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의료 개혁한다더니… ‘수가 왜곡’ 1년째 방치
병원의 필수 진료과 의사들이 15~30분간 심폐소생술을 하고 건보공단에서 받는 돈(수가)은 건당 17만890원이다. 반면 이 시술을 거의 하지 않는 한방·치과병원의 수가는 각각 20만7930원, 20만2040원이다. 같은 심폐소생술을 해도 필수과 의사보다 한의사와 치과의사가 20% 정도 수가를 더 받는다.
중환자 처치·치료를 전담하는 외과·응급의학과·소아과 같은 필수과 의사보다 긴급 처치를 거의 하지 않는 한의사와 치과의사에게 더 큰 보상을 하는 ‘수가 역전’이 발생한 것이다. 필수과 사직 전공의들은 이런 ‘수가 역전’을 두고 “정부의 필수과 무시 대표 사례”라고 했다. 필수과 의사들을 차별하는 ‘수가 역전’이 확산하는 근본 원인은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의 나태와 복지부동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 전직 복지부 차관은 “필수과에 대한 보상(수가)을 늘리려면 필수과 수술·처치의 상대 가치점수를 올려야 하는데, 이 점수는 진료과별 이해관계가 첨예하다”며 “정부가 골치 아픈 상대 가치점수를 장기간 손대지 않은 것이 수가 역전의 주 원인”이라고 했다. 의료계 인사들은 “정부는 작년 하반기부터 필수과의 수가 현실화를 집중 발표했지만, 아직 수가 역전 개선 논의조차 시작 못했다”고 했다.
필수과 의사들을 낙담시키는 ‘수가 역전’ 사례는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공기가 지나는 기도(氣道)에 관을 넣는 삽관술도 병원에서 하면 수가가 4만6880원인데, 한방병원에서 하면 5만7050원이다. 21% 더 주는 것이다. 인공호흡의 경우, 한방병원의 수가(5만9930원)는 병원보다 20% 이상 높다. 단순초음파 수가도 치과·한방병원은 3만원에 육박하지만 병원은 2만4280원이다.
관가에선 “보건복지부가 힘들고 어려운 상대 가치점수 개편을 장기간 방치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수술·처치의 가격인 수가는 투입 인력과 업무 강도를 고려한 ‘상대 가치점수’에 물가 등을 반영한 ‘환산 지수’를 곱해서 산출한다.
서울의 한 응급실 전문의는 “심정지 환자가 들어오면 응급실 의료진이 전부 달라붙어 심폐소생술을 한다”고 했다. 그만큼 투입 인력이 많고 업무 강도가 높은 처치라 병원의 상대 가치점수가 높아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병원의 심폐소생술 상대 가치점수는 한방병원, 치과병원과 같다.
다른 것은 ‘환산 지수’다. 이 지수는 정부가 매년 평균 1~2% 인상하는데 인상률은 병원보다 한방·치과병원이 더 높은 편이다. 정부 관계자는 “숫자가 많은 병원은 환산 지수를 조금만 올려도 건보 재정에 부담이 되지만, 소수인 한방·치과병원은 인상을 해도 큰 부담이 없기 때문에 더 많이 올리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더구나 상대 가치점수는 특정 과의 진료 점수를 높이면 다른 과들이 크게 반발한다. 상대 가치점수의 총합이 고정돼 있어, ‘A를 올리면 B를 줄여야’ 하는 구조여서다. 반면 환산 지수는 ‘병원’ ‘의원’ ‘한의원’처럼 기관 유형별로만 구분해서 일괄 적용하기 때문에 세부 진료과별 갈등 소지가 없다.
의료계 인사들은 “그동안 복지부 담당 공무원들은 골치 아픈 상대 가치점수는 놔두고 환산 지수만 매해 찔끔 인상해서 ‘필수과 수가를 지속적으로 인상해왔다’고 발표했다”고 했다.
복지부는 작년부터 “업무 강도가 높은 필수과의 수가를 집중 인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필수과 의사들은 “그간 정부가 한 건 발표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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