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던 날의 우산전쟁, 나눠 먹던 열무보리밥… 부족해도 함께여서 가난마저 따뜻했던 7남매[자랑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것이다. 날 것, 있는 그대로 모습을 사랑할 수 있는 관계가 가족이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 남매들은 성품이 얌전하면서 조용한 아이들이라고 한다. 고상하고 품위 있는 칠남매라고 이야기를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께서도 착실하고 공부만 하는 자식들로 생각하셨다. 그러나 딸 다섯과 아들 둘인 칠남매가 모이고 뭉치면 모두 다른 모습으로 돌변한다. 에너지 넘치고 엉뚱 발랄하고 기발한 코미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예술가가 되기도 하고 요리사나 시인, 춤꾼이 되기도 한다. 주위에 웃음을 주기도 하고 함께 울어주며 진하게 공감하는 능력 또한 탁월하다.
어릴 적 동생이 맞고 들어오는 날이면 얌전했던 우리는 비장한 각오로 우르르 달려나가 온 동네가 시끄럽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분별없는 만용이 부끄럽고 웃음이 나온다. 더운 여름 냇가에서 몰래 목욕을 하고 올 때면 눈병과 익사사고 위험 때문에 큰언니가 동생들을 줄줄이 세워놓고 혼냈다. 호랑이같이 무서워서 울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서 부둥켜 안겨서 우는 일도 많았었다.
외할머니 집 마루 옆 광에 고구마가 하얀 속살을 보인 채 먹음직스럽게 그릇에 담겨 있었다. 맛있게 먹고 의식이 가물거렸던 나는 근거 없는 응급처방으로 구정물과 팥물을 강제로 먹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쥐약 묻은 고구마인 줄 모르고 죽을 뻔했던 아찔하고 무서운 기억이다.
마당에 심은 향나무 꽃향기가 온 동네에 스며든 봄날의 풍경들, 한옥 마루에 아무 생각 없이 수평선, 지평선처럼 대자로 누워 구름과 눈 맞추었던 여름날 오후, 확독(돌확)에 빙 둘러 모여서 새로 담근 열무김치에 먹던 보리밥, 해거름에 먹었던 정체 모를 밀가루 죽, 떫은 생감을 된장에 발라먹던 기억, 방학 때 밀린 숙제 대신해 줘서 상 받고 좋아했던 동생들, 집 마당에 누군가가 보낸 연애편지들, 라디오에 우리들 사연이 언제 읽히나 귀 기울여 듣던 일, 밤새 읽었던 빌린 책과 만화들, 끄트머리에 아들 동생이 태어난 날 불렀던 만세 등은 잊히지 않는 어릴 적 추억들이다. 납부금을 내지 못해 학교 가기 싫은 날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비 오는 날이면 우산과 신발 때문에 학교 갈 걱정으로 조마조마했던 날들도 있었다. 모든 게 결핍으로 불편했지만, 서로가 있어 따뜻한 가난이었다.
가족여행을 가는 날이면 웃음보따리도 함께 따라간다. 옛 음악다방에서처럼 신청곡으로 한바탕 추억놀이에 빠져든다. 미나, 둘코락스, 불여우(불란서 영화배우), 하나, 주근깨 삐삐, 리차드, 제임스라는 닉네임으로 음악을 신청하고 각자 추억들의 서랍을 연다. 할 말들이 어찌나 많은지 자신들의 차례를 찾지 못해서 틈새를 노리는 눈들이 진지하고 반짝거린다. 추억은 시리고 애틋하게 차곡차곡 쌓여 노스탤지어를 품어낸다.
칠남매는 추억 속에 살며 현재진행형이다. 회귀할 수 없어 불가항력적이지만, 조각조각의 기억과 추억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준다. 일상을 버티는 힘과 앞으로의 삶에 활력을 선물하기도 한다. 이젠 가정을 꾸리고 각자 삶 이야기로 살아가는 중이다. 지금도 좋은 일, 기쁜 일, 슬픈 일 등이 있을 때면 한달음에 달려 모여서 칠남매가 합체해 한몸을 이룬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사랑해, 고마워’라는 말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 베풀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의 힘듦을 조용히 챙기는 사람이다. 숙성된 인간다움이 우리가 되기를 노력하고 바라는 바이다. 건강과 웃음, 사랑으로 지금까지 보듬고 지탱해 준 칠남매를 많이 사랑한다.
플로리스트 임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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