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신이던 고양이, 어쩌다 ‘마녀의 상징’ 되었나
말 못하는 작은 가족 반려동물, 어떻게 하면 잘 보살필 수 있을까요.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국내 여러 동물병원에서 멍냥이를 만나온 권혁호 수의사에게 반려동물의 건강, 생활, 영양에 대해 묻습니다.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권혁호 수의사의 반려랩과 댕기자의 애피랩이 번갈아 연재됩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Q. 길고양이를 보호하는 분들을 흔히 ‘캣맘’이라고 하잖아요. 고양이를 돌보는 시민들은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는데 유독 고양이를 여성과 연관 짓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인식은 언제부터 생겨나게 된 걸까요?
A. 전 세계적으로 고양이 함께 사는 반려인의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미국 수의학협회(AVMA)의 2022년 통계를 보면, 반려고양이의 숫자가 약 7천400만 마리로 개 다음으로 가장 인기 있는 반려동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도 이미 반려묘의 숫자(884만 마리)가 반려견(705만 마리)을 넘어섰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농림축산식품부의 ‘2019년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서는 반려동물 1위는 여전히 개였지만, 최근 4년간 고양이 양육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고양이가 이렇게 ‘집사’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요. 수의사로 일하면서 느낀 것은 고양이가 흥미로운 동물이란 것입니다. 평소엔 우아하고 기품 넘치는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때때로 허술한 모습을 보여주고, 독립적인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듯하면서도 동시에 반려인과의 유대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신비한 매력 때문일까요. 고양이는 역사적으로 여성과 문화적인 연관성을 맺어왔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먼저 고대로 가보면 고양이는 여성적 신비함과 함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성을 나타냅니다.
고대 이집트의 여신 ‘바스테트’는 검은 고양이 머리를 가진 여성으로 묘사되는 신입니다. 태양신인 ‘라’의 자녀 가운데 하나로 다산과 풍요의 신입니다. 동시에 바스테트는 어둠과 혼돈, 죽음의 신인 ‘아포피스’와 싸우는 전사로 인류의 보호자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바스테트로 인해 고대 이집트에서는 고양이 숭배가 존재했고, 고양이를 미라로 제작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도 고양이가 나타납니다. 달의 여신이자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가 고양이로 변신해 팔이 뱀으로 뒤덮여 있는 무시무시한 괴물 ‘티폰’을 피하는 모습이 등장하는데요, 고양이의 민첩함에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르테미스는 고대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과는 달리 강하고 독립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여신입니다. 이처럼 고대에는 고양이가 여성의 창의적이고 긍정적인 면모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세로 넘어오면서 그동안 고양이와 여성이 상징하던 풍요와 생명력은 가려지고, 어둠·마녀·광기와 같은 어두운 측면이 강조됩니다. 특히 중세 유럽의 교회는 여성에게 순종, 임신과 육아 등 고정된 성 역할을 부여하면서 가정 규범을 따르지 않는 여성을 일탈적인 고양이에 빗대어 묘사했습니다. 이는 고양이와 여성 모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1566년 영국 최초의 ‘마녀 사냥 재판’인 ‘첼름스퍼드 재판’(Chelmsford trial)에서 처형된 영국 여성 아그네스 워터하우스는 주술로 동물과 남편을 죽였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그가 ‘사탄’이라고 불리는 반려묘를 조종해 소·돼지 등 마을의 가축들을 죽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혐의지만 그는 결국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도 고양이와 여성의 억울함은 계속됩니다. 당시 여성에게는 참정권(선거인이나 피선거인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이 없었거든요. 선거를 해도 투표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성의 정치적·사회적 평등을 요구하는 ‘서프러제트 운동’이 일었죠.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느냐 마느냐는 논의가 한창이던 이 시절, 반대파의 선전물에도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화가 윌리엄 헨리 엘람이 1905년 그린 풍자 엽서를 보면 화난 표정의 수컷 고양이가 ’그녀를 위한 투표’라는 카드를 들고 있는데, 그 아래는 ‘서프러제트: 수컷 고양이들을 무너뜨려라’라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참정권 운동에 대한 조롱과 비판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여성들이 기존 남성 중심의 사회 질서에 반기를 들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외에도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고양이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정책이라는 선전 포스터와 문구도 만들어졌다고 해요.
이 시대 미국에서도 비슷한 선전물이 나왔는데요, 남성이 가사 노동을 하면서 고양이와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투표권을 요구하는 가정주부들을 비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여성들은 이렇게 ‘집에서 편안하게 일을 하면서 왜 투표권을 요구하느냐’ 혹은 ‘그냥 집에 있어라’라는 비꼬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죠.
오늘날까지 여성과 고양이의 문화적 연결은 이어집니다. 영어권 국가에서 ‘캣 레이디’(Cat Lady)라는 단어는 ‘아이가 없고 집에서 많은 고양이를 키우는 등 사회성이 부족한 여성’이라는 모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는 합니다.
예컨대,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카멀라 해리스 후보처럼 생물학적 자녀가 없는 여성 정치인을 비난할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된 바 있죠.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러닝메이트인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 부통령 당선자는 과거 카멀라를 ‘캣 레이디’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세계적인 팝스타 테이러 스위프트는 대선 직전 카멀라 후보를 지지하며 자신을 ‘아이가 없는 캣 레이디’라고 표현한 적도 있죠.
이렇게 긴 세월에 걸쳐 여성과 고양이는 사회·문화적으로 연결되며 시대적 편견들을 겪어왔습니다. 고양이는 오늘날 대표적인 반려동물이지만 잡식성인 개와 달리 육식동물이며, 여전히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성향을 보입니다. 이런 고양이의 특징은 대하는 사람에 따라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어렵게 보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고양이와 여성의 상징은 어떻게 발전하게 될까요. 무엇보다 누가 어떤 맥락으로 이 상징들을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그것이 길고양이들에 대한 괴롭힘이나 길고양이를 돌보는 여성들에 대한 혐오는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권혁호 수의사 hyeokhoeq@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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