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다음 전쟁터... 野 ‘상법’ vs 與 ‘자본시장법’, 뭐가 다른가

박지영 기자 2024. 11.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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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 추진
국민의힘 “무리한 상법 개정...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소액주주 보호”

8월 블랙먼데이 이후 처음으로 코스피지수가 장중 2400선 아래로 내려가고, 코스피 대장주 삼성전자가 한때나마 ‘4만전자’를 기록하는 등 한국 증시가 휘청이고 있다. 정부는 올해 초부터 한국 증시를 부양하기 위해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밸류업 효과가 제한적인 데 대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정책의 핵심인 상법과 세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놓고 한차례 붙었던 여야는 상법 개정을 두고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힘에서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으로 충분하다고 맞불을 놓고 있다.

사진은 31일 국회의사당 모습. /뉴스1

19일 국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상법 개정안에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 15일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식 무리한 상법 개정은 ‘코리아 부스트업’ 프로젝트가 아니라 코리아와 코리아의 기업들을 부러뜨리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주에는 소액주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도 포함되는데, 상법이 개정되면 우리나라 기업이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탈취 싸움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게 국민의힘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금투세 폐지에 동의한 이후 상법 개정안 추진에 힘을 싣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정기국회 안에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조치를 최대한 신속하고, 강력하게,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다시 한번 말했다. 앞서 전날(14일) 민주당은 이정문 의원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의석수 171석을 확보한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국민의힘 동의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그래픽=정서희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독립이사 선임 의무화 ▲감사 분리선출 ▲대기업 집중투표제 활성화 ▲전자주주총회 의무화·권고적 주주제안 허용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 중에서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가 핵심이다. 현행 상법에서는 ‘이사의 충실 의무’가 회사에 한정돼 있는데 이를 주주로 확대하자는 게 상법 개정안이다. 여기에 재계는 ‘경영권의 위축’을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해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겠다고 나섰다고 한 상황이다. 김상훈 의장은 “당정은 기업 간 인수합병 과정에서 선량한 주식투자자들이나 소액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소액주주 보호 방안에 대해 현재 논의 중”이라고 했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보다는 현재 합병이나 물적분할 등 특화된 사례에서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는 데 집중 규제하는 ‘핀셋’ 법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이 배터리 사업 부문을 떼내 현 LG에너지솔루션으로 물적분할한 사례,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합병 사례 등이 대표적인 소액주주들의 피해 사례로 꼽힌다.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김현정 민주당 의원의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다. 두산밥캣 합병 사례에 대해 “현행법을 최대치까지 악용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합병 등의 가액을 결정할 때 주가 등을 기준으로 자산가치, 수익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도록 하되, 합병 등의 가액이 불공정하게 결정돼 투자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에는 손해배상책임을 지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개인 투자자들은 우선은 상법 개정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가 진행 중인 상법 개정 국민 서명 운동은 18일 기준 1만7422명이 서명한 상태다.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의 일방적 대규모 유상증자 추진,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부문 ‘쪼개기 상장’,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불공정 합병, 이수페타시스의 ‘올빼미 공시’ 등 지배주주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만큼 포괄적인 입법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이사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한다고 상법 개정을 대체할 수는 없다”며 “자본시장법을 개정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항상 구멍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상법에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명시하는 것은 주주를 배신하지 말라는 근본적인 원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명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한국 증시 부양을 위해 제도권의 빠른 입법 추진 또한 중요하기에 여야가 합의에 이를 수 있는 부분부터 먼저 입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법안이 후순위로 밀려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상법 개정안은 재계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힐 수 있으니 자본시장법부터 검토하되, 실질적으로 소액주주 보호에 도움이 되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것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입법 차원에서 양당이 공통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자본시장법 개정안 등)을 빨리 입법한 다음, 그 다음에 쟁점 법안(상법 개정안)을 후순위로 두면서 논의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며 “그런 면에서 자본시장법이 효과는 적지만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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