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농민들, 남미와 FTA에 "이대로는 안 된다" 항의(종합2보)
찬성파 독일 숄츠 총리 "더 많은 FTA 필요"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유럽연합(EU)과 메르코수르(MERCOSUR·남미공동시장)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연내 최종 타결될 수 있다는 전망에 유럽 각국 농민단체가 자국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프랑스 전국농민연맹과 청년농민회는 18일(현지시간)부터 반대 시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남부 몽펠리에에서는 100여명의 농민이 지방 청사 앞에서 시위 중이며, 아비뇽에서도 트랙터 시위대가 공동 대응에 나서기 위해 집결했다. 보르도에서는 오후 4시부터 밤 11시까지 트랙터 시위가 예정됐다.
수도권의 일부 농민은 전날 저녁부터 118번 국도의 차로 일부를 점거했다가 이날 오전 농성을 해제했다.
일부 지역에선 유럽 시장이 남미 상품으로 뒤덮일 것이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풍자하기 위해 마을 표지판을 남미 도시들 이름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피에리크 오렐 청년농민회장은 이날 RMC 라디오에 출연해 "전국 85곳에서 시위가 진행될 것"이라며 "어떤 곳에서는 도로가 막힐 것이고 다른 곳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일거나 청사 앞 시위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예고했다.
오렐 회장은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FTA에 반대한다고 말한 데 대해 "안심이 된다"면서도 "그가 이 협정이 비준되지 않도록 다른 회원국까지 설득할 수 있을진 확신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브뤼노 르타이오 내무 장관은 "공화국의 질서는 모든 프랑스인에게 적용된다.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며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피해를 주거나 장기 봉쇄나 고착 상태를 만들지 말아달라"고 시위대에 당부했다.
다른 EU 회원국 농민들도 남미와 FTA를 반대하고 있다.
아마존의 삼림 벌채를 이유로 앙겔라 메르켈 총리 시절 협정 체결을 꺼렸던 독일은 올라프 숄츠 정부 들어 산업 진출 확대를 위해 태도를 바꿨다.
숄츠 총리는 이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길에도 "20여년 만에 마침내 메르코수르와 FTA를 체결해야 한다"며 "우리는 더 많은 FTA가 필요하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숄츠 총리는 이어 "협상이 너무 오래 걸렸고, 이는 좋은 예가 아니다"라며 향후 단일 국가가 이런 협정에 제동을 걸지 못하도록 협정 체결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정 국가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으나 남미 FTA에 가장 반대하고 있는 프랑스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정부와 달리 독일 농민들은 불만이 많다.
독일농민협회(DBV)는 아직 시위 계획은 없다면서도 재협상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요아힘 루크비트 회장은 "국제 기준과 유럽 기준의 차이를 보완하는 장치가 마련돼야만 EU 농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 농가는 남미의 값싼 소고기 수입을 특히 우려한다. 스페인 청년농민회는 "남미와 FTA는 낡고 일관성 없다"며 비난해 왔다. 스페인 정부는 소고기와 같은 일부 분야가 피해 볼 수 있지만 와인이나 올리브 오일 같은 품목은 혜택을 볼 수 있다며 이번 FTA가 전략적으로 필요하다고 설득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선 주요 농업단체가 정부에 협상 중단을 촉구했다. 네덜란드 농가는 특히 가금류와 설탕 부문이 위협받게 될 것으로 우려한다.
이탈리아와 폴란드는 농민 단체뿐 아니라 농업부까지 나서 남미와 FTA를 유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프란체스코 롤로브리지다 이탈리아 농업부 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현 상태로 FTA 협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남미 농민 역시 EU와 같은 환경 규제를 적용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란드 농업부도 FTA가 대부분의 농식품 생산 부문을 희생시키는 반면 산업, 운송 등 분야만 일부 혜택을 본다며 협정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메르코수르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볼리비아로 구성된 남미경제공동체로, EU와는 1999년 FTA 논의를 시작했다.
20년에 걸친 협상 끝에 2019년 원론적인 합의가 이뤄졌으나 EU가 환경보호 의무 등 새로운 조건 추가를 요구하면서 난관에 부딪혀 그간 진전이 없었지만 올해 말 최종 서명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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