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받으려면 기술이전"…EU, 中기업에 지식재산권 요구

방성훈 2024. 11. 1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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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억유로 배터리 보조금 입찰부터 시범도입
중국이 외국 기업들에 요구하는 것과 유사한 제도
엄격한 환경규제로 EU 기업 경쟁력 약화 방지 목적
트럼프 대비·공급망 확보 '두마리 토끼' 잡기 시도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유럽연합(EU)이 중국 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대가로 지식재산권을 유럽 기업으로 이전토록 강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역내 자동차 산업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공급망 구축을 도모하는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에너지 정책 전환에도 대비하겠다는 취지다.

(사진=AFP)

18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두 명의 EU 고위 관리는 배터리 개발을 위한 10억유로(약 1조 4739억원) 상당의 보조금 입찰에 중국 기업이 유럽에 공장을 두고 기술 노하우를 공유하도록 요구하는 새로운 기준을 12월 처음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 관리는 우선 시범사업으로 진행해볼 예정이며 다른 EU의 보조금 제도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12월 입찰에 앞서 기준이 변경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중국이 자국 시장에 접근하는 대가로 외국 기업들에 지식재산을 공유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과 유사한 제도로, EU가 대중국 정책과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FT는 설명했다.

EU는 엄격한 환경 규제를 받는 역내 기업들이 환경 규제가 훨씬 덜한 국가에서 생산된 수입품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달 기존 10%의 세금에 더해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최대 35% 관세를 부과하기로 확정했다. 아울러 수소 보조금을 신청하는 회사에 엄격한 요건을 도입해 수소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전해조 부품의 25%만 중국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 대통령으로 재집권하게 된 것도 EU가 대중국 정책을 강경하게 유지하는 배경이다. 그의 측근들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의 상품 및 투자와 관련해 EU에 더 많은 장벽을 세우도록 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인이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 부과를 강행하면 중국 기업들은 이를 피하려고 생산기지를 EU 등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것으로 보이는데, 트럼프 당선인은 이러한 우회 수출까지 통제하겠다는 방침이다.

EU의 한 고위 외교관은 “우리가 트럼프의 일부 의제에 동참하려면 중국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EU 경제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 유럽 기업들이 저렴한 수입품에 의존하지 않고도 엄격한 기후위기 대응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등이 EU의 이러한 움직임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스웨덴에 본사를 둔 EU 최대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는 생산 목표 달성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현재 파산 위기에 내몰린 상태다.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엄격한 환경 규제에 적합한 전기차 모델로 전환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배터리 공급망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인데, 노스볼트가 파산하면 업계 전반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배터리는 생산 비용 측면에서도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이에 EU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중국 기업들이 유럽에 공장을 짓도록 독려하는 동시에 트럼프 당선인을 의식해 감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업체인 중국 CATL이 EU가 제시한 조건에 따라 독일과 헝가리에 수십억유로를 투자해 기가팩토리를 설립하기로 했다.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둔 엔비전 에너지도 스페인과 프랑스 시설에 수억유로를 투자하고 있다.

싱크탱크인 유럽개혁센터의 엘리자베타 코르나고 수석연구원은 “EU 집행위는 중국의 무역 흐름이 유럽으로 유입되거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에 대비해 무역 방어를 강화하려고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짚었다.

다만 그는 “중국산 부품에 대한 EU의 강경한 입장은 소비자가격을 낮추지 못한다. EU의 자동차 산업이 성장하고 나아가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관련해선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며 탈탄소화 노력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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