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려아연 ‘이차전지 전구체’ 국가 핵심 기술로 인정

이정구 기자 2024. 11. 1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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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기업에 재매각’ 제동 가능
주총 표 대결 앞두고 새 변수로
울산 울주군에 위치한 한국전구체주식회사(KPC) 전경.

고려아연의 이차전지 전구체(양극재 핵심 원료) 제조 기술이 정부가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지정하는 ‘국가핵심기술’로 인정받았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해외 매각 때 정부 승인이 필요하다. 사모펀드인 MBK로부터 경영권 방어에 나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9월 24일 신청해 지난 14일 지정됐다. 사모펀드 입장에선 인수한 기업을 일정 기간 후 매각해야 하는데 이때 이를 인수할 후보군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만큼, 경영권을 노리고 있는 MBK 측에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란 시각이 많다.

18일 고려아연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고려아연이 신청한 ‘하이니켈 전구체’ 제조 기술이 국가핵심기술 및 국가 첨단 산업 기술에 해당한다고 지난 14일 통보했다. 이차전지 양극재의 전(前) 단계 물질인 전구체는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섞은 화합물이다. 그중 니켈 비율을 80% 이상으로 높여 에너지 밀도를 높인 하이니켈 전구체는 한국 배터리 기업이 중국에 앞선 고성능 배터리의 필수 소재다. 전구체는 대중 수입 의존도가 90%가 넘는데, 국내에서 하이니켈 전구체 대량 양산을 추진하고 있어 국가 차원에서 기술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향후 매각 까다로워진다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재매각이 어려워진다는 평가다. 특히 5~10년 정해진 기간 안에 차익 실현을 해야 하는 사모펀드의 투자에서 후순위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초고압 전선 제조 기업 대한전선은 2019년 중국 매각설이 나오자 ‘500kV(킬로볼트)급 이상 전력 케이블 시스템 설계 및 제조’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인정받았다. 이후 2020년 글로벌 사모펀드가 인수에 나섰지만 기술 유출 우려로 무산됐었다. 2016년 두산인프라코어의 두산공작기계 매각 때도, ‘고정밀 5축 머시닝센터의 설계 및 제조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외국계 인수가 무산됐다. 이후 MBK가 두산공작기계를 인수했고 해외 매각을 재검토하다가 결국 국내 기업에 매각했다.

한편, 경영권 분쟁 초기에 ‘MBK가 향후 중국 자본에 고려아연을 재매각할 것’이라는 우려가 노조 등에서 제기됐다. 이에 MBK 측은 지난 9월 기자회견을 열고 “고려아연 경영권을 획득해도 절대 중국 자본에 매각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MBK 측이 회사 인수에 성공한 뒤 핵심 자산을 매각해 투자금을 단기 회수하는 이른바 ‘먹튀’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에는 “국가기간산업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고, (회사 운영은) 10년을 보고 있다”고 반박한 바 있다. 그러나 고려아연 노조 등이 나서 “구속력 없는 약속이며 조속히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MBK가 ING생명을 인수할 때 “10년 이상 장기 보유하며 고용 안정을 하겠다”고 임직원들과 약속했지만, 약속과 달리 조기 매각을 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MBK “환영”… 증권가 “매각 쉽지 않을 것”

고려아연은 “해외에 매각될 경우 국가 안보와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는 점이 공식 인정됐다”고 했다. 이날 MBK 측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것을 환영한다”면서 “고려아연 공개 매수 시점부터 국가기간산업으로서 고려아연이 지속 성장할 수 있게 지원하겠다고 수차례 말씀 드렸다. 최대 주주로서 핵심 기술들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증권가에서는 “국가핵심기술 지정으로 MBK가 투자금 회수 방법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 우세했다. 현재 MBK 측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은 약 8조원에 달하는데,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8조원을 주고 고려아연을 인수할 회사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MBK가 고려아연의 기술 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보고 오래 보유하면서 배당을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재계에선 “MBK가 핵심 기술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을 ‘분리 매각’하는 카드를 검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신사업 전구체 기술은 별도 사업 법인으로 분리하고, 본업(本業)인 아연 제련은 매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가 핵심 기술

반도체, 원자력, 전기전자(이차전지 포함), 로봇 등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아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 안보 및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기술.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13개 분야에서 76개 기술 목록을 지정했다. 기업의 특정 기술이 하위 기술로써 이 목록에 해당되는지 산업부가 심사한다. 국가 핵심 기술 보유 기업은 해외 매각 때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승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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