.
일부 관광객은 이런 대기오염 상황에 강하게 불평을 털어놨다.
뉴델리와 인접한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출신으로 뉴델리 시내 구경을 왔다는 산토시(52)는 "델리 공기가 매우 나쁘다"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세 살배기 딸의 손을 잡고 남편과 인디아 게이트를 구경하던 인도인 관광객 맘타(33)는 "델리 공기 오염이 심해 기침하는 상태"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 체념한 듯한 목소리도 나왔다.
인디아 게이트에서 스낵을 파는 상인 찬다르(70)는 "매년 공기가 이렇지 않으냐"며 "아무런 문제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공기가 안 좋으니 시민들이 외출을 줄이면서 장사가 잘 안된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인디아 게이트에서 차로 5분 거리인 상가 칸마켓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디빈다(54)는 "공기 오염 탓인지 손님이 평소보다 50% 격감했다"고 털어놨다.
뉴델리 동부의 한 길거리 과일가게에서 아버지를 도와 일한다는 엠디아키프(19)는 "하루에 보통 5천루피(약 8만2천원) 매상을 올렸는데 요즘 들어 매상이 2천루피(약 3만3천원)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심각한 대기오염이 지속되면서 약국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뉴델리 동부의 한 약국 직원인 사미르(25)는 "인후염 약을 찾는 환자가 최근 들어 예년에 비해 15%가량 늘어났다"고 전했다.
뉴델리를 비롯한 인도 수도권은 매년 10월 중순부터 최소한 이듬해 1월까지는 유해성 물질로 가득한 공기 속에 파묻힌다.
인도 매체에 따르면 뉴델리에서는 공기질지수(AQI)가 전날 483을 찍어 올겨울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이날 오전 492를 나타내 하루만에 기록을 경신했다.
인도 AQI가 400을 넘어서면 심각 단계로 접어든다. 기저 질환자는 물론 일반인도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받는 수준이다.
전날 뉴델리의 한 관측소에서는 초미세먼지(PM 2.5) 수준이 980㎍/㎥을 기록,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24시간 기준 권장 한도 15㎍/㎥의 65배에 이르기도 했다.
기상당국은 앞으로 2∼3일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 수도권의 대기 오염이 매년 심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곡창지대라 불리는 하리아나주 및 펀자브주 등 인근 농촌에서 추수 후 볏짚 등 잔여물을 태우는 행위가 오염 유발 1위 요인으로 현지 언론은 분석한다.
추수 잔여물을 태우지 않으려면 퇴비 등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노동력과 비용이 들기에 농민들은 그냥 태우고 마는 것이다.
난방·취사용 폐자재 소각에 따른 독성물질 확산, 저감장치 없는 발전소·공장 가동, 노후차량 매연, 기온 강하, 분지 특성 등도 오염 유발 요인으로 꼽힌다.
시민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 대책 마련을 당국에 촉구했다.
뉴델리 동부 주민 사티시 나이테나이(79)는 "추수 잔여물 소각을 막고 경유 및 휘발유 차량 운행 조건을 엄격히 적용해 오염을 줄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디아 게이트에서 만난 산토시는 "델리 당국이 경유 및 휘발유 차량 운행을 전면 금지하고 전기차 운행만 허용해야 한다"고 다소 과격한 주문을 하기도 했다.
인도 대법원은 전날 학생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해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대형 차량 및 트럭 운행을 제한하는 등 교통량 감축에 초점을 맞춘 조치 시행을 행정 당국에 명령했다.
당국은 대기오염이 악화할 때마다 이런 조치를 잇따라 내놓는다. 하지만 두드러진 효과는 아직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yct94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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