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트럼프 바람’도 비껴가는 나라
우리는 격랑의 세계 정세 아랑곳 않고 여야가 피 터지게 싸우느라 바빠
尹 대통령, 난국의 리더십 발휘해 트럼피즘 파도 극복해야
야권은 정치 투쟁으로 소일하면 역사에 죄를 짓는 일
‘트럼프 바람’이 무섭다. 이념적으로는 미국 보수화 또는 미국우선주의의 바람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복수의 바람이기도 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오래 준비한 듯이 미국의 골수 우파 전사(戰士)들을 거침없이 차기 정부의 요직에 선발하고 세계를 향해 미국이 변하고 있음을 선포하고 있다. 그동안 트럼프를 독재자·범죄자·반(反)민주주의자라고 비난했던 사람들은 지금 떨고 있다.
트럼프 바람은 미국에만 부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특히 미국과 거래가 밀접하거나 불가피한 나라들도 트럼프에 맞춰 춤을 출 준비에 분주하다. 나토(NATO)나 동아시아의 미국 우방뿐 아니라 러시아·중국 등 미국과 대척점에 있는 나라들도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관찰하며 대응에 들어가고 있다.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 몰라도 트럼프는 가히 세계의 지배자로 군림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도 트럼프 바람에 긴장하고 있기는 하다. 가장 빠른 쪽은 기업이다. 트럼프가 당선된 지 보름 만에 외국인을, 또는 미국인을, 또는 미국을 잘 아는, 특히 트럼프 성향에 익숙한 사람들을 전면에 배치하는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그런데 정치권은 아니다. 도대체 트럼프 바람의 실체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어떤 파장을 몰고 올 것인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느긋하고 느리다. 느리기만 하면 또 모르겠는데 아예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끼리 피 터지게 싸우느라고 바쁘다. 트럼프 바람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새다.
이미 예정된 것이라 어쩔 수 없는 행사라지만 그래도 하필 이 시점에 우리 대통령은 저 멀리 남미에서 레임덕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는 한가한 사진만 뉴스에 뜬다. 그리고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비 오는 거리에서 악에 받친 듯 윤 대통령과 정부를 매질하는 사진만 뜬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바 없고 우리끼리 싸우는 데 몰두하는, 천방지축 나라의 꼴로 비칠까 걱정된다.
역설적으로 윤 대통령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대한민국이 트럼프 바람을 극복하는 길을 찾는 것, 그것이 윤 대통령이 남은 2년 반 동안 해야 할 일이다. 안보 면에서 미국의 철통 같은 안보 공약을 더욱 공고히 하거나 굳이 미국이 그 비중을 줄이겠다면 우리도 핵화(核化)하는 길로 가는 것이 그 하나고, 경제 면에서 한국이 미국과 자원 협력국으로 가면서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가 무위로 끝나지 않도록 경제외교를 강화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윤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윤 대통령은 미국이 왜 트럼프를 선택했는지를 공부해야 한다. 미국 국민은 트럼프의 범죄적 요소를 몰라서 또는 그를 좋은 인격자인 줄 착각해서 그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미국인이 트럼프에게 베팅한 것은 그것이 지금 미국을 부양하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여기서 길을 찾아야 한다. 윤 대통령의 그 어떤 부족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라의 정체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난국을 이겨내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우리의 우파는 정치를 소홀히 해서 망하지만 좌파는 우파의 실수를 먹고 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국민도 인식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에 대한 법원의 징역형 판결은 지금 우리 정치를 짓누르고 있는 두 사안의 격(格)이 다른 것임을 극명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윤 대통령의 문제는 부인의 문제이지만 이재명 대표의 문제는 이 대표 자신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윤 대통령 부인의 문제는 처신에 관한 문제이지만 이 대표의 문제는 범죄의 문제라고 판시된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우리가 격랑의 세계 정세, 특히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극(極)보수화-우경화-그리고 미국 우선주의의 파도를 어떻게 타고 넘을 것이냐의 문제다. 북한은 갈수록 군사화하고 블록화하면서 우리를 압박하고 있고 러시아·중국과 더불어 핵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은 어떤 극단적 자국 보호주의도 마다 않는 매가(MAGA)주의에 매몰돼 있다. 이런 것을 세상은 트럼피즘이라고 한다. 이제 막 세계 여러 나라와 어깨를 겨누고 세계의 반열에 발돋움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절체절명의 국가적·민족적 과제이며 시험대다. 그런데 여기서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약속한 조치들에 미온적이거나 시간을 낭비한다면, 그리고 야권은 탄핵 등 정치 투쟁으로 소일한다면 그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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