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년이' 첫방부터 찢은 '정자' 오경화 "칭찬 예상 못해"
황소영 2024. 11. 19. 09:28
김태리·문소리 바라보며 "정말 멋있다 생각"
'정가 같은 언니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반응 기억 남아
-지인들이나 친구들 반응 중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
"친구 한 명이 '언니 세상 모두가 언니의 연기에 감탄 중이야' 이런 말을 해줬다. 그 말이 나와 같이 나란히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라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정자 같은 언니가 있으면 얼마나 세상이 든든할까. 그런데 정자와 닮아있는 경화 언니'란 메시지도 기억에 남고, 눈물 셀카 보내준 다른 친구도 기억에 남는다."
-목포 사투리 연기를 자연스럽게 잘 소화했다.
"난 본래 광주 사람이다. 사투리 많이 쓰는 사람이지만 사투리 수업을 들었다. 아는 부분이 있으니까 사투리 선생님과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사투리 자체가 사람의 감정에 따라 많이 바뀐다. 그걸 같이 나누는 작업을 할 수 있는 메리트가 있어 좋았다. 내가 아는 부분이 있으니 사투리를 더 잘 쓸 수 있었다. 아빠, 엄마한테 물어보고 다른 곳에서 찾아도 보고 사투리 대회에 나가서 상 탄 분들 영상도 보고 그랬다."
-김태리, 문소리와의 호흡은 어땠나.
"진짜 연기를 하는 느낌이라 좋았다. 액션, 리액션을 모든 신마다 같이 하니 좋았다. 본인 것 한다고 덜하지도 않고 그대로 했다. 방 안에서 엄마랑 정년이랑 다툴 때 내 반응만 따는 신이라 체력을 아낄 수 있는데도 이전과 똑같이 연기를 해줬다. 덕분에 반응이 그대로 나올 수 있었다.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다. 저런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이미 존재하더라. 두 사람 모두 털털하다. 인간적인 케미스트리가 편하고 좋았다."
-정자를 연기할 때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사실 '이 사람들 사이에서 내 것을 잘할 수 있을까?'가 제일 걱정이었다. 정자로서 잘 못 설까 봐, 나만 잘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다들 잘할 거라는 걸 너무 잘 알지 않나. 그래서 생선 손질도 태리 언니랑 같이 배웠다. 칼질조차 잘 안 해봐서 어색하더라. 칼질 연습을 위해 감자 칼로 깎던 과일도 칼로 깎고 그랬다."
-1회부터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예상했나.
"1회엔 내 것만 보느라 바빴다. 극 안에서 정자로 잘 존재했는지가 궁금했다. 배우들 자체가 본인에겐 좀 엄격한 편이지 않나. 나도 그런 편인데 그래도 1화 보고선 괜찮다, 다행이란 생각은 했다. 정지인 감독님이 편집을 통해 정자로서 흐름을 놓지 않고 잘 살려주셨다. 주변에서 편집본을 본 관계자분들이 칭찬을 해줬다. 좋다고 하니 더 궁금했다. 결과물이 어떻게 파생될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본 방송 이후 댓글이 쏟아지더라. 정말 내게 포커스가 맞춰질지 몰랐다."
-올해 지니TV '나의 해리에게'에 이어 '정년이'로 열일 행보를 보였다.
"촬영 회차가 많지는 않았지만 내 삶에 있어선 상대적으로 올해가 가장 뭔가 촬영을 많이 한 느낌인 것 같다. 사실 '나의 해리에게'가 '정년이' 끝나고 한 작품인데 편성이 빨리 되어서 방송 시기가 살짝 겹쳤다. 근데 그게 내겐 좋았던 것 같다."
-'나의 해리에게', '정년이'를 하며 배운 점이 있다면.
"내가 내게 말하는 어투로 말한다면 '경화야 앞으로 이 언니들처럼 하는 게 좋겠다'였다. 신혜선 언니, 김태리 언니, 문소리 언니를 보면서 내가 느낀 건 그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자기 한계를 두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걸 배우고 싶었다. 이런 사람들을 연달아 만나는 것도 내 인복이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 작품을 대하는 자세, 만들어나가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정도가 깊고 농도가 짙게끔 할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계속 배우는 상태였다."
-IT 전공자였는데 갑작스럽게 배우의 꿈을 꾸게 된 계기는.
"장영남 선배님의 연기를 보고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를 꿈꾼 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 모순적이게도 그랬다. 사석에서 선배님을 만난 적은 없다. 선배님 연극을 보러 가고 '동주'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배우 초청 토크도 가고 그랬다. 선배님에게 '연극계 이영애'란 수식어가 있지 않나. 선배님의 '갈매기' 연극이 보고 싶어서 예술인의 집이라고 연극 영상 찍어둔 CD 모아둔 곳에 가서 본 적도 있다. 작품을 같이 안 해도 된다. 그냥 계속 선배님의 작품을 보고 싶다."
-연기가 하고 싶어 시작했던 배우가 된 후 후회한 적은 없나.
"배우라는 직업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선배님이 하는 연기 예술이 좋았다. 좋은 작가들의 그림을 봤을 때 영감을 느끼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지 배우의 삶을 꿈꾼 게 아니다. 그래서 좀 힘든 것 같다. 배우란 직업 자체가 대중에 비치는 인간의 모임이지 않나. 내가 원하지 않음에도 비칠 수 있다는 걸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아직도 그건 어려운 것 같다."
-배우 외에 다른 꿈을 꾼 게 있었나.
"대학교 3학년 때 세 번째로 하고 싶은 게 연기였다. 원래 도예가랑 목수가 되고 싶었다. 도예도 배워봤는데 엄청 어렵더라. 목수들이 만든 책상, 의자 위에 도자기가 있는 게 너무 좋아서 꿈꿨던 것 같다."
-성격이 내향적인 편인 것 같다.
"너무 내향적이다. 낯을 가리기도 하는데 낯을 일부러 만든다. 날 안 다치게 하려고 보호하려고 그런다. 날 돌아봤을 때 일부러 낯을 가리는 철문을 만든 것 같다는 느낌이 어느 순간 들어서 '네가 안정적인 마음이 들면 그것도 괜찮다' 그러고 있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연기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인복이 많은 것 같다. 갔던 현장마다 사람들이 날 바꾸지 않아도 되게끔 했다. 내가 사고하는 대로 말투대도 행동대로 하게끔 두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그게 편하고 좋더라. 연기할 때는 긴장감도 있고 두렵기도 하지만 '너대로 있으면 돼. 너대로 연기하면 돼' 이런 말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소통할 수 있는 직업이라 계속하고 싶은 것 같다. 이거 말고 취직도 안 해봐서 외골수적인 생각일 수 있는데 나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다 보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고 나쁜 게 아니구나!'를 깨달았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서울에 올라오고 6개월 후에 말했다. 무언가를 함에 있어서 어떤 직업이든 '그래서 뭐 했는데?'란 결과물을 요구하지 않나. 내가 부모님한테 연기한다고 말할 때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 다니면서 학원 내 오디션을 보는데 상위권에 드니 그때야 말할 용기가 생기더라. 엄마는 오디션 앞두고 떨린다고 하니 청심환을 챙겨주고 아빠는 이쪽 계통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되레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정년이' 속 정자의 모습을 부모님도 많이 좋아했겠다.
"일단 엄마, 아빠가 모니터링하게끔 꼭 보고 얘기해 달라고 하기도 하는데 부모님이 잘 챙겨보기도 하고 주변에서 보고 연락도 많이 해주는 것 같다. 아빠는 겉으로 티 안 내고 속으로 좋아하고, 엄마는 다방면으로 SNS도 많이 보고 유튜브도 많이 보니까 나보다 아는 게 많아 링크를 보내준다. 되게 좋아하는 것 같다."
-평상시 일상은 어떻게 보내나.
"스케줄 없는 날이 많다. 내 삶을 살아가는 시간이 많아서 요새는 영화, 드라마 추천작도 많이 보려고 하고 에너지 총량 자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운동을 하려고 한다. 열린 사고를 할 수 있으려면 건강해야 하지 않나. 그리고 작년 5월부터인가 시작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여행 가기를 실천 중이다. 훗날을 위해서 가는 것이다. 최근에 '정년이'를 촬영했던 청산도 촬영지가 너무 좋아서 같이 촬영했던 친구랑 3박 4일 다녀왔다. 다시 가도 너무 좋더라."
-연기로만 삶을 유지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 중인가.
"아르바이트하는 걸 진짜 싫어한다. 솔직히 아르바이트 일도 잘한다고 할 수 없다. 돈만 보고 하는 일이다 보니 주인의식이 잘 생기지 않더라. 사장님들이 좋아하는 인력이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음식점 서빙을 추구했다. 무조건 밥을 주니까 간장게장집, 경상도 밥집, 키즈카페, 치킨집, 조개구이집, 태국 음식점 등 사정없이 했다. 당시 생활비에 연기 학원비까지 충당해야 했으니 일주일에 6일씩 아르바이트하고 그랬다. 이후엔 쓸 수 있는 돈을 쪼개서 쓴다. 지금도 그렇게 쓰고 있다. 그럼 연명은 할 수 있다. 최소한으로만 살아 많이 걸어 다닌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나 역할이 있다면.
"장르는 판타지를 하고 싶다. 나쁜 사람들 처단하는 영웅이 나오는 걸 하고 싶다. 진짜 하고 싶은 캐릭터는 핸디캡이 있는 역할이다. 우리 집안 자체가 시신경이 약하다. 유전적으로 녹내장이 빨리 올 수 있고 안압 자체도 높아서 장애를 가진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 농인들이 수어라는 언어를 쓰지 않나. 수어를 1년 정도 배웠다. 그쪽 문화에 들어가니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알람이나 위급한 상황에 수어 하는 분들이 상주하면 소방관, 경찰관들과 소통이 되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게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수어 하는 사람이 많으면 도와줄 수 있지 않나. 나라마다 수어가 다르다고 하던데 그분들을 대변하고 싶다."
-배우로서, 사람 오경화로서의 목표는.
"촉이라고 해야 할까. 감이라고 해야 할까. 내 몸이 말하는 말이 있지 않나. 그런 걸 잘 듣고 선택하고 싶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 뭔가 선택을 할 때 진짜 내가 원해서 하는 선택들을 하고 싶다. 근데 또 상황마다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선택도 하게 되겠지만 말하고 싶은 걸 말하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 그런 캐릭터를 만나 연기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도 솔직하게 말하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올해 계획은.
"촬영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데 일단 그 작품을 위해 잘 걸어 나가는 게 지금의 계획인 것 같다."
황소영 엔터뉴스팀 기자 hwang.soyou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정가 같은 언니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 반응 기억 남아
배우 오경화(32)가 인생작 '정년이'를 만나 안방극장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었다. 1회 주인공 윤정년 역의 김태리를 압도한 캐릭터가 있었으니 바로 언니 윤정자 역의 오경화다. 팍팍한 현실의 삶에 지쳐 꿈조차 가져보지 못했지만 국극 무대를 꿈꾸는 동생을 위해 엄마에 맞선 당찬 맏이의 면모를 보여줬다. 진심으로 동생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모습이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10월 12일 tvN 주말극 '정년이'의 첫 방송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오경화에 관한 반응이 쏟아졌다. '정년이 언니 누구냐?'부터 시작해서 '정자 때문에 엄청 울었다'라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낸 열연을 펼쳤기 때문. 오경화는 "이러한 칭찬을 예상하지는 못했다"라며 제 몫을 해내기 위해 집중했는데 이 모든 것은 함께 호흡을 맞춘 선배 김태리, 문소리 덕분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극 중 정자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전문가에게 생선 손질을 하는 법을 배우고,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풀어내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던 오경화. 이러한 노력 덕분에 든든한 언니, 정자 캐릭터를 완성했고 호평까지 얻었다.
-종영 소감은.
"댓글을 통해 많은 칭찬과 정자에 대한 사랑을 받았다. '이런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글도 봤다. 그런 걸 의도하고 한 건 아닌데 정자를 많이 사랑해 줘 너무 감사하다. 솔직히 댓글 반응을 한 번 보니 헤어 나올 수 없더라. '그만 봐야지' 싶을 정도로 보고 있다.(웃음) 그 정도로 기분이 좋다. 언제 또 만날지 모를 사랑이지 않나. 지금을 잘 즐기고 싶다."
-주변에서도 많은 연락이 왔을 것 같다.
"주변에 친구가 잘 없다고 생각했는데 꽤 많은 연락을 받았다. 원래 어느 정도 양이 차면 SNS 창을 편집하고 정리하는데 이렇게 문자나 전화를 많이 받은 적이 없어서 못 지우겠더라. 그래서 힘들 때 다시 보자 그러고 있다."
지난 10월 12일 tvN 주말극 '정년이'의 첫 방송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오경화에 관한 반응이 쏟아졌다. '정년이 언니 누구냐?'부터 시작해서 '정자 때문에 엄청 울었다'라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낸 열연을 펼쳤기 때문. 오경화는 "이러한 칭찬을 예상하지는 못했다"라며 제 몫을 해내기 위해 집중했는데 이 모든 것은 함께 호흡을 맞춘 선배 김태리, 문소리 덕분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극 중 정자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전문가에게 생선 손질을 하는 법을 배우고,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풀어내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던 오경화. 이러한 노력 덕분에 든든한 언니, 정자 캐릭터를 완성했고 호평까지 얻었다.
-종영 소감은.
"댓글을 통해 많은 칭찬과 정자에 대한 사랑을 받았다. '이런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글도 봤다. 그런 걸 의도하고 한 건 아닌데 정자를 많이 사랑해 줘 너무 감사하다. 솔직히 댓글 반응을 한 번 보니 헤어 나올 수 없더라. '그만 봐야지' 싶을 정도로 보고 있다.(웃음) 그 정도로 기분이 좋다. 언제 또 만날지 모를 사랑이지 않나. 지금을 잘 즐기고 싶다."
-주변에서도 많은 연락이 왔을 것 같다.
"주변에 친구가 잘 없다고 생각했는데 꽤 많은 연락을 받았다. 원래 어느 정도 양이 차면 SNS 창을 편집하고 정리하는데 이렇게 문자나 전화를 많이 받은 적이 없어서 못 지우겠더라. 그래서 힘들 때 다시 보자 그러고 있다."
-지인들이나 친구들 반응 중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
"친구 한 명이 '언니 세상 모두가 언니의 연기에 감탄 중이야' 이런 말을 해줬다. 그 말이 나와 같이 나란히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라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정자 같은 언니가 있으면 얼마나 세상이 든든할까. 그런데 정자와 닮아있는 경화 언니'란 메시지도 기억에 남고, 눈물 셀카 보내준 다른 친구도 기억에 남는다."
-목포 사투리 연기를 자연스럽게 잘 소화했다.
"난 본래 광주 사람이다. 사투리 많이 쓰는 사람이지만 사투리 수업을 들었다. 아는 부분이 있으니까 사투리 선생님과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사투리 자체가 사람의 감정에 따라 많이 바뀐다. 그걸 같이 나누는 작업을 할 수 있는 메리트가 있어 좋았다. 내가 아는 부분이 있으니 사투리를 더 잘 쓸 수 있었다. 아빠, 엄마한테 물어보고 다른 곳에서 찾아도 보고 사투리 대회에 나가서 상 탄 분들 영상도 보고 그랬다."
-김태리, 문소리와의 호흡은 어땠나.
"진짜 연기를 하는 느낌이라 좋았다. 액션, 리액션을 모든 신마다 같이 하니 좋았다. 본인 것 한다고 덜하지도 않고 그대로 했다. 방 안에서 엄마랑 정년이랑 다툴 때 내 반응만 따는 신이라 체력을 아낄 수 있는데도 이전과 똑같이 연기를 해줬다. 덕분에 반응이 그대로 나올 수 있었다.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다. 저런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이미 존재하더라. 두 사람 모두 털털하다. 인간적인 케미스트리가 편하고 좋았다."
-정자를 연기할 때 가장 어려웠던 지점은.
"사실 '이 사람들 사이에서 내 것을 잘할 수 있을까?'가 제일 걱정이었다. 정자로서 잘 못 설까 봐, 나만 잘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다들 잘할 거라는 걸 너무 잘 알지 않나. 그래서 생선 손질도 태리 언니랑 같이 배웠다. 칼질조차 잘 안 해봐서 어색하더라. 칼질 연습을 위해 감자 칼로 깎던 과일도 칼로 깎고 그랬다."
-1회부터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예상했나.
"1회엔 내 것만 보느라 바빴다. 극 안에서 정자로 잘 존재했는지가 궁금했다. 배우들 자체가 본인에겐 좀 엄격한 편이지 않나. 나도 그런 편인데 그래도 1화 보고선 괜찮다, 다행이란 생각은 했다. 정지인 감독님이 편집을 통해 정자로서 흐름을 놓지 않고 잘 살려주셨다. 주변에서 편집본을 본 관계자분들이 칭찬을 해줬다. 좋다고 하니 더 궁금했다. 결과물이 어떻게 파생될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본 방송 이후 댓글이 쏟아지더라. 정말 내게 포커스가 맞춰질지 몰랐다."
-올해 지니TV '나의 해리에게'에 이어 '정년이'로 열일 행보를 보였다.
"촬영 회차가 많지는 않았지만 내 삶에 있어선 상대적으로 올해가 가장 뭔가 촬영을 많이 한 느낌인 것 같다. 사실 '나의 해리에게'가 '정년이' 끝나고 한 작품인데 편성이 빨리 되어서 방송 시기가 살짝 겹쳤다. 근데 그게 내겐 좋았던 것 같다."
-'나의 해리에게', '정년이'를 하며 배운 점이 있다면.
"내가 내게 말하는 어투로 말한다면 '경화야 앞으로 이 언니들처럼 하는 게 좋겠다'였다. 신혜선 언니, 김태리 언니, 문소리 언니를 보면서 내가 느낀 건 그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자기 한계를 두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걸 배우고 싶었다. 이런 사람들을 연달아 만나는 것도 내 인복이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 작품을 대하는 자세, 만들어나가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정도가 깊고 농도가 짙게끔 할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계속 배우는 상태였다."
-IT 전공자였는데 갑작스럽게 배우의 꿈을 꾸게 된 계기는.
"장영남 선배님의 연기를 보고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를 꿈꾼 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 모순적이게도 그랬다. 사석에서 선배님을 만난 적은 없다. 선배님 연극을 보러 가고 '동주'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배우 초청 토크도 가고 그랬다. 선배님에게 '연극계 이영애'란 수식어가 있지 않나. 선배님의 '갈매기' 연극이 보고 싶어서 예술인의 집이라고 연극 영상 찍어둔 CD 모아둔 곳에 가서 본 적도 있다. 작품을 같이 안 해도 된다. 그냥 계속 선배님의 작품을 보고 싶다."
-연기가 하고 싶어 시작했던 배우가 된 후 후회한 적은 없나.
"배우라는 직업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선배님이 하는 연기 예술이 좋았다. 좋은 작가들의 그림을 봤을 때 영감을 느끼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지 배우의 삶을 꿈꾼 게 아니다. 그래서 좀 힘든 것 같다. 배우란 직업 자체가 대중에 비치는 인간의 모임이지 않나. 내가 원하지 않음에도 비칠 수 있다는 걸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아직도 그건 어려운 것 같다."
-배우 외에 다른 꿈을 꾼 게 있었나.
"대학교 3학년 때 세 번째로 하고 싶은 게 연기였다. 원래 도예가랑 목수가 되고 싶었다. 도예도 배워봤는데 엄청 어렵더라. 목수들이 만든 책상, 의자 위에 도자기가 있는 게 너무 좋아서 꿈꿨던 것 같다."
-성격이 내향적인 편인 것 같다.
"너무 내향적이다. 낯을 가리기도 하는데 낯을 일부러 만든다. 날 안 다치게 하려고 보호하려고 그런다. 날 돌아봤을 때 일부러 낯을 가리는 철문을 만든 것 같다는 느낌이 어느 순간 들어서 '네가 안정적인 마음이 들면 그것도 괜찮다' 그러고 있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연기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인복이 많은 것 같다. 갔던 현장마다 사람들이 날 바꾸지 않아도 되게끔 했다. 내가 사고하는 대로 말투대도 행동대로 하게끔 두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그게 편하고 좋더라. 연기할 때는 긴장감도 있고 두렵기도 하지만 '너대로 있으면 돼. 너대로 연기하면 돼' 이런 말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소통할 수 있는 직업이라 계속하고 싶은 것 같다. 이거 말고 취직도 안 해봐서 외골수적인 생각일 수 있는데 나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다 보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고 나쁜 게 아니구나!'를 깨달았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서울에 올라오고 6개월 후에 말했다. 무언가를 함에 있어서 어떤 직업이든 '그래서 뭐 했는데?'란 결과물을 요구하지 않나. 내가 부모님한테 연기한다고 말할 때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 다니면서 학원 내 오디션을 보는데 상위권에 드니 그때야 말할 용기가 생기더라. 엄마는 오디션 앞두고 떨린다고 하니 청심환을 챙겨주고 아빠는 이쪽 계통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되레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정년이' 속 정자의 모습을 부모님도 많이 좋아했겠다.
"일단 엄마, 아빠가 모니터링하게끔 꼭 보고 얘기해 달라고 하기도 하는데 부모님이 잘 챙겨보기도 하고 주변에서 보고 연락도 많이 해주는 것 같다. 아빠는 겉으로 티 안 내고 속으로 좋아하고, 엄마는 다방면으로 SNS도 많이 보고 유튜브도 많이 보니까 나보다 아는 게 많아 링크를 보내준다. 되게 좋아하는 것 같다."
-평상시 일상은 어떻게 보내나.
"스케줄 없는 날이 많다. 내 삶을 살아가는 시간이 많아서 요새는 영화, 드라마 추천작도 많이 보려고 하고 에너지 총량 자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운동을 하려고 한다. 열린 사고를 할 수 있으려면 건강해야 하지 않나. 그리고 작년 5월부터인가 시작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여행 가기를 실천 중이다. 훗날을 위해서 가는 것이다. 최근에 '정년이'를 촬영했던 청산도 촬영지가 너무 좋아서 같이 촬영했던 친구랑 3박 4일 다녀왔다. 다시 가도 너무 좋더라."
-연기로만 삶을 유지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 중인가.
"아르바이트하는 걸 진짜 싫어한다. 솔직히 아르바이트 일도 잘한다고 할 수 없다. 돈만 보고 하는 일이다 보니 주인의식이 잘 생기지 않더라. 사장님들이 좋아하는 인력이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음식점 서빙을 추구했다. 무조건 밥을 주니까 간장게장집, 경상도 밥집, 키즈카페, 치킨집, 조개구이집, 태국 음식점 등 사정없이 했다. 당시 생활비에 연기 학원비까지 충당해야 했으니 일주일에 6일씩 아르바이트하고 그랬다. 이후엔 쓸 수 있는 돈을 쪼개서 쓴다. 지금도 그렇게 쓰고 있다. 그럼 연명은 할 수 있다. 최소한으로만 살아 많이 걸어 다닌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나 역할이 있다면.
"장르는 판타지를 하고 싶다. 나쁜 사람들 처단하는 영웅이 나오는 걸 하고 싶다. 진짜 하고 싶은 캐릭터는 핸디캡이 있는 역할이다. 우리 집안 자체가 시신경이 약하다. 유전적으로 녹내장이 빨리 올 수 있고 안압 자체도 높아서 장애를 가진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 농인들이 수어라는 언어를 쓰지 않나. 수어를 1년 정도 배웠다. 그쪽 문화에 들어가니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알람이나 위급한 상황에 수어 하는 분들이 상주하면 소방관, 경찰관들과 소통이 되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게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수어 하는 사람이 많으면 도와줄 수 있지 않나. 나라마다 수어가 다르다고 하던데 그분들을 대변하고 싶다."
-배우로서, 사람 오경화로서의 목표는.
"촉이라고 해야 할까. 감이라고 해야 할까. 내 몸이 말하는 말이 있지 않나. 그런 걸 잘 듣고 선택하고 싶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 뭔가 선택을 할 때 진짜 내가 원해서 하는 선택들을 하고 싶다. 근데 또 상황마다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선택도 하게 되겠지만 말하고 싶은 걸 말하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 그런 캐릭터를 만나 연기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도 솔직하게 말하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올해 계획은.
"촬영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데 일단 그 작품을 위해 잘 걸어 나가는 게 지금의 계획인 것 같다."
황소영 엔터뉴스팀 기자 hwang.soyou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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