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사이먼 래틀 “조성진과 악단, 테니스 치듯 잘 주고받죠”
20~21일 롯데콘서트홀 공연
아시아 투어 공연 모두 함께 해
19일 오전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 연습실로 들어서는 그의 만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특유의 백발 더벅머리에, 눈썹까지 희끗희끗하다. 독일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이끌고 내한한 지휘자 사이먼 래틀(69)이다. 20~21일 두차례 롯데콘서트홀 공연에 앞서, 협연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함께 기자들을 만났다.
래틀은 대뜸 조성진 얘기부터 꺼냈다. “지난 세차례 투어에서 각기 다른 악단과 연주했는데, 그때마다 협연자는 조성진이었다는 게 재밌네요.” 래틀은 “조성진이 칭찬을 못 견뎌 하는 걸 안다”면서도 길게 칭찬을 이어갔다. “조성진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해요. 더 나은 연주를 들려드리기 위해서죠.” 이번에 연주할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설명할 땐 테니스 경기에 빗대기도 했다. “마치 테니스 경기처럼 악단과 피아니스트가 서로 의지하면서 주고받아야 하는 곡이에요. 서브가 너무 빠르면 상대가 받아넘기기 어렵듯이, 피아노가 잘 넘겨줘야 악단도 이를 받을 수 있거든요. 조성진과 연주할 땐 전혀 걱정을 안 해도 돼요. 이런 연주자는 매우 드물죠.” 래틀은 한국 공연 이후 일본에서 6차례, 대만에서 4차례 공연을 이어가는데, 협연자는 모두 조성진이다.
누구보다 ‘오케스트라 복’이 많은 지휘자가 래틀이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베를린 필을 16년 동안 이끌었고, 런던 심포니를 6년간 책임진 데 이어 지난해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했다. 클래식 전문 사이트 ‘바흐트랙’이 지난해 11개국 15명의 클래식 전문가들을 상대로 벌인 조사에서 1위 베를린 필, 2위 빈 필에 이어,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이 3위, 런던 심포니가 7위였다. 지휘자 선호도에서도 래틀은 키릴 페트렌코 베를린 필 음악감독에 이어 2위에 올랐다. 1949년 창단한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은 오이겐 요훔, 라파엘 쿠벨릭, 로린 마젤, 마리스 얀손스 등 거장 지휘자들의 손길로 단련된 명문 악단이다.
래틀에게 베를린 필과 런던 심포니,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적 차이를 묻자,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라면서도 “이 질문을 받으면 음식과 와인에 비유해 설명하곤 한다”고 했다. “처음엔 같은 독일 악단이니 베를린 필이나 바이에른 악단이나 비슷할 거라고 예상했어요. 직접 경험해보니, 베를린 필이 강렬하다면, 바이에른 교향악단은 부드럽고 유연하고 협력적이더군요.” 그는 바이에른 교향악단의 특성을 ‘연하고 무르고 매끄럽다’는 뜻의 독일어 단어 ‘weich’와 ‘진심 어린, 온화하고 부드럽고 고운’이란 의미의 ‘innig’로 설명했다. “오케스트라들이 기교적으로 많이 발전했지만, 시인과도 같은 오케스트라는 드물어요. 바이에른 교향악단이 바로 시인과 같은 악단이죠.”
그는 유머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지휘자로 불린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어색함을 깨트렸다. 통역자에게도 “내가 힘들게 한 건 아니냐”며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새로운 공연장이 들어서는 것 같다. 뮌헨 사람들도 여기에서 교훈을 좀 얻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뮌헨에 있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이 전용 공연장이 없어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연주하는 실정을 빗댄 것이다. 래틀은 2022년 엘지(LG)아트센터가 개관할 때도 기념 공연을 했다.
래틀은 가는 곳마다 새로운 실험을 펼치며 혁신적인 면모를 보여왔다. 베를린 필에선 ‘디지털 콘서트홀’을 추진했고, 청소년 음악 교육 프로그램인 ‘베를린 필의 미래’를 기획했다. 바이에른 교향악단에선 ‘현대음악과 고음악의 양 날개 전략’으로 승부를 펼친다. “갓 만들어진 새로운 현대음악 연주와 동시에 2년 전부터 시대악기로 고음악을 연주하고 있어요. 현대음악과 고음악을 모두 아우르는 특별한 악단인 셈이죠.”
20일 공연은 교향곡 2번과 피아노 협주곡 2번 등 브람스 작품으로 채운다. 21일엔 안톤 베베른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6개의 소품’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이다. 브루크너 9번 교향곡에 대해 래틀은 “충격적이라고 할 정도로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베베른의 ‘6개 소품’을 두고선, “말러와 바그너 작품의 분재와도 비슷한 작품”이라며 “음 하나하나에 무수히 많은 표현을 압축해 붓의 터치가 강렬한 회화와도 같다”고 했다. 조성진은 “1번 협주곡이 젊은 브람스의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면, 2번은 더 교향악적이라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소개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속보] 현대차 울산공장 3명 사망…차량 테스트 중 질식
- “김건희, 무당에 성경 읽어주는 여자” “여의도엔 이미 소문 파다” [공덕포차 2호점]
- KBS 박장범, 근무 중 40여 차례 억대 주식거래 해명 ‘오락가락’
- ‘윤 골프’ 방어, 납득 되십니까…국힘 “박세리도 희망 줘”
- 내가 쓰는 폼클렌저, 선크림 잘 닦일까?…‘세정력 1위’ 제품은
- 한국 사는 12살 벨루가, 캐나다 이사 가?…맘껏 헤엄칠 수 있다면
- 전주대 교수들 “김건희 특검, 윤석열 퇴진”…104명 시국선언
- 논 갈아엎은 농민들 “윤 퇴진” 상경집회…용산 향해 총궐기
- ‘명태균 무료 변론’ 김소연, 보름 만에 돌연 사임…“명씨 요청”
- 90만명 사상 추정…우크라전 1000일, 아직도 끝이 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