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바이든 낙마 전까지… 기밀 유출 파고든 한국계 ‘이 남자’
한국계인 로버트 허(51) 전 특별검사는 미국 대선 열기가 고조되던 지난 3월 정계를 강타했던 인물이다. 지난해 1월부터 지난 2월까지 약 13개월 동안 진행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기밀 유출·불법 보관 의혹 수사 결과 보고서에서 바이든을 ‘기억력이 나쁜 노인’으로 묘사해 정쟁의 한복판에 섰다. 이는 고령 논란에 불을 붙여 대선 완주를 고집하던 바이든이 7월 민주당 후보직에서 사퇴하는 시발점이 됐다.
1973년생인 허 전 특검은 하버드대(영어·영문학 전공), 스탠퍼드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했고 메릴랜드주(州) 연방 검사장 등을 지낸 법조 엘리트다. 지난 2월 퇴임 후 현재는 워싱턴 DC의 다국적 법무법인 ‘킹 앤드 스폴딩’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한국계 2세인 그는 17일 본지 인터뷰에서 “부모님의 성실함과 근면함이 평생의 본보기가 됐다”며 “나는 내 뿌리가 한국인이라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지난 3월 뉴요커 인터뷰에서 “가족이 엄격해 드럼을 치는 게 최고의 일탈이었다”고 했다.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나.
“부모님은 6·25전쟁 때 어린 시절을 보낸 이민 1세대다. 부친은 미군들이 자신과 형제들에게 음식을 줘서 나눠 먹은 것을 아직도 감사하게 기억하고, 모친은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피란 떠났던 얘기를 들려준 적 있다. 부친은 의대에 입학해 간호사인 모친을 만났고, 두 분은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와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부모님은 교육을 중요하게 여겼고 많은 한국인 부모님이 그렇듯 내가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 진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것을 자랑스러워하셨다. 부친이 의사, 모친이 주부로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를 보면서 자랐다. 두 분의 근면성실한 모습이 내 일생의 본보기가 됐다.”
-특검 시절 바이든을 ‘기억력 나쁜 노인’으로 묘사한 보고서로 정치적 공격을 받았다. 어려운 일을 수락한 이유는.
“처음 메릭 갈런드 법무 장관에게 요청받을 당시 나는 민간 분야에서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었다. 부탁받은 자리가 어렵고 대중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리라고 직감했다. 한편으론 민감한 수사를 진행한 경험이 있고 법무부의 여러 규칙과 절차에 익숙했던 덕분에 도전할 준비가 됐다고도 느꼈다. 공정하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는 업무의 원칙을 늘 유념하려 했다. 결국 나는 미국에 대한 깊은 사명감 때문에 특검을 수락했다. 나와 부모님은 6·25전쟁을 통해 미국이 우리 가족에게 제공한 엄청난 기회를 알았고, 그래서 내 경력의 많은 부분을 공직에 헌신하려 했다.”
허 전 특검은 지난 3월 하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증인용 테이블에 홀로 앉은 그는 양당이 서로 핏대를 올릴 때도 차분한 모습으로 증언에 임했다. 의회 전문 매체인 더힐은 “특정 정파의 편에 서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보인 덕분에 허 전 특검은 이날 유일하게 확실한 승자가 됐다”고 했다. 허 전 특검은 당시 “당파적인 정치는 내 업무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며 보고서가 편파적이라는 의원들의 공격을 정면 반박했다. 다만 ‘바이든을 다시 조사해도 같은 결론에 이를 것인가’라는 본지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출세에 도움이 됐나.
“내가 한국계이고 한국계로서의 정체성을 가졌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덕분에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를 많이 얻었다. 앞으로 한국 기업에 조언할 기회도 많을 것 같다. 한국에 대한 나의 문화적 이해와 미국의 법 집행 기관에서 일한 경험을 잘 접목해 보고 싶다. 아시아계 미국인들 중 나 같은 직책에 있는 사람이 아직은 그리 많지 않다고 안다. 아시아계를 포함한 젊은 변호사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
허 전 특검은 2018~2021년 메릴랜드 최초의 한국계 검사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볼티모어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 범죄 대응에 앞장섰던 것을 자랑스러운 경험으로 꼽았다. 그는 “코로나 확산 때 배우자가 한국인(유미 호건)인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가 반(反)아시아 폭력이 급증하는 것을 크게 우려했다. (나라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꼈다”고 했다.
-한국어 실력은 어느 정도 되나.
“유창하길 희망하지만 연습이 더 필요하다.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생일 때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한글학교에 보냈다. 어린 시절엔 여름이면 친척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았고, 대학 졸업 후 연세대에서 공부한 적도 있다. 요즘 한국 문화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끄는데 두 나라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데 있어 (문화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특히 한국 산업에 강한 인상을 받고 있다. 가령 현대·기아차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자동차 디자인에 감탄하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두 번째 시즌도 고대하고 있다.”
-인생의 목표는.
“나에게 주어진 기회와 특권을 잘 활용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 그리고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이 되는 것이다.”
허 전 특검은 2004년 같은 변호사이자 한 살 연하의 백인 여성인 카라 엘리자베스 브루어와 결혼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당시 뉴욕타임스(NYT)에 보도됐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났고 허 전 특검이 먼저 전화번호를 물어보면서 데이트를 시작해 결혼했다. “지하철역에서 여성에게 추근대는 괴짜가 되기는 싫었다”는 허 전 특검에게 브루어가 먼저 말을 걸었다고 한다. 허 전 특검은 “주말에는 새로운 맛집을 찾아다니는 걸 시도하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자장면·짬뽕집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했다.
☞바이든 기밀 문서 유출 의혹
조 바이든 대통령의 기밀 문서 유출 의혹은 2022년 11월과 2023년 1월 바이든의 워싱턴DC 개인 사무실과 델라웨어주 윌밍턴 사저에서 과거 부통령 시절 취득한 기밀 문서가 발견되면서 불거졌다.2023년 1월 로버트 허 전 특검은 해당 의혹 조사를 위해 임명됐고,13개월 조사 끝에 지난 2월 보고서를 발표했다. 허 전 특검은 바이든의 기밀 자료 유출 및 보관에 ‘고의성’이 있다고 보면서도 기소할 사안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지난 1월 백악관에서 바이든을 이틀에 걸쳐 신문한 허 전 특검은 수사 보고서에 바이든을 ‘기억력이 나쁜 노인’이라 묘사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는 대선 완주를 고집하던 바이든을 둘러싼 고령 논란에 기름을 부었고, 지난 7월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직에서 사퇴하는 시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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