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점 돈 尹정부… 일손 놓은 공무원
윤석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요즘도 ‘상시 구인난’에 시달린다. 윤 대통령이 지난 6월 ‘인구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면서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해 힘을 싣겠다고까지 했지만, 정작 기획재정부 등 각 부처 공무원들은 파견을 꺼리기 때문이다. 중앙 부처 과장급 공무원 A씨는 “저출산 고령화 업무는 일은 일대로 힘든데 당장 성과는 안 난다”며 “대통령이 언급한 인구부 신설도 기약 없이 힘이 빠져버린 마당에 누가 가려 하겠느냐”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10일 임기 반환점을 돈 가운데 최근 중앙 부처 공무원들의 사기 저하와 복지부동(伏地不動)이 더욱 심각해졌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20% 안팎에 그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정부의 핵심 공약을 이행하는 부서에서도 ‘무사안일’ ‘방어주의’로 업무에 임하는 공무원이 늘었고, 이 때문에 공직 사회 전반의 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업무량 많고 성과 내기 어려운 부처·TF(태스크포스) 파견은 기피 1순위다. 지난 6월 윤 대통령의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 발표 이후 출범한 산업통상자원부 TF도 지원자가 없어 구성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세종시 관가에서 ‘유전 팠다가 안 나오면 감사당할 수 있다’ ‘정권 바뀌면 나중에 책잡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돌았고, 이런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아예 업무 전화를 잘 받지 않는 부서도 상당수다. 본지가 지난 13일 오후 기재부·보건복지부·교육부·행정안전부·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환경부 등 주요 중앙 부처 7곳 중 대민(對民) 업무 비율이 높은 50과의 일반 전화로 걸어본 결과, 22곳(44%)만 전화를 받았고, 나머지 28곳(56%)은 연속 두 차례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기재부·복지부의 경우, 통화 시도 10번 중 7번(70%)은 연결이 안 됐다. 한 국민의힘 보좌진은 “급히 부처에 문의할 게 있어서 전화해도 일반 전화로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연결이 안 된다”며 “전부터 이런 분위기가 없진 않았지만, 올해 총선 이후 연말로 갈수록 정부·여당 지지율이 점점 떨어지면서 업무 협조가 더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흔히 ‘승진 코스’라는 용산 대통령실 파견도 정부 출범 초기엔 선망 대상이었지만, 최근엔 기피처로 전락했다. 중앙 부처 1급부터 사무관(5급)까지 용산 대통령실이나 국민의힘 파견을 꺼리는 상황이다.
중앙 부처 1급 간부 B씨는 올 초까지만 해도 대통령실 비서관으로 가려고 애를 썼지만, 지난여름 이후 마음을 바꿨다. 최근 부처 내에서 대통령실 파견 의향을 묻자 “허리도 안 좋고 불면증이 심하다”며 사양했다고 한다. 고위직 공무원들이 ‘윤석열 정부 라인’으로 분류되는 것을 꺼려 몸을 사린다면, 4~5급은 과중한 업무 부담도 용산행을 기피하는 주요 원인이다. 서기관(4급) C씨는 “대통령실로 파견 가면 국회 출신 행정관들에게 치이면서 업무는 배 이상 늘어나고 가족과는 떨어져 지내야 하는데, 정권 바뀌면 찍힐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지금 굳이 갈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는 “벌써부터 부처 내에서 용산 파견은 금기어가 됐고, 파견 가는 직원은 ‘순장조’라 한다”고 했다. 중앙 부처 공무원들은 비슷한 이유로 여당 파견도 꺼리는 분위기다. 교육부 1급이 가는 국민의힘 수석 전문위원 자리도 두 달째 공석 상태다.
중앙 부처 국장급 D씨는 “요즘엔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 내리기도 무섭다”고 말했다. 그는 “좀 어렵거나 힘든 일을 지시하려고 했다가 ‘직장 내 갑질’로 신고당하는 경우도 봤고, 그것도 아니면 직원이 항의성으로 바로 병가·휴직을 내기도 한다”며 “관리자로선 본업무만 무탈하게 처리하는 게 우선이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밑에서도 원치 않는 만큼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면서 핵심 공약 관련 정책·사업은 더욱 기피하는 분위기다. 한 주요 부처 장관은 “정부 공약이자 부처 핵심 사업인데도 담당자가 전혀 의욕을 보이지 않아서 장관인 내가 직접 혼내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했는데, 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며 “내가 쓸 수 있는 카드는 결국 인사권 하나밖에 없어서 담당자를 교체했다”고 했다.
젊은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업무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장·차관의 국회 일정에 따라나섰다가도 자신의 담당 업무와 관련한 국회의원 질의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으면 먼저 퇴근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한다. 한 중앙 부처 과장급 E씨는 “한 달 전 휴가 결재를 받아놓은 직원이 있었고, 휴가 이틀 전 과에 큰 현안이 생겼다”며 “당연히 휴가를 미룰 줄 알았는데 휴가 전날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기에,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론 씁쓸했다”고 했다. 추후 문제가 불거졌을 때 책임을 피하기 위해 업무 추진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필수가 됐다.
다만 이런 변화는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옹호론도 나온다. 중앙 부처 사무관 F씨는 “공무원은 승진도 너무 오래 걸리고, 10년간 최저임금이 두 배가량 오를 동안 공무원 초과 근무 수당은 거의 그대로”라며 “그런데도 책임·의무·희생만 강조하면 똑똑한 인재들은 앞다퉈 공직을 떠나버릴 것”이라고 했다.
공직 사회 일각에선 “대통령실·국회가 중앙 부처 공무원들을 너무 힘들게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무 지시나 업무 협조 요청이 과도할 때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중앙 부처 공무원 G씨는 “최근엔 부처 홈페이지 등에 대통령 행보는 없고 장·차관 행보만 돋보이게 해놨다는 지적도 받았다”고 했다.
국회의 극단적 여소야대 상황도 공무원들에겐 큰 부담이다. 중앙 부처는 아니지만,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등과 관련해 야당의 표적이 된 방송통신위원회에선 최근 사무처 전체 직원의 35%가 직무 스트레스로 심리 상담을 받기도 했다. 중앙 부처 과장급 H씨는 “요즘 국감 때 야당 의원실 요구를 보면 ‘부처 산하 공공 기관의 5년 치 회의 속기록을 모두 가져오라’는 식”이라며 “조금만 난색을 보여도 ‘국회를 무시하느냐’고 쏘아붙이니 난감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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