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파편처럼 흩뿌려진 점… 심연의 우주를 만나다 [박미란의 속닥이는 그림들]
개인전 ‘콰오아’ ‘글라스’ 동시 진행
원경·근경의 각기 다른 우주 선보여
광활한 화면 속 궤적 따라 포개진 선
수직 영역에서 율동하는 망점의 색면
먼 곳 보던 시선, 내면의 우주로 귀착
◆우주의 망점
우주를 생각하는 일이란 스스로 점이 되어가는 과정과 같다. 무한의 한가운데 미세하게 흔들리는 좌표로서, 그러나 한편 신비하도록 또렷한 마음을 가진 먼지로서의 나를 깨닫는 일. 공중의 푸름 바깥의 공백에 관한 상상은 본 적 없는 모든 형상을 기하학으로 바꾸어 놓는다. 원경을 내다볼수록 심야의 희미한 별들은 거대한 강을 이루고, 어느덧 빛나는 각자의 영토가 된다. 점들을 그러모아 그은 선분이 면적으로 나아가다 이내 부피의 환영을 내비치는 것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콰오아: 고리의 환영
성곡미술관에서 선보이는 개인전 ‘콰오아’는 드넓은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대규모 회화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높다란 층고를 가득 메운 ‘스페이스 엔진 ― 더스트’(2024) 연작의 광활한 화면 앞에서 탐색하는 눈동자들은 까맣게 망울진 점이 된다. 보다 큰 장면의 부분을 포착한 형태로서의 화면은 그것이 위치한 장소의 물리적 규모와 긴밀하게 관계 맺는다. 층층이 포개어진 선들의 궤적은 화폭의 윤곽 너머 여백으로의 확장을 암시한다. 공백의 면적에 따라 시야의 범주 또한 달라진다.
콰오아는 해왕성 주변 궤도를 공전하는 왜행성이자 토성처럼 고리를 가진 작은 천체의 이름이다. 행성과 고리의 간격이 매우 멀어 어떠한 중력이 그 형태를 유지하는지 알 수 없기에 신비한 대상이다. 전시의 초입에 실제 관측된 콰오아를 메조틴트 판화로 묘사한 작품이 놓였는데, 너무나 먼 위치 탓에 파편화된 윤곽만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희미하게 빛나는 심연의 존재, 우주를 건너 점이 되어버린 커다란 실재가 그럼에도 분명히 그곳에 있다.
WWNN에서 진행되는 또 다른 개인전 ‘글라스’는 유리 막을 경유하면서 굴절되는 시선과 같이 바라봄의 불완전성과 유동성을 주제 삼은 회화 연작을 선보인다. ‘교차-형태 스크린’(2024) 연작에서 짧은 호흡으로 그은 수평선들은 좁다란 구획을 벗어나지 않은 채 수직 방향의 띠를 이루는 모습으로 나열된다. 흩뿌려진 점들 또한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수직 영역 안에서만 율동하는데, 그에 이웃하여 매끈한 망점의 색면만이 드러나는 공백의 층위를 남겨 둔 채다.
앞선 전시의 출품작들이 선의 환영을 화면 바깥으로 확장시킨다면, ‘글라스’에 선보인 작품들은 그것을 화면 내부에서 세세하게 분절시킨다. 의도적으로 말끔히 비운 수직의 띠들은 무언의 부피와 무게를 얻는다. 망각이 기억의 필요조건이듯, 미완의 여백은 채움의 몸짓을 한층 가시화한다. ‘교차-형태 스퀘어’(2024) 연작에서 지워진 사각지대는 반투명한 아크릴릭 미디엄의 막으로 재차 덧씌워진다. 안개 낀 듯 모호한 보호막처럼, 흐릿한 만큼 단단한 우리의 현실처럼 말이다.
‘교차-형태 렌즈’(2024) 연작은 중심부에 빛과 같은 공백을 품고 있다. 다채로운 색선의 반복이 이룬 원의 궤적이 문득 여럿의 눈동자들 같다. 우주의 블랙홀처럼 모든 빛을 흡수하되 내보내지 않는 동공은 홍채의 이완과 수축에 따라 시야를 조정한다. 한없이 응축하거나 더 멀리 분산하는 빛의 운동은 생명의 망막을 경유하여 시각적 세계를 연다. 다시, 우주를 상상하는 사람은 이내 오롯이 빛나는 점이 된다. 무한의 공백 안에 흔들리는 작은 몸으로서, 선명한 것은 오직 마음뿐이다. 굴절된 시선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눈동자들이 각자의 우주에 별을 띄운다. 그로써 유효한 하나의 망점으로서, 깜박이는 영혼으로서.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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