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위원장도 ‘머스크 라인’… 트럼프 정부 곳곳에 입김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4. 11. 1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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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 인선에 개입하는 머스크
투자은행 ‘켄터 피츠제럴드’의 하워드 러트닉(왼쪽) 최고경영자(CEO) 겸 트럼프 인수위 공동위원장이 대선 유세 도중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 /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7일 미국의 방송·통신 정책을 총괄하는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으로 브렌던 카(45) 공화당 소속 FCC 위원을 지명했다.

그런데 발표 직후 이 인사는 트럼프 2기 신설 조직인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내정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작품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로이터는 이날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트럼프 자택)에 함께 머물고 있던 머스크가 트럼프에게 직접 카를 FCC 위원장에 지명할 것을 건의했다”고 보도했다.

대선 기간 트럼프 캠프에 2500억원의 선거 자금을 쾌척하고 유세에도 적극 동참해 일등 공신으로 꼽히는 머스크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그가 트럼프 당선 직후부터 특정 인물을 거명하면서 인사에 관여하려는 모습이 두드러지는 데다 성사되는 경우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2기 국정 전반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실세 중 실세로 군림하려 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머스크가 트럼프의 ‘공동 대통령(co-president)’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카는 차기 트럼프 정부의 정책 과제를 담은 친공화당 성향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 2025 보고서’에서 방송·통신 항목을 집필한 인물로 공개적으로 머스크 편을 들어왔다. 지난해 머스크가 운영하는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거부한 민주당 측 FCC 위원들을 비판했다. 지난 8월엔 텍사스주 보카치아에 있는 스페이스X(머스크의 우주 회사) 기지를 방문해 머스크와 함께 찍은 사진도 공개됐다. FCC는 통신과 소셜미디어 등의 분야에서 강력한 규제를 내리거나 풀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런데 머스크의 주요 사업인 스타링크와 X가 FCC의 관할 영역이다. 이번 인선 소식에 미 언론들이 ‘머스크의 승리’라는 평가를 내리는 이유다. 미 온라인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권력과 돈은 늘 결탁하기 마련이지만 이런 경우는 전례가 없었다”며 “미국인들은 새 대통령으로 트럼프뿐 아니라 머스크까지 함께 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그래픽=양진경

트럼프는 4년 전 1기 때와 비교할 수 없이 신속한 속도로 인선 작업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재무·상무·교통 등 7개 연방 부처 장관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들 부처 중 다수는 머스크가 특정 인사를 공개 지지하거나, 머스크의 사업 부문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국무·국방과 함께 ‘빅3′로 꼽히는 재무장관 발표가 늦춰지는 가운데 머스크는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하워드 러트닉(63) 캔터 피츠제럴드 회장을 공개 지지하고 나섰다. 그는 17일 X에 러트닉과 또 다른 후보인 헤지펀드 사업가 스콧 베센트(62)를 함께 언급하면서 “베센트는 늘 해오던 대로의 선택인 반면 러트닉은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인물”이라고 썼다. 이어 “늘 하던 대로의 선택은 미국을 파산으로 몰고 가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신의 선호 후보는 띄워주고 경쟁자를 깎아내린 것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재무장관 인선이 난장판 싸움이 됐다”며 “머스크가 낮아지던 러트닉의 발탁 가능성을 되살리고, 맞수 베센트를 떨어뜨리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동원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러트닉이 재무장관에 지명될 경우 머스크가 ‘공동 대통령’이라는 소리가 무색하지 않은 최고 실세로 입지를 굳힐 것이라는 전망이다.

머스크 입김이 강하게 불 것으로 전망되는 또 다른 자리가 교통장관이다. 자신의 핵심 사업인 전기자동차·자율주행차(테슬라) 관할 부처이기 때문이다. 교통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에밀 마이클(52)은 스페이스 X의 주요 투자자이면서 승차 공유 플랫폼 기업 ‘우버’ 임원 출신이다. 마이클이 실제 교통장관에 낙점될 경우 자율주행 차량 규제 완화를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 교통부 규정은 기업이 연간 배치할 수 있는 자율주행 차량 수를 2500대로 제한하고 있지만, 지난달 머스크는 2026년부터 무인 로보택시를 대량생산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어 규제 완화의 최대 수혜자가 된다.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공식 홍보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라온 사진. 트럼프 전용기 안에서 차기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맥도널드 햄버거를 앞에 두고 웃고 있는데,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오른쪽 흰 셔츠)만은 얼굴을 구기고 있다. 케네디 주니어는 최근까지 트럼프의 '맥도널드 기내식'을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이라 비판해왔다. 케네디 주니어 외의 인물들은 왼쪽 끝부터 시계 방향으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트럼프, 트럼프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마이크 존슨 연방 하원 의장. /X(옛 트위터)

무역 분쟁과 관세 정책 등을 담당하는 상무부와 미국 무역대표부, 그리고 그 밖의 외교안보 인선에도 머스크가 관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머스크와 전자결제 서비스 페이팔을 공동 창업했던 켄 하워리(49) 전 스웨덴 주재 미국 대사, 공군 장성 출신으로 스페이스X의 현 부사장인 테런스 J 오쇼너시(60) 역시 요직 진출설이 돌고 있는 머스크 측근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에 반발해 머스크를 견제하려는 트럼프 측근들의 움직임도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WP는 “트럼프의 ‘퍼스트 버디(first buddy·1호 친구)가 된 머스크가 (트럼프는 물론) 트럼프 측근들까지 짜증 나게 하고 있다”며 “한 측근은 머스크가 자신의 역할을 넘어서고 있다고 우려했다”고 했다.

머스크의 국정 전방위 개입을 막으려는 백악관 참모들과 충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1일 아미르 사이드 이라바니 주유엔 이란 대사가 트럼프와의 긴장 관계 완화를 시도하기 위해 머스크와 1시간 넘게 비공개로 만났다고 보도했다. 이란 당국이 즉각 부인했지만, 머스크에게 국무·국방장관의 권한을 뛰어넘는 대이란 임무가 주어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의회에서는 이미 머스크 견제가 시작되는 흐름도 감지된다. 공화당은 지난 13일 차기 상원 원내대표로 존 튠 의원을 선출했다. 다른 원내대표 출마자인 릭 스콧 의원을 지지해온 머스크가 투표를 앞두고 소셜미디어에 “상원 원내대표는 스콧!”이라고 지지 글을 올렸지만, 오히려 이 글이 견제 심리를 이끌어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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