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흡한 준비, 청년의 좌절 … 혈세 들어간 '고립·은둔 청년 프로그램'서 벌어진 일
전국 최초 고립ㆍ은둔 청년 지원기관
서울청년기지개센터의 현주소
9월 개관 당시 사회적 이목 끌어
개관식에 오세훈 서울시장도 참석
커리큘럼 이슈하면 ‘일경험’ 부여
하지만 기간 불명확한 데다
일경험 장소도 확실하지 않아
게다가 청소직ㆍ관리직 대부분
일경험 담당할 업체도 거의 없어
서울시 “의욕 앞서 차질” 문제 인식
여기 '일경험을 하고 싶다'면서 밖으로 나온 고립ㆍ은둔 청년이 있습니다. '일경험 3개월'이란 말에 용기를 냈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걸, 기간은 3개월이 아니었고, 일경험을 할 수 있는 업종도 청소직이나 카페 관리직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예산을 받는 서울청년기지개센터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고립ㆍ은둔 청년의 심리를 분석해서 내린 결과라고 말합니다. 배려일까요? 편견의 소산일까요?
11월 초, 더스쿠프에 한통의 메일이 전해졌습니다. 보낸 이는 5년 동안 은둔해온 고립ㆍ은둔 청년 A씨였습니다. 그는 "서울청년기지개센터가 고립ㆍ은둔 청년들에게 일경험을 3개월 할 수 있다 해놓고, 1개월로 말을 바꿨다"고 토로했습니다. 큰맘 먹고 밖으로 나왔을 텐데, 상처가 큰 듯했습니다.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서울청년기지개센터는 고립ㆍ은둔 청년 지원사업을 하는 서울시의 민간위탁기관입니다. 현재 560여명의 고립ㆍ은둔 청년을 지원하고 있죠. 올해 4월부터 50여개의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했고, 9월 12일 정식 개관했습니다. 고립ㆍ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전담센터로선 첫번째 오픈이었기 때문인지, 개관식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석하는 등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A씨는 정식 오픈 3개월 전인 6월께 센터를 방문했습니다. 센터는 A씨에게 "총 24회의 프로그램(수업) 중 80%를 출석하면 3개월 동안 일경험을 할 수 있다"고 안내했죠. 오랫동안 집에서 은둔한 A씨는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첫 단추를 끼워줄 '일경험'이 누구보다 간절했습니다. A씨의 말을 들어볼까요?
"집에서 너무 오랫동안 은둔을 했기 때문인지 장거리 이동은 물론 사람 많은 공간에 가는 것도 어려웠어요.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공황발작이 와서 숨이 잘 안 쉬어지기도 했죠. 그래도 일경험이 정말 하고싶어서, 공황발작이 오면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 다니면서 출석을 했습니다."
A씨는 일경험을 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프로그램 마지막 날인 10월 25일 오후 5시. 기대감에 차있던 A씨는 '뜻밖의 통보'를 받았습니다. 일경험의 기간이 3개월이 아니라 1개월이라는 것, 외부기관 연계는 없고 '센터 내부'에서 청소와 관리만 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커다란 실망감이 밀려들었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화도 차올랐습니다. 한편으론 '자신과 같은 은둔청년이 이런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A씨는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맘먹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와 연결됐습니다.
"센터에 올 때는 정말 기대도 많이 했고 희망도 가졌어요. 제가 사회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센터에 신청을 하고 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이런 일이 생기니까 세상이 다시 싫어졌어요."
그럼 센터의 입장은 어떨까요? 들어보시죠. "6월에 있던 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 일경험은 1~3개월이라고 안내를 했습니다. A씨가 뭔가 착각을 한 것 같아요(센터 관계자)."
누가 진실의 혀를 깨물고 있는 걸까요? "은둔청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센터의 말을 십분 받아들이더라도 문제가 있긴 합니다. 무엇보다 센터는 프로그램을 등록한 청년들에게 '정확한 일정'을 공지하지 않았습니다.
일경험 기간이 1개월인지 3개월인지를 명시한 프린트물을 배부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류도 생겼습니다. 지난 7월 A씨가 센터의 B팀장과 나눈 대화를 들어볼까요? 상황을 좀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해 1문1답으로 상황을 정리해봤습니다.
A씨: "몇 달 일하는 건가요?"
팀장: "9월, 10월, 11월 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A씨: "그러면 석 달 정도네요?"
팀장: "네."
누가 들어도 '일경험 3개월'이라고 믿을 만한 답변입니다. A씨가 알고 있던 것처럼 '수업을 80% 이상 출석해도 일경험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센터가 할 수 있는 건 '면접을 볼 기회'를 주는 것뿐이었습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센터가 '일경험'의 질質을 지나치게 낮게 잡았다는 점입니다. 현재로선 센터를 다닌 청년들이 경험할 수 있는 일은 청소직과 관리직이 전부입니다. 그것도 외부 회사가 아닙니다. 센터 내부에서 하는 일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정리 및 미화' 직무는 분리수거ㆍ구역별 쓸고 닦기, 유리창문ㆍ거울 등 닦기ㆍ물품 정리(방 사용 후 뒷정리), 프로그램에 따른 책상배치 등을 담당합니다. '카페 관리' 직무는 주방 청소ㆍ물품수량 확인ㆍ물품 제공, 냉장고 청소 등을 경험합니다. '일경험'을 생각했을 때 흔히 떠오르는 직무가 아닌 건 분명합니다.
실제로 센터가 A씨에게 말했던 '일경험'의 종류도 달랐습니다. A씨의 말을 들어볼까요? "센터는 외부업체나 유관기관에서 일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일경험을 시작할 때까지도 센터 내부에서 청소나 관리를 할 것이란 귀띔은 없었죠."[※참고: 센터는 고립ㆍ은둔 청년의 '특성'을 고려해 일경험을 하는 장소와 직무를 골랐다고 말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답은 다소 황당합니다. 센터 측이 일경험의 자리를 제공할 '외부업체'를 제대로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은 외부기관과의 협업을 넓혀가는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센터 관계자도 "현재 다양한 기관과 협약을 준비 중"이라는 해명만 반복했습니다. 프로그램이 시작한지 반년이 흘렸는데도 외부기관들과의 협약을 제대로 맺지 못한 채 '리스트 업' 중이란 얘기입니다.
어떤가요? A씨와 센터의 입장을 모두 들어보면 한가지 결론이 나옵니다. 센터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겁니다. 서울시 관계자도 이 문제를 시인했습니다. "(센터가) 계획을 다소 의욕적으로 잡았어요. 센터를 9월에 개관하는 등 모든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이 새롭고 처음이라 일정이 늦어진 측면이 있죠. 한번 해보고 난 후엔 미뤄짐 없이 모든 프로그램을 제대로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류와 포부를 밝히긴 했지만 아쉬운 말입니다. 센터의 고립ㆍ은둔 청년 지원 사업은 봉사나 후원 개념이 아닙니다. 엄연히 서울시의 예산이 들어갔습니다. 서울청년기지개센터는 연 20억원이 넘는 예산을 받는 단체입니다. 그런데도 준비가 미흡했다는 건 다시 한번 검증해야 할 게 많다는 방증입니다.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고립ㆍ은둔 청년들을 '시범 케이스'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센터는 더스쿠프 취재진에 "1개월간 일경험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고, 여기에 참여한 청년들과의 면담을 거쳐 최대 3개월로 연장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직까지도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입니다.
A씨는 말했습니다. "이번 일로 실망이 커서 센터에 나가지 않고 있어요. 5년 만에 용기를 내 센터, 그리고 바깥세상으로 나갔는데, 다시 고립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청년들이 고립이나 은둔을 택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극히 예민할 수도 있고, 커다란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고립ㆍ은둔 청년과 대화할 땐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애씁니다. 그 중심엔 신뢰와 믿음, 그리고 지지가 있습니다. 고립ㆍ은둔 청년들의 사회 복귀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서울청년기지개센터는 고립ㆍ은둔 청년에게 정말 '신뢰'를 줬을까요? 이들은 '준비된 상태'에서 문을 열어젖혔을까요? 진심 어린 복기復棋가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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