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에서 외교적 고립까지···중국 압박 맞서는 대만의 생존전략

박은경 기자 2024. 11. 1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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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성향의 민진당 정부가 들어선 후 중국은 여러 방면에서 대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10일 국경일 기조연설을 하는 라이칭더 대만 총통. 라이 총통은 이날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을 대표할 권리가 없다”면서 주권 수호 의지를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타이베이 시내 중심인 중정(中正)구의 한 건물. 입구에 대만 국민음식 우육면 식당이 있는 평범한 외관의 이 건물 6층에 팩트체크센터(臺灣事實査核中心·TFC)가 자리하고 있다. 겉으로는 여느 사무실과 같지만, 실제로는 대만에 무수하게 쏟아지는 가짜뉴스들을 가려내고 대응하는 ‘디지털 전쟁터’다.

민간 비영리조직으로 17명이 근무하는 TFC는 라인·구글·야후 같은 온라인 플랫폼과 협력해 가짜뉴스를 찾아내고 이를 검증해 대중에 알리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처음 발견된 2020년 1월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에 최초로 잠재적 허위 정부 위협을 경고한 팩트체크조직이기도 하다.

경향신문은 이달 초 대만 타이베이에서 외교부·대륙위원회·국가발전위원회 고위 관계자와 TFC 및 국방안전연구원 전문가들을 만나 대만이 마주한 고민과 대응책 등을 취재했다.

대만의 가짜뉴스는 먹거리부터 국제관계 등 국가안보 사안까지 다양하다. 명절에는 음식과 관련한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는데, 중추절(대만의 추석)을 앞두고는 유자를 먹은 뒤 물이나 땅콩을 먹으면 안 된다거나 소시지와 요구르트를 같이 섭취하면 독성이 생긴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센터는 가짜뉴스가 발견되면 전문가나 관련 부처의 검증을 거쳐 확산 방지에 나선다.

“가짜뉴스는 대만 민주주의를 혼란스러운 것으로 묘사”
대만 타이베이의 한 시장에서 한 상점 주인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대만은 휴대전화 등을 타고 급속히 번지는 가짜뉴스에 대해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TFC의 추자이(邱家宜) 최고경영자(CEO)는 “이런 소문은 공공 신뢰와 개인 의사결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가짜뉴스는 대만 민주주의를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묘사하려고 체계적 시도를 하고 있다”면서 “국내 문제, 외교, 국방과 관련해 대만 내부의 모순을 부각하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폄하하고 미국·일본 같은 동맹국에 대한 회의감을 조장하려 한다”고 했다.

TFC가 판명한 가짜뉴스 중에는 한국과 관련된 것도 많다. 지난달 15일 북한이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도로 일부 구간을 폭파하자 한국의 전차나 탱크, 군용기가 집결해 남북 간 일촉즉발 상황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떠돌았다. 검증 결과 이는 국군의날 행사 영상을 짜깁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관심이 쏠린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11월 초 우크라이나에 깜짝 방문했다는 허위영상도 돌았다.

선거철만 되면 황당한 뉴스가 더 활개를 친다. 지난 1월 대만 총통 선거 즈음에는 <차이잉원의 비밀역사>라는 출처가 불분명한 전자책이 떠돌았는데 차이 전 총통의 사생활에 대한 근거 없는 내용이 포함됐다.

최근 미국 대선 시기에는 사진·영상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렸다. 추 CEO는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이 수영복 차림으로 다정한 포즈를 취한 사진 등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된 가짜 사진은 손가락 길이, 각도 등을 통해 진위를 판명한다.

대만발 정보를 차단하는 중국과는 ‘기울어진 운동장’
대만팩트체크센터의 추자이 CEO가 마이크를 들고 말하고 있다. 사진 TFC

모든 가짜뉴스를 중국발로 볼 수는 없지만, 대만은 중국과의 ‘정보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고 우려한다.

추 CEO는 “중국은 대만발 정보를 차단하지만, 중국발 정보는 아무런 장벽 없이 대만으로 유입되고 많은 대만 사람들이 웨이보·위챗·샤오홍슈 같은 중국 플랫폼을 사용한다”면서 이는 정보가 중국에서 대만으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대만 여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은 가짜뉴스의 근원지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다. 한잉(韓瑩) 민진당 대변인은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대만의 부품 제조업체 이전을 요구하는 가짜 영상을 퍼뜨려 민심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안업체인 체크포인트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전 세계는 매주 평균 1876건의 사이버 공격을 받았는데, 대만은 4129건으로 전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만은 가짜뉴스를 단순한 정보 왜곡이 아닌, 국가의 안보에 대한 ‘군사적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2020년 4월 개정한 초중학교 국방교육 교재에 정보전 같은 현대전 개념을 포함하고, 가짜뉴스 등 허위정보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한 것이 대표적이다.

수교국 수 줄고 있지만 대만의 번영을 수교국 수에만 의존하지 않아

독립 성향의 민진당 정부가 들어선 후 안보 위협과 압박은 더 커지고 있다. 중국은 대만해협에서 군사훈련 빈도와 강도를 높이고 있으며, 외교적 공세도 높아져 대만 수교국은 빠르게 줄고 있다.

양안관계 사무를 담당하는 대만 대륙위원회의 량원제(梁文傑) 정무부주임은 “중국과의 관계는 오르락내리락했고 현재는 분명 ‘내리막’ 부분에 있지만, 이것이 우리의 문제라곤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국가들도 중국의 권위주의적 확장에 크게 우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 상황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면서 국방 예산 증대와 징병 기간 연장을 언급했다. 대만은 8년 연속 국방비를 늘리고 있으며 내년 국방비는 올해보다 7.7% 증가한 6470억대만달러(약 27조원)로 확충할 예정이다. 징병기간은 애초 4개월에서 1년으로 늘렸다.

중국과의 경제 교류는 계속 축소하고 있다. 량 부주임은 “예전에는 대만 대외투자의 80%가 중국 본토로 향했지만, 2023년에는 12%까지 떨어졌다”면서 “그동안 대만 전체 수출량의 30%가 중국으로 향했지만, 이 비율도 계속 감소 중”이라고 했다.

이 가운데 대만의 외교적 고립은 점차 심해지고 있다. 2016년 차이잉원 정부가 들어설 당시만 해도 22개국이었던 대만 수교국은 현재 12개국으로 줄었다. “대만 수교국이 만약 하나도 남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량 부주임은 그 가능성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중국의 압박과 통제로 모든 수교국을 상실할 수도 있다”면서도 “대만은 1971년 국제연합(UN)에서 탈퇴한 뒤 스스로 역할과 생존을 위해 노력해왔다. 수교국 증가는 자신감을 증대시키지만, 대만의 존재와 번영을 결코 수교국 수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우즈중(吳志中) 외교부 차관은 “반도체는 가격을 책정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는 가치를 매길 수 없다”고 말했다.

대만은 이런 배경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을 꼽는다. 우즈중(吳志中) 외교부 차관은 “반도체는 대만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전 세계의 관심을 받는 이유”라면서 “반도체는 값을 매길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TSMC의 가치는 1조 달러(추산)이고, 대만 국민총생산(GDP)은 8000억달러다. 그러나 대만을 대표하는 민주주의적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고 반도체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다.

타이베이 |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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