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 왔다가 등산·와인에 빠졌네...한국인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로이커바트 [깊숙이 스위스]
로이커바트의 매력은 온천에서 그치지 않는다. 황금색으로 물든 가들 포도밭을 보고 수백 년 역사 품은 고갯길도 두 발로 걸어서 넘었다.
로이커바트에서 온천만 하고 오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눈앞에 있으니 산도 한번 올라보고 아직은 미지의 세계인 스위스 와인에도 빠져 보자.
와이너리가 위치한 곳은 바헌(Varen)이라는 마을이다. 론(Rhone)강이 내려다보이는 경사면에 위치한 바헌 마을은 와인으로 유명하다.
분명 낯설었다. 싱그러운 녹색 물결만 생각했지 그 이후에 어떤 모습일지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오후 햇살을 듬뿍 머금은 포도밭은 버석거리는 노란 안개 같았다. 나른하고 따뜻했다.
바헌에서 삼대째 와인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바로니에 와이너리는 1969년 시작했다. 바로니에 와이너리에서는 18개 포도 품종을 키우고 와인은 총 45종류를 생산하고 있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간단히 마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와인 시음실로 이동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이미 두 팀이 있었다.
바헌까지 갈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로이커바트 마을 내에 있는 와인바 ’알 비노(Al vino)’를 추천한다. 바로니에 와이너리에서 생산한 다양한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첩첩산중 마을 로이커바트는 2000m가 넘는 고봉에 둘러싸여 있다.
동쪽 토렌트호른(Torrenthorn, 2998m), 북쪽 겜미 고개(Gemmi Pass, 2322m)와 발름호른(Balmhorn, 3698m), 서쪽에 다우벤호른(Daubenhorn, 2942m) 등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산봉우리다.
그저 벽 같은 산을 스위스 사람들은 흔쾌히 넘나든다. 바위 절벽을 자세히 보면 빨간 네모에 하얀 십자가, 스위스 국기가 보인다. 클라이밍 루트를 표시한 거다.
등산로도 있다. 커다란 바위산 비탈에 어찌 길을 낸 건지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다.
겜미 패스가 중요해진 것은 중세시대 때 일이다. 약 800년 전 이 알프스 위쪽에 살던 유럽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 이탈리아 밀라노까지 오가면서 교역을 했다.
200년 전 로이커바트 지역이 관광 명소로 개발하면서 덩달아 겜미 패스까지 주목을 받았다.
군인과 성직자, 상인들이 걷던 길을 마크 트웨인, 파블로 피카소 같은 유명 인사들이 방문하면서 로이커바트를 대표하는 명승지가 됐다.
2012년 설치한 비교적 신식 캐빈을 타면 약 10분 만에 겜미 고개에 오를 수 있다. 다만 케이블카 운영 시간이 계절마다 달라진다.
2024년의 경우 4월 15일부터 5월 31일까지, 11월 4일부터 11월 6일까지, 11월 12일부터 12월 21일까지는 케이블카 운행을 하지 않는다.
케이블카에 탑승하고 정상까지는 약 10분이 걸린다. 종착점에 다다를 때쯤 주의를 기울이니 지그재그로 꺾인 등산로가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겜미 고개 위 케이블카 정류장에는 각종 편의시설이 몰려 있었다. 숙박이 가능한 롯지, 절벽으로 삐쭉 튀어나온 전망대와 큰 규모의 식당과 사우나 시설까지 갖췄다.
겜미 패스 트레일은 발레주 로이커바트와 베른(Vern)주 칸더슈테그(Kandersteg) 잇는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 부르는 구간이 다르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2시간 30분, 중간중간 사진도 찍어가면서 걸으면 3시간 정도 걸린다.
관광업이 발전하면서 호텔로 바뀌었고 소설가 쥘 베른, 기 드 모파상, 마크 트웨인과 화가 파블로 피카소, 블라디미르 레닌 등이 다양한 유명 인사들이 호텔 슈바렌바흐를 들렀다.
특히 모파상은 이곳에 머물렀던 경험을 토대로 단편 소설 ‘여관(The Inn)’을 썼다. 알프스의 황량한 겨울 산속 여관에 고립된 산장지기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겨울 동안 두 명의 산장지기가 이곳을 지키는데 한 명이 실종되고 남은 한 명이 슈바렌바흐에 남아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 속에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행히 슈바렌바흐를 찾아갔을 때는 가을이었다. 다만 소설 이야기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 겨울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면서 걸었다.
산장 호텔은 아직도 그 기능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호텔 투숙객 손님은 줄고 레스토랑과 카페를 이용하는 손님이 늘어난 것이 달라진 점이다.
지금만큼 교통이 좋지 않은 시절 슈바렌바흐는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필수로 묵어가야 할 곳이었지만 지금은 3~4시간만 걸어도 고개를 지나갈 수 있다.
슈바렌바흐를 지나고부터는 완만한 내리막이다. 이곳에서부터 순뷔엘 케이블카 정류장까지는 4㎞ 거리다.
길을 걷다 보면 발레주와 베른주의 경계가 되는 곳에 나온다. 큼직한 바위에 긴 설명 없이 각 주의 상징 문장을 그려 넣었다.
베른주 문장은 빨간색, 노란색 띠 바탕에 혀를 내밀고 네발로 걷는 곰이 그려져 있고 발레주 문장은 빨간색, 하얀색 바탕에 별 13개를 새긴 모양이다.
경사면으로 난 길이 끝나고 분지 지형에 접어들자 나무와 수풀이 많이 보였다. 마지막 오르막 구간을 지나 순뷔엘 케이블카 정류장에 도착했다.
장장 3시간이 걸린 겜미 패스 하이킹. 상업적 목적을 위해 만든 길은 세월이 흘러 여행길로 바뀌었지만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호텔과 위압적인 풍경만은 예전 그대로다.
“여기까지 와서 온천만 하면 정말 아쉽지…로이커바트의 진짜 매력은 저 산에 있거든.”
현지인들이 입 모아 자랑하는 이유가 있었다. 묵직해진 다리를 이끌고 산을 내려오자 온천 생각이 간절해졌다.
등산과 온천, 한국인이 너무나 좋아하는 두 가지를 다 모은 로이커바트를 발견한 것은 이번 스위스 여행에서 가장 큰 선물이었다.
로이커바트(스위스) /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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