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뮤지컬 극장 4곳, 이 남자의 곡이 흐른다
29일 개막하는 ‘지킬 앤 하이드’, 내달 5일 ‘마타하리’와 6일 ‘시라노’, 내년 1월 9일부터 시작하는 ‘웃는 남자’까지.<그래픽> 대극장 뮤지컬 시즌인 연말연시 대형 뮤지컬 가운데 이 4편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66)의 작품이다. 연말 한국 공연장에선 ‘프랭크와 프랭크가 경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어떤 한국 작곡가보다도 한국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법을 더 잘 아는 미국 남자.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를 기반으로 한국과 일본, 유럽을 바쁘게 오가다 최근 뮤지컬 ‘시라노’ 리허설 점검차 서울에 온 그를 강북구 한 연습실에서 만났다. ‘한국 뮤지컬 팬들은 당신이 아마 전생에 한국인이었을 것이라고 농담한다’고 했더니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음악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않았어요. 복잡한 음악으로 실력 자랑하는 데는 관심 없죠. 처음부터 맨해튼 네댓 블록 안 사람들이나 뉴욕의 비평가들이 아닌 세계를 향해, 보통 사람들이 좋아할 곡을 쓰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 마음이 한국 관객과도 통한 것 아닐까요?”
◇”시라노, 날 가장 많이 닮아”
지금 공연을 앞둔 작품들 외에도 그가 작곡한 ‘드라큘라’ ‘몬테 크리스토’ ‘엑스칼리버’ 등 많은 뮤지컬이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는다. 그중 ‘시라노’는 와일드혼이 특히 아끼는 작품. 그는 “주인공 시라노는 나 자신과 가장 닮았고 가장 깊이 연관된 캐릭터”라고 했다. “시라노는 이 냉정한 세상에서 로맨틱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전사니까요. ‘눈치 보며 시를 끄적이며/ 구걸하듯 살게 두지 않아/ 한겨울 비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쳐도/ 위대한 거인들과 맞서리라’로 이어지는 ‘시라노’의 대표곡 ‘거인을 데려와(Bring Me Giants)’는 내가 썼지만 ‘인생곡’입니다.”
와일드혼은 초연부터 주인공 ‘시라노’ 역을 맡다가 이번 ‘시라노’의 제작사 대표로 변신한 류정한(53) 배우와의 인연 얘기도 들려줬다. “그는 제 모든 작품에 출연한 최고 배우였죠. 2017년 초연 때 그와 식사를 하는데 배우로서 나이 들어가는 문제를 고민하더군요. ‘그렇다면 제작자가 돼보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라’고 조언했어요. 불과 몇 년 안 돼 세 가지를 모두 해내더군요, 하하.”
◇젠 체 하지 않는 보편 감성
뉴욕 퀸즈에서 태어나 미식축구 선수를 꿈꿨던 소년은 음악을 사랑한 부모님 덕에 발라드, 록, 재즈, 리듬 앤드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둘러싸여 자랐다. “젊을 때 저는 싼값에 대량으로 음악을 공급하는 전문회사에 소속된 블루칼라 작곡가였어요. 노래가 팔리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었고, 팔릴 만한 노래를 써야 했고요. 그 경험이 지금도 내 가장 큰 자산입니다.” 전설적 여가수 휘트니 휴스턴의 히트곡 ‘Where Do Broken Hearts Go’를 작곡하면서 그의 인생도 바뀌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그를 찾기 시작했고, 내털리 콜 등 전설적 가수들에게도 곡을 써줬다.
◇”티켓 56장 꺼내 사인 부탁한 팬도”
그는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지만 한국의 뮤지컬 배우들을 세계에서 가장 사랑한다”며 한국 이름을 또박또박 말했다. “줄리아(옥주현), 광호, 준수, 효신…. 한국 배우의 무대는 솔직히 마음을 드러내서 진심을 느낄 수 있어요. 그건 누가 가르쳐줄 수 없는 힘이에요. 이제 그 다음 세대가 될 새로운 배우들을 만나고 있는데, 다들 대단해요, 정말 대단해요!”
한국 뮤지컬팬들에겐 이미 유명인사. “작품마다 다르지만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 때는 팬들에게 둘러싸여 100만 장쯤 사인을 해준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한 여성 팬은 사인을 부탁한다더니 가방 안에서 공연 티켓 56장을 꺼내더라고요. ‘미안합니다, 한 장만 해드릴게요’ 했었죠, 하하.”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팬 서비스에 적극적인 건 “관객과 연결되는 것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이다. “항상 배우들에게 강조해요. 우리는 관객을 위해 공연하는 게 아니라 관객과 함께 공연하는 거라고. 매일 밤 다른 관객들이 가진 저마다의 에너지가 우리가 그날 저녁 하는 공연의 일부가 되는 거라고요.”
◇새 모험·여정, 늘 ‘지금 이 순간’
지금은 작곡한 뮤지컬이 40편이 넘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된다. 2004년 ‘지킬 앤 하이드’ 한국 초연은 그 2년 전 ‘오페라의 유령’과 함께 한국 뮤지컬 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킨 기폭제였다. 최근엔 클래식 작곡에도 손을 댔다. ‘다뉴브 교향곡’을 오스트리아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공연하고 녹음한 최초의 미국인 작곡가가 됐다. 내년 1월 녹음 계획으로 마무리 중인 두 번째 교향곡 제목은 그의 어머니가 태어난 우크라이나 도시의 이름 ‘오데사’다. 그는 “현재도 의뢰받은 노래가 8곡 있고, 제작 중인 공연이나 앨범이 4건 있다”며 웃었다. “미국, 영국, 스위스, 체코, 일본, 중국에 한국까지 전 세계에서 작품 의뢰가 끊이지 않아요. 그 의뢰가 멈출 때까지는 계속 달릴 생각입니다.”
2015년 결혼한 그의 아내는 일본 다카라즈카 가극단의 수퍼스타 남역(男役) 배우인 여배우 와오 요우카(56). 뉴욕, 하와이, 도쿄의 집을 오가며 수많은 곡을 쓰고 창작에 참여한다. 그의 가장 유명한 곡은 ‘지킬 앤 하이드’ 중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 당신에게 ‘그 순간’은 언제였냐는 질문에 와일드혼은 “관객이 있는 어두운 극장에서 아름다운 마법이 새롭게 일어나는 모든 순간”이라고 지혜롭게 답했다. “뮤지컬은 제게 다양한 문화의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스타일로 작곡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줬고, 그래서 뮤지컬과 사랑에 빠졌어요. 저는 평생 배우는 학생입니다. 그게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철학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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