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누워서 읽기 바랍니다!”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4. 11. 19.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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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휴식은 저항이다

트리샤 허시 지음, 장상미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이 책은 누워서 읽기 바랍니다!”

지난 5월 서울 여의도한강공원에서 ‘한강 잠 퍼자기 대회’가 열렸다. 대회 관계자는 “지친 현대인들이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게 하자는 취지”라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현생’에 치여 쉬는 법을 잊은 이들이 야외에서 겨루듯 잠을 청하는 광경에서는 전운마저 감돌았다. 한편, 미국에서는 휴식을 ‘권리’에서 ‘의무’의 영역으로, 더 엄중하게 인식하자는 목소리가 있었다. 저자가 ‘낮잠사역단’을 창립하며 휴식을 사회적으로 연구하게 된 원동력의 8할은 ‘가난한 흑인 여성’이라는 당사자성이었다. ‘왜 쉬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인간을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존재’로 만드는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답하는 책이다.

 

길 위의 뇌

정세희 지음, 한스미디어 펴냄

“일생에 걸친 습관은 몸이나 혼에 새겨져 위기 때 힘으로 발휘된다.”

사람 몸은 적당히 쓰고 굴리고 다듬어야 제 기능과 건강을 유지한다. 운동이 그래서 중요하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작 사람들이 의사에게 묻는 건 이런 것들이다. 어떤 음식이 좋은가? 어떤 영양제를 추천하나? 서울대 의대 재활의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수많은 환자가 병에 항복하는 걸 지켜봤다. 병에 걸리기 훨씬 전부터 안락함과 편리함에 항복한 이들이 병에 걸리면 더 속수무책이 되었다. 환자들을 만나며 건강할 때 운동 습관을 들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 스스로도 20년 넘게 달리는 러너이고 풀코스 마라톤에 30회 이상 참여했다. 뇌를 치료하다 보니 달리기가 그저 운동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운동 저축을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

 

페리퍼럴 1·2

윌리엄 깁슨 지음, 장성주 옮김, 허블 펴냄

“제국주의죠. 과거를··· 제3세계로 취급하는 거예요.”

소설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인 2030년대의 미국. 한 젊은 여성(플린 피셔)이 새로 개발된 게임의 베타 테스트를 시행하다가 그 가상세계 내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살인사건을 본다. ‘잘 만든 게임’이라고만 생각하던 중 살인 청부업자들의 공격을 받는다. 어느 날, 플린에게 베타 테스트를 맡긴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나는 2100년대 영국 런던에서 살고 있으며, 당신이 본 살인 장면은 게임이 아니라 여기(미래)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당신이 유일한 목격자다.” 그 미래 세계는, 2030년대의 대재앙으로 인류의 80%가 소멸된 뒤 소수 특권 계급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플린은 가족과 친구들을 지키고 세계의 파멸을 막기 위해 두 곳 시공간을 오가며 현재와 미래의 적들과 투쟁한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시리즈로 SF 블록버스터의 판도를 바꿨다고 평가받는 드라마 〈페리퍼럴〉의 원작이다. 작가는 최강의 월드 빌드(world builder:세계관 창조자)로 알려진 윌리엄 깁슨.

 

정신병을 팝니다

제임스 데이비스 지음, 이승연 옮김, 사월의책 펴냄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우리의 고통은 오히려 소비의 계기로 변화했다.”

지난 40년간 의학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서 일했던 의료인류학·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정신의학 분야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꾸준히 보건 지출을 늘리고 사람들은 약물 처방을 받지만, 영국인의 정신건강은 20년간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통을 다루는 사회적 시각이 오히려 퇴보했다고 저자는 본다. 고통은 변혁의 계기가 아니라 ‘악’이며, ‘정확한 치료’라는 이름의 소비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퍼졌다. 기업과 의료계, 시장친화적 정부가 이를 유도했다고 썼다. 다양한 데이터를 인용하고 전문가 및 고위 관료를 면담했다. 정신건강 문제로 고통받은 당사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다뤘다. 논쟁적 주장을 풍부한 근거로 밀어붙인 책.

 

눈에 덜 띄는

이훤 지음, 마음산책 펴냄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우리가 조금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어. 우리도 여러 번 용서받았다는 걸 기억하면서.”

시와 사진은 가까운 장르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시를 쓰고 사진을 찍는 사람의 임무는 어쩌면 세계의 낯선 순간을 채집하는 것. 낯섦은 때로 이해의 영역을 비켜간다. 시와 사진을 창작하는 이는 “다 알아주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누렸다. 그런 사람이 산문을 쓰기로 했을 때의 마음을 짐작해본다. 아마도 세상에 더 다정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닐까. 외로움과 상처에서 배운 “몇 개의 비밀을 나눠 갖기” 위해서. 소수자로 살아온 덕분에 타인의 자리에 부단히 앉아본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 읽는 동안 흘러넘친 마음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 지금보다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다짐하게 된다.

 

다시 조선으로

이연식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고국에 돌아왔으나 기대와 달리 해방의 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던 남한 사회를 마주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

해방 직후 약 1600만명이 살던 남한. 1~2년 만에 일본인 100만명이 돌아가고, 250만명의 귀환자와 초기 월남인이 유입되었다. 호평을 받았던 전작 〈조선을 떠나며〉에서는 1945년 패전을 맞은 그 일본인을 다루었고, 이번에는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 이들이 생존하는 과정과 삶을 다루었다. 귀환한 이들이 마주한 조국의 현실은 엄혹했다. 일본 주류 사회에 성공적으로 입성한 가족과 강제 동원된 사람들의 귀환 과정은 달랐고, 이처럼 국내 이동 집단 안에도 매우 다양한 차이와 균열이 있었다. 해방 조선의 맨얼굴과 비정한 사회 분위기를 당시 자료를 바탕으로 30여 개 에피소드를 통해 생생하게 증언한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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