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닥친 인삼밭…“땅 식히는 수로 한 개 더 깔았죠”
“6년 기른 인삼들 수확해서 구매장(제조공장)으로 보낼 땐 꼭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는 것 같아요.”
지난 11일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에서 한겨레와 만난 장명환(46)씨는 자신의 1만4000평(4만6200㎡) 인삼밭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흙이 묻은 작업복을 툭툭 털고 온 그는 가업을 이어받아 19년 동안 인삼밭을 일구고 있다. 9∼11월 인삼 수확철을 맞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그는 “갈수록 날이 더워져 인삼밭 관리가 올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찾은 장씨의 인삼밭에는 내년 수확을 앞둔 5년근 인삼들이 자라고 있었다. 땅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물을 공급해주는 수로를 기존 2개에서 올해 3개로 늘렸다. 그는 “인삼밭 관리는 워낙 섬세하게 이뤄져야 해서 자동화 설비가 들어올 수 없다”며 “대부분 사람 손으로 재배 설비들을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위기로 최근 전국 인삼 재배 지역은 북쪽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온도에 민감하고 연속 재배가 어려운 인삼 특성상 새로운 경작지를 찾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필요하다. 다만, 같은 지역의 인삼밭에서도 경작인의 재배 노하우에 따라 수확량이 확연히 차이 나는 경우도 있다.
품질 좋은 인삼이 잘 나오는 게 기업 이익과 직결하는 케이지시(KGC) 인삼공사는 기후 변화에도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2019년에 고온에 강한 인삼 품종인 ‘선명’을 20년 연구 끝에 개발해 품종등록을 완료했다. 2021년에는 내구성이 강한 철제 파이프를 사용한 ‘소형터널 해가림 시설’을 8년간 연구해 개발하기도 했다.
매해 가을 인삼 수확철이 돌아오면, 장씨 같은 경작인 뿐만 아니라 인삼공사 직원들도 인삼밭으로 향한다. 계약재배를 맺은 인삼밭에서 수확한 인삼이 안전하게 제조공장까지 도착하는지 눈으로 확인·감독하기 위해서다. 인삼공사의 계약재배 시스템은 ‘인삼 재배 토지 사전검증→계약→생산관리→품질검증→구매’로 이뤄진다. 인삼을 기를 수 있는 땅인지 사전검증부터 인삼이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작업(2년), 인삼 재배(6년)와 수확까지 8년여 동안 수시로 관리·감독하는 체계다.
인삼공사 중부원료사업소 김인배 과장(47)은 “100년 넘게 쌓인 인삼밭 데이터를 토대로 인삼 재배지 사전 관리부터 6년근 수확, 구매까지 직원이 직접 인삼밭을 수시로 들러 현장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전국 곳곳 인삼밭을 돌아다녔다는 그는 “밭을 돌아다닐 수 있는 편한 운동화에 등산복 차림이 업무 복장”이라고 했다.
수확된 인삼은 외관상 우수한 일반 판매용 인삼을 제외하고 모두 원료용으로 활용돼 액상·젤리 등 다양한 제품에 들어간다. 인삼공사는 지난해 처음으로 필름 형태의 홍삼 제품을 내놨다. 지난 1일에는 여행용 필름 홍삼 제품인 ‘에브리타임 필름 맥스&컴피’ 2종을 새로 내놨다.
원료인 인삼을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삼 제품을 계속 선택할 소비자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이 딱히 없는 고려시대부터 ‘독점’적으로 시장을 차지했다면, 지금은 국외에서 들여오는 제품까지 숱하게 많은 건강기능식품이 있다. 필름 제품 개발을 맡은 유병일 알앤디(R&D)본부 건식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홍삼이 익숙한 중장년층부터 건강관리에 관심 많은 젊은층까지 홍삼을 쉽게 접하게 할 수 있는 제형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필름 제형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필름은 물 없이 녹여 먹을 수 있어 노년층도 편하게 접할 수 있고, 젊은 소비자들도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을 노렸다.
아울러 인삼공사가 제품 다양화에 주력하는 건 내수 한계에 직면한 것도 이유다. 지난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발표한 ‘2023년 식품 등 생산실적’을 보면, 지난해 국내 건기식 시장 규모는 5조1628억원으로 전년보다 4.3% 줄었다. 특히 건기식 매출 비중 1위인 홍삼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은 8953억원으로, 2022년(9848억원)보다 9.1% 감소했다.
유 책임연구원은 “홍삼이 아직 진출하지 못한 나라들이 여전히 많다. 현지 소비자 취향에 맞게 우리나라의 홍삼 제품을 세계화할 수 있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이천/박지영 기자 jyp@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뉴스AS] 명태균·김영선 vs 강혜경·김태열 ‘잘못된 만남’
- 한동훈, 연일 ‘이재명 리스크’ 공세…국정 쇄신 요구는 실종
- 경북대 교수들 “윤석열 해고”…이미 ‘박근혜 탄핵’ 서명 2배
- [단독] 동두천 공립 작은도서관도 문 닫는다…계속되는 ‘도서관 수난사’
- [단독] 민주, ‘주주 이익 보호’ 별도 명시한 상법개정안 발의
- 명태균 “김건희에 전화, 대선후보 비서실장 윤한홍 임명 막았다”
- [단독] “김건희 ‘저 감옥 가요?’…유튜브 출연 명리학자에 먼저 연락”
- “윤 불법 사무소 증거인멸 의혹…일주일 새 ‘예화랑’ 간판 사라져”
- ‘디올백 사과 의향’ 질문했다더니…박장범 “기억 오류” 말 바꾸기
- 문인 1056명 “무능·무도한 대통령 윤석열은 스스로 물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