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기지촌 여성들과 그 후손들은 아직 정의를 찾고 있다” [플랫]
그레이스 M 조 뉴욕 시립 스태튼아일랜드대학 사회학·인류학 교수는 미군 기지촌 여성의 후손이다. 지난해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책 <전쟁 같은 맛>(글항아리)은 한국전쟁과 기지촌 생활, 미국 이민과 조현병을 살아낸 어머니 ‘군자’의 생애를 담고 있다. 조 교수는 지난 13일 어머니와 비슷한 삶을 살아낸 여성들이 머물렀을 경기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가 철거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철거 저지 농성장을 찾았다. 그는 “살아남은 기지촌 여성들과 그 후손들은 아직 정의를 찾고 있다”며 “그들을 위해서라도 철거 대신 아픈 역사를 기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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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만난 조 교수는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건물을 보자마자 ‘감옥’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여성들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감옥에 가까웠다”며 “철조망이 쳐진 탓에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는데 사람들이 그 안을 보며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노력을 막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성병관리소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정부가 미군기지 인근에서 이뤄지는 여성들의 성매매를 조장·방조해온 흔적이다. 정부는 성병 치료라는 명목으로 이곳에 여성들을 강제 수용했다. 여성들이 철창 안에 갇힌 원숭이 신세라는 뜻에서 ‘몽키하우스’라고도 불렸다. 동두천시는 이 일대를 소요산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건물을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성병관리소 철거는 단순히 국가폭력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는 폭력과 부정의를 토대로 세워지기 마련이지만 그로 인한 피해자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고, 그렇기에 또 다른 폭력이 반복되는 것”이라며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최근 동두천시 관계자들이 언론 기고를 통해 “성병관리소는 수치의 상징”이라며 “더는 아이들이 어두운 역사를 마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그 자체로 또 다른 폭력이라고 꼬집었다. 조 교수는 “기지촌이 ‘수치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껏 정부가 국가폭력을 인정해오지 않던 기조와 일관적”이라며 “기지촌 여성들에게 가해진 구조적 폭력 위에 더해진 ‘상징적 폭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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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교수는 어머니 개인사를 통해 아픈 과거를 직시해야 하는 이유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23세 때 조현병을 겪던 어머니가 미국 이민 전 한국의 기지촌에서 일하며 아버지를 만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조 교수는 “어머니가 자신의 삶에 대해 거짓말을 해온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며 “어머니가 조현병으로 큰 고통에 시달린 배경에는 기지촌에서 일했던 트라우마가 있었음을 그제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의 삶을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충격을 보듬었다고 했다. 조 교수는 “어머니의 과거를 알게 된 뒤 어머니가 겪었을 트라우마를 공유할 수 있게 되니 고통스러웠다”면서 “어머니가 기지촌 여성이 된 것이 개인적 선택으로 일어난 상황이 아니라 일본 식민지배부터 한국전쟁, 미군 정주 등 여러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답할 때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조 교수는 성병관리소 철거를 둘러싼 논쟁이 사회가 불편한 과거를 어떻게 직면할지 논의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논의하는 연습을 미리 해두지 않으면 앞으로 불거질 여러 역사적 문제에 끊임없이 망연자실하거나 제대로 대처하는 방법을 모른 채 살아가게 될 것”이라며 “한 세대가 말하지 않는 비밀은 다음 세대로 전유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억눌린 트라우마는 또 다른 트라우마를 낳는다”고 했다.
▼ 김송이 기자 songyi@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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