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1심 유죄 막전막후 [김지현의 정치언락]

“한 마디로 충격과 공포”(민주당 관계자)였다는 이날 판결의 막전 막후를 들여다보겠습니다.
① 여유

공직선거법 재판과 관련해선 당내 변호사, 검사 출신 의원들도 ‘무죄’를 자신해왔습니다.
변호사 출신인 박주민 의원은 “나도 10년 넘게 변호사 밥을 먹고 살았다. 항간에는 선거법 전문으로 소문도 나기도 했다”며 “‘내가 누구를 기억한다’ 이런 걸 갖고 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하기 시작하면, 정치 현실을 비춰봤을 때 아무도 정치 못 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역시 변호사 출신이자, 민주당 내 이재명 사법리스크 대응 기구인 사법정의특위 위원장인 전현희 최고위원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위반은 행위에 관한 것을 처벌하는 것인데, 이 대표 사안은 인식이고 기억”이라며 무죄를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민주당 법률위원장이자 고검장 출신인 박균택 의원은 재판 당일까지도 “당연히 무죄라고 본다. 증거상으로도 입증이 안 되고 또 법리상으로도 죄가 될 수 없다”고 했고요.
사실 당 내에선 재판 직전까지 ‘80만 원’설이 가장 유력하게 돌았습니다. 일부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이 대표의 의원직이나 피선거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100만 원 미만 벌금형이 나올 거란 예상이었죠. 이런 추정엔 이 대표가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을 경우 민주당도 지난 대선 때 보전받은 선거비용 434억 원을 토해내야 하는데, 법원도 제1야당을 상대로 그런 판결을 내리기엔 부담스럽지 않겠냐는 계산도 깔려 있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11일 라디오에서 “저는 (벌금) 80만원이 (선고)될 것 같다. 민주당의 대선 자금 문제까지 귀결되기 때문에 (이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의 1심) 재판부가 엄청난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가 여권 내에서 엄청난 비난 세례를 받았죠.
② 충격
이 대표도 재판 당일까지 사뭇 여유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애초 이 대표는 법원에 들어갈 때는 별도로 입장을 내지 않고, 대신 재판이 끝난 뒤엔 지지자들의 서초동 집회 현장을 찾아 발언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런데 막상 전혀 예상치 못한 결론이 나오자, 이 대표도 많이 당황한 듯합니다. 주문을 모두 들은 그는 재판장에서 한동안 말없이 판사석을 바라봤다죠.

법원에서 나온 이 대표는 이같이 말한 뒤 곧장 국회로 향했습니다. 이 대표가 법원을 빠져나간 시간이 오후 3시 10분이었는데, 당은 그 뒤로 2시간 반이 넘도록 공식 입장도 내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만큼 당황했다는 거겠죠.

국회로 간 이 대표는 이날 오후 5시 당 대표실이 아닌 자신의 의원회관 818호실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흔들림 없이 당무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하죠. 여권 내에서 “당장 당 대표직부터 내려놓으라”는 압박이 이어질 것에 대한 선제 대응이었을 겁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판사 출신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에게 “법관 출신 주제에”라고 했다가 “이재명 재판을 앞두고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당 안팎 비판에 부랴부랴 사과하고 당직까지 내려놨던 친명계 김우영 의원은 이날 밤 “포악한 권력자에 굴복한 일개 판사의 일탈에 불과할테지. 2심도 있고 최종심도 있으니까 아직 기회는 있을테지”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③ 분노
하룻밤 자고 난 뒤엔 다 같이 본격 분노의 단계로 접어든 모습입니다. 토요일이었던 이날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에선 민주당 현역 의원들과 지역위원장 등 195명이 참석한 비상 연석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를 마친 뒤 김준혁 의원은 “당원들이 잘못된 판결에 대해 분노하고 있으니, 좀 더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며 “임기단축 개헌에 대한 시민 요구도 있고, 탄핵을 더 강하게 말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으니, 이런 부분을 지도부가 판단해달라는 지역위원장들의 요구가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당 의원 41명이 참여한 ‘윤석열 탄핵 국회의원 연대’(탄핵연대) 공동대표를 맡은 민주당 박수현 의원은 이 자리에서 “오늘부터 ‘촛불행동’ 등 시민단체와 공동행동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죠.
이어 오후 4시부터 비 오는 광화문에선 분노의 집회가 열렸습니다. 공식 명칭은 여전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3차 국민행동의 날’이었습니다만 사실상 ‘이재명 유죄 반대’ 집회였죠.

그는 이날 ‘동지’라는 표현을 13번 쓰면서“동지 여러분, 이재명 팔팔하게 살아서 인사드린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지 여러분, 동지가 무엇입니까?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 아닙니까”라며 “나의 부족함을 대신 채워주고 너의 의지를 내가 대신 실천해 주겠다는 그런 약속을 나눈 사람들, 그게 바로 동지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동지들은 동지를 위해 이웃을 위해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힘껏 나서 싸워야 한다, 맞습니까? 우리는 동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래서 여러분, 포기하지도 말고 힘을 빼지도 말고 손가락 하나라도 놀리고, 전화라도 한 통 하고, 댓글이라도 쓰고,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으면 손 꼭 잡고 함께 참여해서 우리가 팔팔하게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나”라고 소리쳤습니다. “손가락 하나라도 놀리라”니 ‘개딸’의 원조격인 이 대표의 과거 팬덤 ‘손가락혁명군’이 떠오르네요.
이어 마이크를 넘겨받은 박찬대 원내대표는 “미친 정권에, 미친 판결”이라며 “(저들은) 이재명 대표만 꺾으면, 이재명 대표의 정치생명만 없애면 자신들은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고, 그 알량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단단히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④현타
당 일각에선 벌써 ‘현실 자각 타임’, 이른바 ‘현타’도 느껴집니다.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판결의 부당함을 주장하면서도 “사법부가 화가 많이 난 듯하다. 그동안 지지자와 당이 계속 재판부를 압박하고, ‘법관 주제에’ 등 실언한 것도 판결에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남은 25일 재판에 대한 두려움도 본격 엄습하는 분위기입니다. 한 지도부 의원은 “선거법은 걱정을 안 했는데 선거법으로 이렇게 뒤통수를 맞고 나니, 위증교사 재판도 만만치 않겠다는 걱정들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반명’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새미래민주당 전병헌 대표도 “오는 2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1심 사건이 야권 지각변동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전 대표는 “이재명 대표가 피선거권을 잃게 되면 붕괴가 될 수 있는 상황으로 3총 3김(이낙연·정세균·김부겸·김경수·김동연·김두관)도 경쟁력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더군요.

이 대표와 지난 전당대회 때 당 대표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다퉜던 김두관 전 의원 측도 토요일인 16일 “‘3김’으로 하지 말고 ‘4김’이라고 해서 김두관 전 의원도 항상 포함시켜 달라”고 언론에 공지했더군요.
한 비명계 전직 의원은 “지금 당장은 대안이 될 수 없겠지만, 내년 초가 되면 당 지형에 변화가 생길 수 밖에 없다”며 “이 대표 사법리스크가 심화될 경우 당장 내후년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들부터 이 대표와 선 긋고 나설것”이라고 내다보더군요. 원래 선거 앞 정치판에 의리란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단일대오’라지만 머지않아 각자 제 살길 찾는 시간이 올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일단 25일 재판부터 함께 지켜보시죠.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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