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망한 삶이 뭐 어때서! 아직 경로를 틀 수 있어요
“이상한 안도감이 든다.” 소설가 김연수가 지난달 출간된 김지연(41)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에 이런 추천사를 썼다. “다 읽고 나면 어쩐지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고 했다. 문인들이 좋아하는 작가다. 2022년 펴낸 첫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는 그해 교보문고 주최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2위에 올랐다. 사석에서 ‘김지연 팬’임을 슬며시 고백하는 소설가들도 종종 만난다.
2018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당시 심사위원 7명의 만장일치를 이끌어냈다. “어떤 실험적 작위 없이도 새로움을 성취했다”(백지은 문학평론가) 같은 애정 어린 평을 받았다. 단편 ‘사랑하는 일’ ‘공원에서’ ‘반려빚’으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벌써 세 번 받았다. 2년 만에 신작 소설집을 낸 소설가를 광화문 인근에서 만났다. 애써 꾸미거나 굳이 포장해서 말하지 않는 모습이 소설과 닮아 있었다.
소설을 쓰게 된 것도 성격과 관련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되게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남들 앞에서 이야기를 잘 못했어요. 노력해서 잘해보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냥 더 안 해보는 쪽으로(웃음) 글을 썼어요.” 김지연 소설은 독자의 내면을 특이하게 건드린다. 차분하고 담담한 문체로, 때론 건조한 유머를 섞어 툭 하고 친다. 이 때문에 무언가 깨지거나 송두리째 바뀌는 일은 없지만, 묘한 진동이 잔잔하게 울린다. 거창한 사건이나 독특한 소재 없이도 빠져든다. 흔한 일상의 장면을 묘사하는 것에서 시작해 인물 간의 대화를 통해 소설을 끌고 간다.
등단 7년 차. 습작기까지 포함하면 소설을 쓴 지 20년 남짓이다. “대학에 다니던 20대 초반부터 단편 분량의 글을 썼고 신춘문예에 투고했어요.” 국문과 졸업 후 고향 경남 거제로 내려갔다. 지역 신문사에서도 잠시 일했다. 다시 서울로 상경해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소설 쓰기를 공부했다. 지금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글을 쓴다.
신작 소설집엔 유독 돈 얘기가 많다. 그는 “채무 관계에 있는 인물들을 나도 모르게 많이 그리고 있더라”고 했다. 단편 ‘포기’ ‘반려빚’ ‘긴 끝’ 등은 돈 문제로 얽힌 연인들 이야기다. 끝난 관계가 돈 때문에 지리멸렬하게 이어지거나, 돈이 이별의 원인이 된다. 김지연은 “첫 소설집이 30대의 기록이라면 이번 소설집은 대부분 40대에 썼다”고 했다. “친구들과 만나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얘기,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 이야기하는데 그러다 보면 돈 얘기가 빠질 수 없고….” 그 정수가 단편 ‘반려빚’이다. “반려자는 애틋한 단어인데, 내 반려는 뭐가 있을까. 빚만 남는 게 아닐까….” 그렇게 떠올린 단어가 “점점 실재하는 것처럼 무게가 느껴져서 살을 붙였다”고 했다.
그의 소설엔 여성 연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자연스럽게 써지는 이야기를 썼다”고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채무 관계는 그래서 더 복잡해진다. 그는 “두 사람이 헤테로(이성애자) 커플이었으면 결혼 제도 안에 묶인 관계였을 것”이라며 “누구도 이 사람들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고 했다. 단편 ‘긴 끝’에 이런 구절이 있다. “완전히 도장을 찍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고 할 수도 없었으므로 이혼도 할 수 없었다. (중략) 이 경기는 언제 끝이 날까. 언제 끝났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망한 삶의 천재”(전청림 문학평론가) 같은 말을 듣지만, 여지를 남긴다. ‘조금 망한 사랑’이라는 소설집 제목은 김내리 담당 편집자의 제안이었다. 소설가는 “사실 소설을 쓰면서는 망한 사람들을 쓰고 있는지 잘 몰랐다”면서 “그런데 다시 보니 인물들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으로부터 조금씩 다 비켜 가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이 바라고, 기대했던 경로가 있었는데 거기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망했어도 ‘조금’이니까, 아직은 경로를 수정할 수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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