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57] 신중함이 여인이라면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4. 11. 1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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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 델 폴라이올로, 신중함, 1469~1472년, 목판에 템페라, 168x90.5cm,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권좌 위의 젊은 여인이 뱀과 거울을 쥐고 있다. 구약성경, 특히 창세기에 익숙한 이라면 이브를 유혹해 선악과를 먹인 간교한 뱀을 떠올릴 것이다. 거울을 들고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니 이 또한 허영심과 헛된 욕망의 상징이다. 하지만 유혹과 허영을 상징한다고 보기에는 여인의 자태가 너무 점잖지 않은가.

사실 이 여인은 ‘신중함’을 의인화한 것이다. 1469년 피렌체 화가 피에로 델 폴라이올로(Piero del Pollaiolo·1441~1496)가 피렌체의 모든 길드를 관장하는, 오늘날로 치면 상공회의소로부터 주문을 받아 시뇨리아 광장에 서있는 건물 내 벽면을 장식하기 위해 그렸다. ‘신중함’은 절제, 정의, 용기, 믿음, 희망, 자비와 함께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일곱 덕성 중 하나다. 상공회의소는 그중 ‘용기’만 산드로 보티첼리에게 맡기고, 나머지 여섯을 폴라이올로에게 주문했다. 그러니 전체 맥락 안에서 이 그림을 본다면 그 의미를 더 명확하게 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그림에서 거울은 자아 성찰을, 뱀은 현명함을 상징한다. 고대로부터 마치 다시 태어나듯 허물을 벗는 뱀은 치유와 지혜의 상징이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로울 것을 주문하셨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자아 성찰과 허영, 간교함과 지혜는 한 끗 차이다. 자기를 바로 보며 반성하면 성찰이고 도취하면 허영이다. 영리한 머리를 남을 위해 쓰면 지혜가 되나, 자기만을 위해 쓰면 교활해진다. 이 한 끗을 가르는 게 바로 환경이다. 거울과 뱀이 절제, 정의, 용기, 믿음, 희망, 자비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신중함’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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