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가장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는 일론 머스크였다
도널드 트럼프가 돌아왔습니다. 2016년, 2020년 선거와 비교할 수 없는 압승이었고, 많은 이들에게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덕분에 트럼프의 귀환은 그 자체로 거대하고 복합적인 질문처럼 느껴집니다. 언론에도 예외가 아닌데, 이를테면 ‘미국의 제도권 미디어는 어째서 표심을 읽는 데 실패하였는가’와 같은 의문이 산적해 있습니다. 엘리트 미디어의 저널리즘은 부정당했고, 언론이야말로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패배자’라는 문구가 공공연하게 나돕니다.
이 복잡한 심사를 부여잡고 미국 언론들이 각자 복기와 반성에 나섰습니다. 족히 십수 년은 걸릴 프로젝트겠으나, 그 도입부를 훑는 일은 한국의 시민들에게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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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민주당도 뉴미디어를 쫓았다
트럼프 당선에 기여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조 로건이라는 인물이 꼽힙니다. 미국의 코미디언이고 유에프시(UFC·미국 종합격투기 단체) 경기 뒤 옥타곤에서 피범벅이 된 선수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찰진 답변을 끌어내는 해설자로도 유명한데, 오늘날 그의 가장 중요한 직장은 팟캐스트입니다.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JRE)라는 팟캐스트를 15년 가까이 진행 중이고,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개인 방송 콘텐츠 가운데 하나입니다.
선거를 약 열흘 앞둔 지난달 26일 여기에 트럼프가 출연했습니다. 이 회차는 일주일 만에 유튜브에서만 4000만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이 수치가 폭스뉴스, 시엔엔(CNN), 엠에스엔비시(MSNBC)의 시청자 수를 모두 더한 것보다 두 배 이상 많다고 소개했습니다. 2016년 선거 때는 보수 성향의 케이블 채널 폭스뉴스가 트럼프 캠프의 미디어 공신 소리를 들었으나, 8년 사이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부연하자면 폭스뉴스 시청자의 평균 연령은 69살인 반면, 팟캐스트 주 시청자 층의 약 60%는 35살 미만에 해당하지요.
트럼프는 조 로건의 쇼를 포함해 약 20개의 팟캐스트를 순회하였습니다. 정치 저관여층에 인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창구라는 점도 한몫 했고, 무엇보다 달라진 미디어 산업 지형에 맞춘 자연스러운 전략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팟캐스트 청취 인구는 10년 사이 세배 이상 증가했으나, 케이블 채널 가입자는 14년 새 35%가 줄었다고 합니다. 24년 전에 비해 발행 부수가 절반으로 떨어진 신문은 말할 것도 없지요. 더 많은 유권자와 소통하고자 한다면, 팟캐스트, 틱톡 등 뉴미디어를 공략해야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주류 미디어를 거부하고 뉴미디어를 포용하는 추세는 민주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1933∼1945) 이후 뉴욕타임스 공개 인터뷰를 거부한 첫 대통령이고, 카멀라 해리스는 타임지 인터뷰를 거절한 역사상 첫 대통령 후보였습니다. 대신 민주당은 인플루언서를 기존 미디어 조직에 모셔왔고, 해리스 역시 몇몇 팟캐스트에 나갔습니다. 조 로건 팟캐스트에도 출연을 타진했으나 캠프 쪽에서 방송 조건을 까다롭게 구는 바람에 불발된 점은 수백 가지 패인 중 하나로 분류될지도 모르겠습니다.
IT 공룡들, 공론장의 편집자가 되다
신문과 방송이 산업적 경쟁력을 잃고 있고, 그 영향력이 떨어지는 만큼 신뢰도도 낮아지고 있습니다. 덜 보기 때문에 덜 믿는 것인지, 덜 믿기 때문에 덜 보는 것인지, 선후 관계를 분명히 하긴 어렵지만 둘 사이 되먹임이 악순환을 낳고 있다는 점은 명백해 보입니다. 미국 갤럽의 연례 조사에 따르면 언론은 올해 만년 신뢰도 꼴찌였던 의회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응답자의 약 70%가 ‘다소’ 혹은 ‘전혀’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이 오욕의 수치를 들쑤신 가장 최근 인사로는 아마존 창업자이자 워싱턴포스트 오너인 제프 베이조스가 있습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가 36년 만에 지지 사설을 내지 않기로 결정한 뒤, 해명 기고글에서 이 여론조사를 거론했습니다. 즉 신뢰도 하락에 직면한 주류 언론은 지지 사설 같은 정파적 전통에서 벗어나, 팟캐스트와 소셜미디어에 뒤진 채 소수 엘리트만의 리그로 고립되어 가는 현실부터 자각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베이조스의 해명은 트럼프 눈치를 본 억만장자 오너의 자기 합리화라는 비판을 들었지만, 일말의 진실을 품고 있었습니다. 미디어 패권은 언론사가 아니라 빅테크 기업에 있다는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페이스북과 구글이 알고리즘을 변경하면서 언론사의 웹 트래픽이 곤두박질쳤다고 지적했습니다. 가장 낙폭이 큰 워싱턴포스트의 경우 2년 사이 검색을 통한 유입은 26%, 소셜미디어를 통한 유입은 52%가 감소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의 최종적인 게이트키핑 권한은 뉴스룸 편집국장이 아닌 페이스북과 유튜브, 구글의 엔지니어에게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이용자 개개인의 맞춤형 뉴스 큐레이터 노릇을 하는 알고리즘 덕에, 사람들은 각자 고유한 정보망에 갇혔고, 이것이 현대 인류의 정치적 양극화와 분열을 부추기는 핵심 원인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정부효율부’(DOGE) 수장으로 입각할 예정인 일론 머스크는 이 구조를 가장 영악하게 활용한 인물입니다.
머스크는 2022년 트위터를 사들인 뒤 ‘엑스’(X)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그간 혐오 표현을 일삼고 음모론을 설파하여 정지됐던 문제적 계정들을 대거 복원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절대적인 표현의 자유’라고 포장하지요. 유럽연합의 국제보도채널인 유로뉴스는 지난 6일 몇 가지 최신 연구를 인용해 머스크가 자신의 발언이 더 많이 퍼지도록 엑스의 알고리즘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머스크의 게시물은 엑스에 게재된 다른 모든 정치 광고를 합친 것보다 두 배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머스크의 엑스 계정은 트럼프 캠프의 가장 공격적인 홍보 스피커였던 셈입니다.
‘반트럼프 언론’도 트럼프를 도왔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팟캐스트부터 소셜 미디어까지 모두가 주류 언론을 따돌리고 트럼프와 놀아난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사실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미디어 연구자 루바 카소바와 비비시(BBC) 출신 미디어 컨설턴트 리처드 애디는 미국 대선 전인 지난달 25일 경제지 포천에 ‘민주당 성향의 뉴스 미디어가 자신들도 모르게 트럼프를 돕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언론의 성향에 관계없이 트럼프가 해리스보다 더 많이 언급되었고, 이는 트럼프의 브랜드를 대중적으로 각인하는 효과로 이어지면서 무당층·스윙보터 유권자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필자들은 트럼프가 지난 세 번의 대선에서 모두 민주당 후보보다 높은 언급량(시엔엔, 폭스뉴스, 엠에스엔비시 기준)을 기록했다고 지적합니다. 수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2016년 7∼10월: 트럼프 61%, 힐러리 클린턴 39%
―2020년 7∼10월: 트럼프 59%, 조 바이든 41%
―2024년: 트럼프 57%, 해리스 43%
이 보도 격차는 해당 뉴스의 긍정·부정 여부와 무관하게 트럼프가 선거 의제를 결정하고 판을 주도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대통령 선거와 같은 거대한 마케팅 게임에서는 무엇보다 인지도를 높이는 일이 최우선 전략인데, 여기서 트럼프는 리버럴 성향의 언론을 포함해 대부분의 매체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이런 이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모양인지 트럼프가 본인 측근들에게 이런 말은 한 적도 있다는군요.
“당신이 소아성애자가 아니라면, 세상에 나쁜 언론은 없다.”
극악무도한 악인이 아닌 이상 언론 보도를 타는 일은 무조건 이롭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브랜드 이론을 어디까지 검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트럼프 당선을 원치 않았을 언론들도 트럼프를 더 열심히 보도했고, 그 배경에는 언론사가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낼수록 더 많은 트래픽으로 돌아오는 뒤틀린 보상 구조가 있었습니다. 짐짓 모른 체하며 이러한 타성에 올라탄 주류 언론도 어쩌면 트럼프 귀환의 공로자일 수 있겠습니다.
미디어 잔혹사는?
유튜브 댓글부터 저녁 뉴스 날씨예보까지 미디어의 영토는 드넓습니다. 늘 논쟁이 끊이질 않는 영역이지요. 이곳에 익숙하고도 새로운 전선이 들어섰습니다. 언뜻 정치적 이전투구에 지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실은 우리의 일상에 깊이 연루된, 자유에 관한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 투쟁담을 중계해드립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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