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풍향계] 옥스퍼드 출신이 택한 공정위, 연수원 수석은 금융위로… 기재부는 ‘미달부처’ 신세
행정고시 67회 합격자들의 부처 배치가 마무리됐다고 합니다. 19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5급 공채로 임용된 수습 사무관 311명은 이달 초 각 부처로 배치되어 실무 수습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일반행정직 수석 합격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기술 기반 부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결과라고 하는데요. 과거 소위 ‘힘 센 부처’가 선호됐던 것과 달라진 모습입니다. MZ세대 사무관들은 자신이 가진 전공 지식이나 관심사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부처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경제부처를 들여다보면 올해도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의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과거 부동의 1위라는 소리를 듣던 기획재정부는 올해도 인기가 시들했다고 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공정위에서는 법무행정직 수석 합격자인 박진재(30·남) 사무관이 들어오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박 사무관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정치·경제(PPE)를 전공하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거쳐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인재입니다. 연수원을 수료한 후 지난 7일 공정위 시장감시정책과에 배치되어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박 사무관은 공정위에 들어가기 위해 행정고시에 도전했다고 합니다. 그는 “사후에 사건을 맡는 법조인의 역할도 의미 있지만, 사전에 정책을 설계하고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공직자의 역할이 더 끌렸다”고 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전공인 경제학과 법학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선택의 이유라고 했습니다.
공정위가 MZ세대 사무관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로는 회식 문화가 자유롭고 조직 분위기가 비교적 유연하다는 점이 꼽힙니다. 2021년과 2022년에는 행정고시 64회와 65회 재경직 수석이 모두 공정위를 선택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실제로 공정위는 신입 사무관 배치 과정에서 평균 3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주요 경제 부처 중에서도 상위권의 인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금융위도 여전히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재경직 차석 합격자가 금융위를 선택해 배치됐습니다. 연수원 수석인 이지은(25·여) 사무관도 금융위를 택했습니다. 재경직 수석 합격자는 학업으로 인해 배치를 유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융위는 경제와 금융 시장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도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 요인입니다.
반면, ‘재경직의 꽃’이라 불리던 기획재정부는 올해 ‘미달부처’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기재부는 올해 24명의 신입 사무관을 받았는데, 그중 5명은 1~3지망에 기재부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재경직 수석이 늘 기재부를 선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으나, 이제는 정원이 미달될 정도로 인력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더구나 기재부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6명의 사무관이 퇴사 의사를 밝혔습니다. 행시 56~66회에 해당하는 젊은 사무관들로, 오는 12월 로스쿨 시험(LEET) 발표 이후에는 추가 퇴사자가 속출할 것이라는 소문도 돕니다. 최근에는 이직할 자리를 확보해 두지 않고 퇴사부터 선택하는 사례도 제법 있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업무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죠.
작년에도 기재부 사무관 5명이 동시에 전문 대학원으로 진학한 바 있습니다. 이들은 서울대 로스쿨과 고려대 로스쿨, 서울대 치의학전문대학원 등으로 입학하며 기재부를 떠났습니다.
한 기재부 사무관은 동료 사무관들의 퇴사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전했습니다. “승진과 보수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도 낮고, 개선하려는 의지도 부족하다. 간부들이 옛 세대라, 물질적인 조건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도 답답하다.” 기재부는 타부처에 비해 인원이 많아 승진이 느린 편입니다. 또 다른 사무관은 “간부나 인사 담당자 모두 자신이 있는 동안 문제만 생기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근본적인 해결을 미루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아무리 인기가 없어졌다지만, 기재부는 여전히 한국 경제 성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최전방의 주요 부처입니다. 정책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규모가 타부처를 압도합니다. 국가 전체 예산을 다루고, 경제정책방향을 잡는 곳도 기재부입니다. 기재부가 방향을 잘못 잡으면 다른 부처가 줄줄이 잘못될 정책을 하게 될 위험도 있습니다. 우수한 인재가 더 모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정부가 과연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지금처럼 일은 많고 승진은 느린데 “사명감을 갖고 일하라. 보람이 있지 않느냐”는 식이라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겁니다. 기재부만의 매력 포인트를 찾아야 합니다. 경제정책방향을 기획하던 실력으로 기재부가 옛 영광을 되찾을 방법을 찾아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기재부가 다시 젊은 인재들이 선망하는 부처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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