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스 오르도 세클로룸’…누구를 위하여? [세상읽기]

한겨레 2024. 11. 1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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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지난 7일 자신의 엑스 계정에 트럼프 마러라고 자택에서 두 손을 번쩍 든 아들을 무동 태운 채 트럼프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렸다. 사진 위에 ‘노부스 오르도 세클로룸’(Novus Ordo Seclorum·세기의 신질서)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엑스 갈무리

김양희 | 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노부스 오르도 세클로룸”(Novus Ordo Seclorum).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11월7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그의 곁에서 환히 미소 짓는 사진과 함께 엑스(X·옛 트위터)에 미국의 국장(국새) 뒷면에 있는 ‘시대의 신질서’라는 뜻의 라틴어 문구를 남겼다. 강렬하다. 가히 모두에게 신질서가 도래했다. 그런데, 이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엘리트들이 상황을 잘못 이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의 사회적 구성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 효율성에 집착하는 이들은 … 개인이 의미 있는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존엄성을 과소평가한다.” 마치 노조의 선전문 같으나 실은 트럼프 2기 정부에서 보호주의의 선봉장이 될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자유무역이라는 환상’에서 외치는 소리다. 이 책에서 그는 19세기 미국의 보호무역에 앞장섰던 알렉산더 해밀턴과 헨리 클레이를 칭송하며 시종 노동자 중심의 무역정책을 역설한다.

하지만 그의 외침이 진정성을 보이려면 당장 머스크부터 쫓아내야 한다. 그게 아닌 한 라이트하이저의 주장은 심각한 인지부조화 혹은 기만일 뿐이다. 막대한 판돈을 트럼프에게 건 도박으로 대박을 터뜨린 머스크가 그리는 ‘시대의 신질서’란 노동자 중심의 세상이 아니라 인공지능(AI), 우주, 가상화폐, 자율주행 등 자신의 신사업 확장을 가로막는 규제를 손수 쳐내는 꿈같은 세상이다. 미국의 관세 폭탄과 이민자 추방의 최대 피해자는 인플레이션으로 생활비 폭탄을 맞게 될 저소득층이다. 수입에 의존하는 소매업이나 제조업, 친환경 분야도 마찬가지다. 최대 승자는 석유화학, 금융, 부동산, 가상화폐 등 1%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신질서다. 단언컨대, 그 질서는 노동자의 삶을 피폐화할 것이다.

신질서는 미국을 위한 것인가? 미국의 경제안보 전략은 이제 ‘경제적 강압’이라 불러 마땅하다. 조 바이든이 대중 보호주의의 외연을 확장한 ‘보호주의 진영화’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되 트럼프는 미국의 협상력을 최대화하고자 철저히 ‘허브앤드스포크’(Hub-and-Spoke)식의 일대일 관계에서, 바이든이 그나마 동맹과 우방에 제공했던 보조금과 같은 당근은 빼고 채찍만 휘두를 가능성이 커졌다. 그래서 트럼프의 부활로 신자유주의가 종말을 맞았다는 시각은 동의하기 힘들다. 그가 불러올 신질서는 대내 신자유주의와 대외 보호주의의 불안한 동행이기 때문이다. 그 결말은 근린궁핍화뿐 아니라 약자궁핍화이자 종국에는 미국궁핍화 정책이다. 이권과 권력을 쫓아 부나방처럼 모여든 그의 측근들 간의 충성경쟁은 이를 더 재촉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직 낙담은 이르다. 지금 시급한 것은 공급망 3법 등으로 분절된 개별 전략을 관통하는 상위 경제안보 전략의 수립으로 신질서에 맞서는 일이다. 이는 한국의 최대 강점인 제조 역량을 활용해 우리의 경제안보 목표와 원칙을 정립하고 업종과 분야를 교직하는 협상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다행히 바이든의 동맹·우방을 활용한 공급망 재편 전략인 ‘신뢰가치사슬’ 구축 전략도 아직 유효하다. 트럼프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첫 통화에서 조선 협력을 꺼내 든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기회 요인이다. 가령 현실적으로 한국 외엔 대안이 없는 조선 협력을 미국이 요구하면 우리는 미국 밖에서도 선박을 만들 수 있도록 존스법(Jones Act) 개정으로 응수해보자.

하지만 이런 배짱이라도 튕겨보려면 대통령의 골프 역량보다 외교 역량이 긴요하다. 파스칼 라미 전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은 유럽연합(EU)과 중국이 단결해 미국에 맞서자고 한다. 멕시코도 미국의 고관세 부과 시 보복을 다짐한다. 앞으로 트럼프의 경제적 강압에 휘둘리게 될 중견국들은 연대가 절실하다. 미국이 탈퇴하더라도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와 같은 지역협력체를 중견국 협력체로 재정립해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다가올 신질서는 전례 없는 안보 위기를 뜻하기도 한다. 이에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 수호에 기여하는 모든 세력과 손잡아야 한다. 그러니 지금 긴요한 것은 방산 수출이 아니라 방산 협력이고 외교안보 협력이다.

바야흐로 ‘노부스 오르도 세클로룸’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는다. 우리의 경제안보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실체 모호한 국익 추구라는 명분하에 노동, 인권, 환경, 공공선이라는 가치는 뒷전으로 내몰리는 게 아닌가? 우리야말로 노동의 사회적 구성에 대한 인식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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