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반대했던 문명고 교사…“7년 만에 다시 반복돼 허탈”
“그렇게 고생해서 얻어냈는데…. 7년 만에 다시 반복된 걸 보니 허탈하죠.”
지난 18일 경북 경산시 남천면의 한 주택에서 만난 최재영씨(53)가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뭉치를 뒤적이며 이같이 말했다. 최씨는 문명고등학교에서 20년 넘게 국어를 가르치던 교사였다. 지난 2월 명예퇴직을 한 그는 2017년 박근혜 정부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로 문명고가 지정되자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주도했다.
최씨는 서류뭉치 속에서 당시 문명고 학생들이 촬영된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에는 교장실 앞에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은 재단이 아닌 학생이다’ ‘우리는 국정교과서 반대한다’ 등의 손팻말을 들고 줄지어 서 있었다.
그는 “문명고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신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학생들이 먼저 나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며 “(집회에 나선)학생들을 보며 직접 나서지 못한 동료 교사들이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연락해 왔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학생들의 반대 집회는 학부모까지 이어졌다. 재학생과 학부모 180여명이 학교 운동장에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자 학교 측은 자율학습을 하겠다며 학생들에게 등교하지 말 것을 통보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교 정문 철문 앞으로 등교해 여러 번 집회를 이어갔다.
최씨는 또래 교사 2명과 함께 국정 역사교과서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을 운동을 벌였다. 언론사와 인터뷰를 통해 문명고 국정 역사교과서 채택의 문제점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는 “한번은 전교학생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며 “지금부터는 어른들의 몫이다. 너희들은 학생이 해야 하는 공부를 해라고 말했다. 그때 더욱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재단 측은 2020년 2월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에 반대한 교사 5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2명은 중징계, 3명은 경징계를 추진했다. 징계 사유는 국가공무원법상 복종의 의무, 품위유지의 의무, 정치 운동의 금지, 집단 행위의 금지 등 위반이다. 반대 서명운동과 언론제보 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재단이 징계시효(3년)를 앞두고 뒷북 징계를 하자 비판 여론이 일었다. 이에 재단은 교사 모두에게 감봉 3개월 등 경징계로 징계 수위를 낮췄다. 교사들은 경징계도 부당하다며 소청을 청구했고 결국 경징계마저도 2020년 12월 ‘징계양정 과다’라는 결론이 나왔다.
최씨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 제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며 “학교 내부적으로도 이번 사태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교사들도 많다. 현명하게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명고가 채택한 학국학력평가원이 펴낸 교과서는 친일 인사를 두둔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축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이승만 정권에 대해 ‘독재’ 대신 ‘집권연장’으로 표현하는 등 독재 정권을 옹호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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