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담배가게 늘리고 금연하라니
아버지는 할머니 배 속에서부터 담배를 물고 태어났을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입에는 뽀빠이처럼 항시 담배가 물려 있었다. 아버지는 매월 말이면 시내에 나가 한 갑에 40원 하는 ‘새마을’ 담배를 한 포대씩 사 가지고 오셨다. 내 어린 시절 남자들은 모두 흡연자였다. 내가 아는 남자 어른 중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목사님뿐이었다. 결국 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담배를 끊었다.
30년 전만 해도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 공간이란 없었다. 터미널 대합실, 회사 사무실, 술집, 식당, 심지어 버스 안에도 재떨이가 있었다.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 방송에도 담배 피우는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됐다.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이 제정되면서 흡연이 규제되기 시작했다. 헌법재판소는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상위의 기본권”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금연 장소 확대, 담뱃값 인상 등으로 흡연 인구도 많이 줄었다. 아무 데서나 흡연하는 일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흡연자의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졌고,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위치는 완전히 역전됐다. 집 안에서 담배를 피워도 이웃의 민원이 제기될 수 있다.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니 실외에서 마음 놓고 담배를 피워도 되는 이른바 ‘실외 흡연 시설’이 설치된 곳은 82군데에 불과했다(서울 열린 데이터 광장, 2023년 12월 기준). 동네 길거리에서 만나는 흡연자들이 ‘정정당당하게’ 담배를 피우려면 버스나 전철을 타고 흡연 부스가 설치된 서울역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역설이 있다. 담배 판매점은 오히려 늘었다. 1988년 전국의 담배 판매점은 1만4000여 곳이었지만, 2018년에는 15만여 곳으로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올해 기준 서울에 등록된 담배 판매점만 1만7000여 곳이다. 이는 국민건강증진법에 완전히 역행한다. 아아, 어쩌란 말인가.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담배가 됐지만, 어디에서도 피울 수가 없다니….
매년 10조원 넘게 걷히는 담뱃세 중 금연 사업에 쓰이는 예산은 5%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판매점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벌이는 금연 캠페인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내년이면 국민건강증진법 제정 30주년이다. 세수 확보도 좋지만 진짜 ‘국민 건강’이 우선인 금연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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