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펜디는 밀크티로"…음료라도 명품 마시겠다는 MZ들
예술의 힘을 빌려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한 밀크티 브랜드의 협업 이야기
명품 브랜디 펜디(FENDI)와
중국의 인기 티 브랜드 헤이티(HEYTEA)의 만남
지역 전통문화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한
'펜디 특별 밀크티'는 애국주의 소비 성향이 짙은
중국인들의 수요 정확히 짚어내
올해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과 협업
“음료수라도 명품으로 마실래”
이는 중국의 유명 밀크티 브랜드 ‘헤이티(HEYTEA/희차喜茶)’의 소비자들이 했던 말이다. 2023년, 영국을 시작으로 호주, 말레이시아, 그리고 올해 초에는 서울에까지 진출하며 해외 시장을 확장하고 있는 헤이티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인기 브랜드이다. 저가 밀크티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나며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중국 음료 시장에서, 이름 그대로 "차를 좋아하다." 혹은 "좋은 차"라는 브랜드명답게 고급 과일 음료로 중국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헤이티가 대중의 눈에 강렬하게 인상을 남긴 비결은 명품 브랜드 펜디(FENDI)와의 콜라보레이션 덕분이었다.
헤이티는 중국 대표 SNS 웨이보(weibo)에서 사전 마케팅을 통해 기대감을 고조시켰고, 이후 펜디와 헤이티의 로고를 조화롭게 배치한 음료수 컵, 마그넷, 에코백 그리고 디저트 메뉴를 순차적으로 공개했다. 늘 쉽게 구매할 수 있던 밀크티였지만, 콜라보 소식이 전해진 후에는 주문 대기와 긴 기다림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에는 "이번 생 첫 펜디는 밀크티로?”, “펜디 밀크티를 마셨더니 오늘 하루 기분이 너무 좋다! 이게 명품 로고의 힘인가?”와 같은 인증샷과 게시물이 이어졌다.
당시 중국 언론에서는 요즘 청년들이 명품 로고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논지의 칼럼을 내기도 했지만, 소비자들은 이에 반박하며 좋아하는 것들의 조합을 즐기는 소비를 누가 비판할 수 있냐는 반응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음료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이 신메뉴 출시나 컵 디자인 변경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헤이티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차별화된 선택을 했다.
펜디는 옛 사찰을 개조해서 만든 복합문화공간인 베이징 ‘템플·동징웬(Temple东景缘)’에서 명품을 만드는 장인 정신을 보여주는 전시회 <Hand in Hand>를 협업의 일환으로 선보였다. 헤이티가 펜디의 고가 브랜드 이미지에만 집중했다면 이처럼 사회적으로 화제를 모으지는 못했을 것이다. 헤이티는 이 전시회에서 중국의 56개 민족 중 하나인 이족(彝族)의 대표 향신료인 목강자(Litsea cubeba, 리씨열매)를 기반으로 한 ‘펜디 특별 밀크티’를 선보이며 지역 전통문화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무료로 개방되는 전시였지만 한정된 인원만 예약할 수 있어 서버가 마비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명품 브랜드의 이면에 담긴 문화적 가치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깊이 파고들었음을 보여준다.
이번 협력을 계기로 두 브랜드 모두 중국 브랜드 평판 조사에서 상위권 5위 내를 차지할 정도로 이미지 제고라는 효과를 얻었다. 전통의 현대화가 유행인 중국 시장을 정확히 겨냥한 전략이 성공적이었던 것이다. 이는 2019년 돌체앤가바나가 '젓가락으로 피자를 먹는 중국인들'이라는 광고를 내보낸 후 인종차별 논란이 일어 중국에서 보이콧을 당한 사례와는 대척 지점에 있는 행보였다. 명품이 지닌 본래의 이미지를 간소화 혹은 도식화시킨 후, 자국의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해준 펜디의 ‘스토리텔링’은 소위 애국주의 소비 성향이 짙은 중국인들의 수요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협업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중국에서 펜디의 이미지는 여전히 예술적으로 남아있다.
2023년에 샛노란 색을 사용한 펜디와의 협업에 이어, 올해는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 작품인 점박이 호박이 헤이티의 브랜드에 녹아들었다. 원래 헤이티의 기본 로고는 음료수를 마시는 사람의 옆모습인데, 현재는 쿠사마 야요이의 트레이드마크인 단발머리와 점박이 옷을 입은 모습으로 변신해 마치 옷 갈아입히기 놀이를 하듯 다양한 변화를 보여준다. 그녀의 거대한 호박 설치 작품인 <The Life of the Pumpkin Recites, All About Giving the Greatest Love to the People>이 헤이티와의 협업을 기념해 11월 중순, 중국에서 처음으로 상하이 와이탄에서 공개된다.
이번 협업은 쿠사마 야요이가 오직 중국을 위해 준비한 ‘China Project of Love & Life’의 일환으로, 헤이티에서는 이를 기념해 열쇠고리와 머그잔 세트를 망고 슬러시와 흑설탕 밀크티와 함께 세트로 판매한다. 노랑과 검정의 조합을 강조하기 위해 세트 메뉴로 이 두 음료만 선택할 수 있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 고가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루이비통과 협업했다는 사실로 인해 중국 내에서 그녀의 위상은 더욱 높다. 판매 당일 정오가 되기 전 이미 해당 세트 메뉴는 품절되었으며, 중고 거래 사이트에는 굿즈가 3~5배 가격으로 올라와 있다. 역사적인 이유로 중국 내 일부에서는 강렬한 반일 감정이 존재한다. 그러나 쿠사마 야요이는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현대 예술가 상위 5위 안에 들 만큼, 그녀의 작품은 국경을 넘어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선사한다. 이렇게 예술의 힘은 잔잔하면서도 그 파급력은 크다.
브랜드에 스며든 향기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된다. 수많은 브랜드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시장에서, 어떤 브랜드는 이렇게 예술의 힘을 빌려 소비자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다. 소비자들은 작은 소비로 하루의 기분을 전환하고, 자신의 취향을 마음껏 표현하며 오늘도 밀크티에 담긴 예술을 구매한다. 자신을 작은 컬렉터라 부르는 그들은 사실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을 폭넓게 누리는 '작지 않은 컬렉터' 들이다.
배혜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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