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소비국 vs 생산국 팽팽… ‘폴리머 감축’ 입장차 좁힐까

박성진 기자 2024. 11. 1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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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국제 플라스틱 협약’ 최종 회의
170여 개국 정부 간 협상위원회… 법적 구속력 갖춘 국제협약 마련
EU 등 “폴리머 생산 감축” 지지
산유국 “규제보다 재활용” 주장
15일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레인보 워리어호’가 8년 만에 부산항에 입항했다. 그린피스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포함한 강력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체결을 각국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그린피스 제공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위한 마지막 협상인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의(INC)가 25일부터 부산에서 열린다. 국제사회는 2022년 3월 유엔 환경총회에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협약을 2024년 말까지 마련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그동안 4차례 진행된 협상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부산에서 열리는 마지막 협상에서 플라스틱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체 주기를 다루며 법적 구속력까지 갖춘 국제협약이 탄생할 수 있을지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 플라스틱 소비국과 생산국 간 팽팽한 견해차

18일 환경부에 따르면 이달 말 170여 개국에서 정부 대표단 등 4000여 명이 이번 회의에 참석하거나 회의를 지켜보기 위해 부산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협상의 핵심 쟁점은 플라스틱의 원료인 폴리머 생산 감축이다. 석유를 통해 만들어지는 폴리머 이슈는 지금까지 4번의 회의에서 협상을 지연시킨 주범이었다. 폴리머 생산을 플라스틱 생산의 시작으로 판단할지, 플라스틱 제품이 완성된 시점을 생산 시작 단계로 볼지를 두고 각국의 입장이 대립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생산보다 소비가 많은 국가들은 폴리머 생산 단계부터 감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한국, 일본 등 67개국이 참여한 ‘국제 플라스틱 협약 우호국 연합(HAC)’이 폴리머 감축이 필요하다는 진영의 대표 격이다. 노르웨이와 르완다가 공동의장국인 HAC에는 플라스틱 오염 문제에 영향을 많이 받는 개발도상국도 포함돼 있다. HAC는 올해 9월 장관급 공동성명을 내고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과 소비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대로 플라스틱 완제품 탄생을 플라스틱 생산의 시작으로 봐야 하고, 생산에 대한 규제보다 재활용·폐기물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국가도 적지 않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주도로 출범한 ‘플라스틱 지속가능성을 위한 국제연합(GCPS)’이 이런 주장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GCPS에는 사우디 외에도 중국, 러시아, 쿠바, 바레인, 이란 등 6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산유국이거나 석유화학 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도와 브라질도 비공식적으로 GCPS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등 민간 부문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코카콜라와 유니레버 등 250여 개 기업, 금융기관, 비정부기구(NGO)가 참여한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위한 기업연합’은 최근 폴리머 생산을 포함한 전 주기적 접근으로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반면 석유화학 업계는 GCPS 입장을 지지한다. 엑손모빌 제품 솔루션 책임자인 캐런 매키는 최근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현재 폐플라스틱 10%만 재활용되고 90%는 매립되거나 자연에 버려진다”며 재활용률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 교토의정서 버금가는 ‘부산협약’ 탄생하나

국제사회는 협약의 쟁점을 폴리머 생산 감축 외에도 △플라스틱 규제 대상과 수준 △재활용 등 폐기물 관리 방식 △협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조달 △협약 이행 평가와 구속력 등으로 구체화한 상태다.

이 중 협약이 체결될 경우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개발도상국은 그동안 플라스틱을 대량 생산해 환경오염의 원인을 제공한 선진국이 재원을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BDR)’ 원칙 도입을 요구하는 것이다. 반면 선진국은 자신들이 재원을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지만 규모를 두고선 이견을 보이고 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1997년 교토의정서를 채택한 후 지금까지 재원 문제를 두고 합의를 못 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플라스틱 유해성을 두고도 입장이 다르다. 유럽 국가 대부분은 유해성이 우려되는 화학물질과, 소재나 설계 등의 문제로 재활용할 수 없거나 불필요하게 사용되는 플라스틱을 구체적으로 지정해 규제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산유국과 플라스틱 생산국들은 “유해성의 근거가 충분치 않기 때문에 직접적 금지 물품 지정에는 반대한다”고 맞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산에서 협약이 타결될 경우 세부 사항까지 협약에 한꺼번에 규정하는 대신, 큰 방향만 정하고 추후 의정서나 협정을 체결해 보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1992년 유엔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뒤 교토의정서와 파리협약을 통해 보완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한국은 HAC에 속해 있지만 아직 주요 쟁점에 명확한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 ‘플라스틱 다생산, 다소비 국가’란 점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란 분석이 많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도 이달 4일 기자간담회에서 “(플라스틱 생산을) 감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국내 환경단체들은 한국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회의에 참관인으로 참여하는 김나라 그린피스 플라스틱 캠페이너는 “부산에서 열리는 만큼 한국이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담은 강력한 협약이 도출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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