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회적 책임 강제하는 상법 개정안, 기업 자율성 해친다

서성호 사단법인 한국기업법학회장·조선대학교 교수 2024. 11. 1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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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는 정치권이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을 심각한 우려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들은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해 이사가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범위를 주주 전체로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상법 학자들이 법률적 위임 관계를 맺지 않은 주주에게 이사가 충실 의무를 지도록 하는 것은 상법 체계를 훼손시킨다고 지적하자, 조금씩만 손본 개정안을 쏟아내고 있다. 현행 상법에 ‘주주 전체의 정당한 이익 보호 노력’이나 ‘특정 주주 이익·권리 부당 침해 금지’를 추가하거나, 더 나아가 ‘환경·사회 등 회사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사항 고려’ 등을 열거하자는 것이다.

이사에게 ‘환경·사회 요소 고려 의무’를 지우거나 ‘주주 이익 보호 의무’를 지우자는 논의가 특히 중대한 우려를 자아낸다. 우선 기업이 ‘환경 사회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고 한 점은 회사와 이사들에게 법적 안정성이 아닌 혼란을 준다. 주식회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설립된 사기업이며, 공익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기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사회적 책임이 따르나, 이사가 환경과 사회 요소를 고려하거나 노력하는 일은 법문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기업의 재량과 이사의 경영 판단에 맡겨야 하는 영역이다. 기업은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영리 추구나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된다면 스스로 사회적 책임에 앞장선다. 즉 유인책을 쓸 영역이지, 강제할 영역이 아닌 것이다.

상법은 사인 간 상행위나 경제활동의 기본이 되는 사법(私法)이라는 점에서 행정법이나 소송법 같은 공법(公法)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또한 국가 경제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상법이 어느 일방의 주장으로 성급히 개정된다면, 법적 안정성이 훼손된다. 그런 상법에 ‘사회적 책임’ 같은 공적 성향을 강행 규정으로 넣게 되면 기업 자율성이 크게 훼손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경영자의 경영 판단에 해당하며, 시장과 소비자가 최종 판단하면 된다. 사법인 상법에 강행 규정으로 넣어서 기업들이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따질 사안이 결코 아니다. 혹시나 상법 개정안들이 우리 경제가 자유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간과했거나, 주식회사를 공기업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이사의 주주 이익 보호 의무’는 우리 주식회사 법제의 기초를 흔든다. 주식회사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어서, 회사가 망하는 최악의 순간이 와도 주주는 자기가 투자한 만큼만 손해를 보고 철수하면 된다. 회사 역시 주주가 투자한 만큼만 주주에게 책임을 지면 된다. 그런데 개정안은 마치 이사가 회사와 이해관계를 맺은 채권자나 여러 거래업체, 근로자, 소비자 등등은 제쳐두고, 오직 이해관계자의 일부인 주주들을 우선시해야 할 것처럼 말하고 있다. 상법상 회사와 위임 관계에 있는 이사가 회사 이익보다 주주 이익을 우선하게 될 경우,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주식회사 체계 자체를 형해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주주들 구성 역시 다양하다. 주주 중에는 기업의 장기적 성과보다는 단기적 투자 수익률에만 관심을 갖는 주주도 많고 경영권을 위협하는 투기 세력도 있다. 이런 사실을 간과하고 오직 주주 이익 보호라는 당위성만 가지고 상법을 개정한다면 득보다 실이 크다. 주식회사 기본 법리까지 무너뜨리면서 주주 보호 명분을 내세워 상법을 개정한다 해도, 그 입법 목적이 현실에서 제대로 달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상법을 이런 식으로 개정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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