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농사' 들키자 "농약 먹을까" 협박…'그래도 간다' 농관원 극한직업

세종=오세중 기자 2024. 11. 1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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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관원 소속 여성 조사원들이 땅주인과 대화를 나누며 복숭아 밭을 현장 점검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농업경영체 등록 연장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사진=농관권 충남지원 제공


"실제 경작하지 않는 농지로 혜택을 받아오던 것을 등록 삭제하면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하겠다', 사무소 담당자 형사고발, 민원사무실에서 책상 던짐, 전화로 고성과 폭언, '농약 먹고 죽을까'라는 협박, 지팡이나 농기구·낫으로 위협까지 합니다"(경영정보 등록관리 조사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이 하는 업무 중 농업경영체 경영정보 등록관리 업무 강도는 극한직업을 연상케한다.

이른바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분야로 지칭되는 3D 업무에 가깝다는 자조섞인 말도 나온다. 공무직 조사원들이 농가가 제대로 운영되는 지 확인하거나 등록요건이 맞지 않아 등록을 해주지 않으면 민원인들로부터 온갖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농산물의 품질관리나 원산지 조사를 주요 사업으로 하던 농관원은 2006년부터 농업정책의 수요자인 농업경영체의 경영정보를 등록하도록 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자유무역협정(FTA) 등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서 농가소득 안정정책과 맞춤형 정책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실제 농지를 가지고 있는 농가가 경작을 하면서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면 농산물 직불금이나 정책에 따라 비료 등을 지원받고 저금리의 정책금융 자금까지 융통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이 같은 농업경영체로 등록한 농지에서 실제 경작이 이뤄지는 지 확인하기 위해선 농관원 소속 조사원들이 일일이 현장을 나가 점검을 해야 한다.

지난달 17일 농관원 충남지원 공무원, 조사원들과 실제 농지 조사 현장을 동행했다.

첫번째 현장점검은 대전시 유성구 성북동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동행한 농관원 충남지원 최지혜 주무관이 태블릿을 꺼내 농관원 자체 앱으로 농지로 설정된 구역과 지도상의 구역이 일치하는 지를 우선 검토했다.

은퇴한 노부부가 집앞에서 실제 경작을 하고 있는 농지./사진=농관원 제공


이어 조사원들이 농지경작을 하고 있는 집주인과 경영체 등록 연장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경작 상태를 점검했다. 집앞에 위치한 밭에는 가지런하게 일렬로 배추와 파 등 각종 채소들이 심어져 있었다.

정정옥 농관원 운영지원팀장은 "이렇게 제대로 경작을 하는 곳은 좋은 사례"라면서 "농업경영체 경영정보를 등록을 한 곳 중 직불금을 받기 위해 신청을 계속하고 있지만 막상 조사하러 나가보면 아예 자기 땅의 경계를 못 찾을 정도로 수풀이 우거진 곳부터 묘목 한 그루 심어넣고 경작중이라고 우기는 곳도 있다"고 귀뜸했다.

이어 다음 현장조사를 위해서 간 곳은 산속으로 향하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산속으로 향한 길 끝에 집이 있고 다른 길은 없었다.

길이 없는 지도상의 경작지를 찾아 산을 오르고 있는 모습. 맨앞에 기자 본인이 카디건을 잡고 오르고 있고 뒤이어 농관원 소속 공무원들이 뒤따르고 있다./사진=농관원 제공


최 주무관은 "이런 길이 없는 산을 올라갈 때는 뱀에 물릴 수 있어 각반을 차기도 해야 한다"며 "실측을 위해 드론을 띄울때도 측정방식에 따라 손으로 날려야 하는 드론도 있어 그 프로펠러에 배가 긁혀 사고를 당한 직원도 있다"고 현장조사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막 다른 골목에서 도저히 길이라고는 볼 수 없는 산속을 20여분 올랐다. 온몸에 도깨비풀이 엉겨붙고 신발은 흙으로 범벅이 되면서 진흙과 높은 풀들을 헤쳐 길을 개척해 나갔다. 그러다 도착한 곳에는 녹슨 철조망만이 유일하게 해당 땅주인 소유의 경계임을 알렸다.

최고참 조사원 박미영씨는 "필요하면 이런 산도 올라야 하는데 남자도 뚫고 올라오기 어려운 곳이라 산등성을 홀로 오를 때나 날이 저물 경우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집주인이 자기들 땅에서 경작한다고 자꾸 우겨서 농지경영체로 등록해야 한다고 해서 이곳만 벌써 2번째 찾았다"며 "현장조사의 어려운 환경보다 막무가내인 사람들이 사실 더 무섭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면 진심으로 경작을 하려는 분들에게 직불금, 저리지원금 등 지원이 되기 때문에 소명을 가지고 일하게 된다"고 말했다.

산길을 개척해 20여분 오르자 도착한 경작지 구역. 그러나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경작지인지 모를 만큼 잡풀만 무성한 경작지 등록 신청 구역을 조사원 2명이 살펴보고 있다./사진=농관원 제공


농관원도 역시 이처럼 농가에 대한 지원을 더욱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 '농업경영정보 등록기준의 세부 내용 및 운용 규정'을 제정해 지난 10월 10일부터 시행했다. 농업인이 농업경영과 관련된 융자·보조금 등 정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확대한 것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임야에서 양봉업을 하면 농업경영정보를 등록할 수 없었으나 양봉업 등록기준을 개선해 임야에서 양봉업을 하는 농업인도 등록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최근 늘어나고 있는 수직농장의 경우 농지가 아닌 곳에 설치되면 농업경영정보를 등록할 수 없었으나 수직농장에 대한 등록기준을 신설했다. 농지가 아닌 토지에서 수직농장을 경영하는 농업인도 정책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박성우 농관원 원장은 "농업경영정보(농업경영체) 등록 개선을 통해 농업경영정보의 등록과정을 체계화하고 등록정보의 정확도와 신뢰도를 높여 농업정책의 효과를 높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세종=오세중 기자 dano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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