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딥테크 스타트업
스타트업을 논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테크기업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는 테크를 넘어 딥테크(Deep Tech)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왜 해외에는 딥테크 유니콘, 제조업 유니콘이 많은데 국내에는 아무런 기술도 없는 서비스 플랫폼 일색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우아한형제들, 야놀자 등과 같은 플랫폼기업도 연구인력만 수백명을 보유하며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확보하고 있고, 이를 비즈니스에 활용하여 경쟁자들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벌에서는 기술이 내재화된 우버, 우아한형제들, 당근마켓, 에어비앤비 등과 같은 플랫폼기업들을 모두 테크기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2014년 인도의 벤처캐피털리스트 스와티 차투르베디가 처음 사용한 딥테크는 사회에 큰 파장을 끼칠 수 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고, 수면 밑에 있어 보이지 않는 기술로 정의되며, 주로 비즈니스모델의 혁신보다는 바이오, 에너지, 청정기술, 컴퓨터 과학, 신소재 등 세상을 바꿀 만한 획기적인 기술을 말한다. 또한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를 딥테크 기업이라 부르는데, 인공지능 기술로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가 원조격이고 최근 각광받고 있는 오픈AI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딥마인드는 알파고로 유명하긴 했지만 매년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다. 뛰어난 인재를 유치하고 천문학적인 개발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0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수천 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다가 결국 2014년 구글에 인수되었으며, 설립 10년만인 2020년에 소규모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구글이 인수하지 않았더라면 파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15년 설립된 오픈AI도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적 업무를 해낼 수 있는 ‘범용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AGI)’을 최종 목표로 수십조원을 투자했지만 결과물까지는 요원한 상태다.
사실 딥테크는 초기연구 단계이거나 실체는 없고 개념만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비용이 매우 많이 들어 갔지만, 상용화가 이루어진 것은 극히 드물고, 비록 상용화 단계에 도달해도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가 될지, 어떤 규제가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들 기업에 대한 초기 투자는 대부분 공적 자금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이유로 하이텍과는 별도로 딥테크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엄청난 파괴력은 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말은, 뛰어난 기술이긴 하지만 시장성이 약해 투자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타트업은 연구기관이 아니고, 타인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여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야 하는 영리기업이다. 딥테크 스타트업, 첨단기술 스타트업 등 수식어는 의미가 없다. 파괴적 기술혁신이 일상화된 시대, 이제 기업은 기술혁신만으론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다. 기술 자체보다는 그 기술을 활용하여 진정한 비즈니스를 구현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혁신을 만나면 두가지 상반된 유형으로 갈라진다. 새로운 기술의 긍정적인 영향에만 초점을 맞추고 부정적인 영향이나 위험성을 무시, 경시하는 혁신편향(Pro-Innovative Bias)을 나타내거나, 혁신으로 인한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여 혁신을 무조건 배척하려는 혁신저항(Innovation Resistance)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혁신편향은 새로운 아이디어나 기술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지나치게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인지적 편향이다. 이러한 편향은 혁신과 창의성을 촉진할 수 있으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거나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적인 사고를 감소시키고, 기존의 방식이나 아이디어를 지나치게 무시하며, 새로운 게 무조건 좋은 거라는 접근방식이다. 혁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50년대에는 미래의 발전소는 모두 원자력이 될 것이며, 석탄과 석유가 필요 없어지고, 음식물 살균부터 우주여행까지 그야말로 원자력 만능시대를 예고했던 전문가들이 많았다. 70년이 흐른 지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원자력에 대한 과도한 혁신편향이다.
한편 블록체인의 등장도 엄청난 주목을 끌었다. 활성화를 위한 근본적인 3가지 문제인 확장성(Scalability),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보안성(Security)이라는 이른바 트릴레마(Trilemma, 삼중모순)에 대한 마땅한 해법이 없는 상태에서 혁신의 크기가 지나치게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았다. 현재 광풍이 불고 있는 생성형 AI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도 마찬가지다.
반면에, 혁신저항은 ‘혁신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아니라 혁신이 야기하는 변화에 대한 저항’이다. 소비자들이 혁신을 수용하기 위해서 더 비싸거나, 어렵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기존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면 현재의 익숙한 생활방식을 고수하려는 성향이 강해지며 혁신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혁신의 크기가 클수록 소비자의 행동변화를 최소화하지 않으면 저항하게 되는 것이다. 좋고 나쁨을 떠나 어떠한 변화도 무조건 거부하려는 현상유지편향의 일종이다. 또한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혁신의 폐해를 침소봉대 하여 국민들의 편익을 가로막기도 한다.
카테고리마다 다르지만 신기술의 사업화는 높은 비율로 실패한다. 대부분 성능이나 기술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때문이다. 혁신저항에 굴복하는 것이다. 혁신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앞으로도 상상을 뛰어넘는 혁신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동시에 혁신편향과 혁신저항도 항상 나타날 것이다. 아무리 뛰어나도 단점이 없는 혁신은 없다. 그렇다고 혁신을 멈출 수는 없다. 혁신이 없으면 국가의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의 성공은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만큼 재빠르게 세상에 적응하고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을 어떻게 구현하는 가에 달려있다. “90%이상의 세계 최고의 기술이 시장에서 실패했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존 구어빌 교수의 ‘혁신의 저주’라는 논문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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