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으로 잘라라” vs “안된다”… 전례 없는 ‘예비비’ 싸움 벌어진 국회
예비비 3년 간 줄여오다 내년 6000억원 증액 편성
정부 “일반+목적 법적 기준보다 엄격한 관리 규모”
VS “대통령 순방 부적절 동원 반복이 근본적 원인”
올해보다 6000억원 증액된 내년 ‘예비비’를 두고 여야의 싸움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예산 심사 과정에서 예비비가 큰 쟁점이 된 적이 드물어 정부로선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정부는 국가재정법이 규정하는 예비비 편성 규모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내년 예산을 책정했고, 미 대선에 따른 국제 정세 변화 등 불확실성이 커져 증액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야당에선 불어난 예비비가 ‘해외 순방’에 쓰이는 등 정부의 쌈짓돈으로 전락해 버렸다며 감액을 주장하고 있다.
19일 기획재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정부가 내년도 ‘예비비’ 명목으로 편성한 예산안은 4조8000억원이다. 올해 예산(4조2000억원) 대비 6000억원 증액한 것이다. 재해 대책·인건비·환율 변동 대비 등 예산총칙에서 규정한 목적에 따라 쓰는 목적예비비는 4000억원 증액한 2조6000억원, 그 외 요인으로 정부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일반예비비는 2000억원 증액한 2조2000억원으로 편성됐다.
예비비는 올해 국회 예산심사 과정에서 별안간 쟁점으로 떠올랐다. 야당은 지난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에서 정부 예비비 규모를 ‘절반’(2조4000억원)으로 깎은 안을 단독 처리했고, 이에 맞서 여당은 예산안을 제외한 법률안을 일괄 상정해버렸다.
이를 두고 여당은 “야당이 요구한 증액 사업에 동의하지 않는 데 따른 보복성 행위” 라고 비판했다. 야당은 “예비비를 삭감한다고 하니 증액을 받지 않겠다고 여당이 몽니를 부리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민주당 소속 정태호·임광현·정일영 의원은 해당 책임을 물어 다음날 국회 의안과에 국민의힘 송언석 기재위원장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과거 예비비 규모와 비교해 보면, 정부가 제시한 예비비 규모가 특출나게 불어난 것은 아니다. 예비비 예산 규모는 ▲2018년 3조500억원 ▲2019년 3조원 ▲2020년 5조5100억원 ▲2021년 9조7000억원 ▲2022년 5조5000억원 ▲2023년 4조6000억원 ▲2024년 4조2000억원 등의 추이를 보였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이 필요했던 2021년 최대 규모를 찍은 이후 예비비는 3년 동안 53%가량 규모를 줄여왔다. 그리고 4년 만에 정부가 14.3% 증액을 요구한 것이다. 정부는 증액이 필요한 이유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국제 정세 대응, 재해·재난 발생 불확실성 등을 든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를 돌이켜 보면 관세 부담이 늘거나 다자주의 체제를 부인하는 등 글로벌 공급망에 부정적 영향이 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예산에 없는 정책 소요가 발생하면 예비비를 활용해야만 한다”며 “재난 대책비 역시 본예산에도 어느 정도 마련돼 있지만, 불가피하게 더 큰 재난이 닥치면 예비비가 필요할 때가 생긴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그런 우려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예비비를 ‘불용’ 처리하면 되는 것이니 되레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야당에선 코로나 사태 이전 예비비 수준이 3조원 정도였다는 점을 들어, 이 수준으로 예비비 규모를 다시 원복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코로나 시기 때 예비비의 실제 집행률이 80~90% 정도로 높았지만, 올해의 경우 30% 정도에 그치는 것을 고려할 때 과도하게 많은 돈을 편성해둘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그간 예산총액 몸집이 불어난 만큼 예비비 규모도 물가 인상률 등을 고려해 충분히 구비해두고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정부가 내년도 예산으로 책정한 예비비 규모 역시 국가재정법에서 규정하는 기준 대비 엄격하게 관리해 편성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예비비는 일반회계 예산총액의 1% 이내에서 계상할 수 있도록 하되 그마저도 목적 예비비는 예외로 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총액(정부안 477조6000억원)에서 일반예비비 2조2000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0.46%다. 목적예비비까지 합치면 1.01% 수준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일반예비비와 목적예비비를 합쳐서 1%로 관리하고 있는 만큼, 국가재정법이 요구하는 것보다 되레 더 엄격한 기준으로 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정부가 이런 기준을 준수했음에도 비판받는 데에는, 근본적으로 그간 예비비가 대통령 국외 순방에 자주 동원되는 등 부적절한 사용이 반복됐기 때문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대통령 국외 순방 명목으로 예비비를 6차례(523억원) 편성했는데, 이는 정상외교 예산(249억원)의 두배 넘는 수준이어서 논란이 됐다. 올해 초에도 독일·덴마크 순방 돌연 연기 등으로 정해진 예산으로 위약금을 지출하고, 국외 순방과 관련한 예비비를 추가 편성한 바 있다.
국회 기재위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에서 ‘반토막’ 난 예비비 예산안이 처리된 가운데, 이제 남은 기재위 전체회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에서 구체화할 실제 감액 규모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앞서 국회는 2022·2023·2024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도 예비비 예산을 정부안보다 각각 1조1000억원, 6000억원, 8000억원 감액 의결한 바 있다. 국회는 이번주부터 예산안에 대한 세부 내역을 조정하는 계수조정소위원회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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