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 불법추심 대책은 ‘수박 겉핥기’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로 인한 생계문제 등 핵심 비켜가
지난 9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일명 ‘미아리 텍사스’의 30대 성매매 종사 여성이 불법 추심에 시달리다 유서를 남기고 숨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불법 채권 추심을 뿌리 뽑아달라”고 지시했고, 서울시와 경찰청 등은 실태 파악에 나서는 동시에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서울시와 경찰청이 발표한 정책이 ‘뒷북성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불법 대부업 근절’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정작 주요 피해자인 성매매 노동자들에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18일 서울시와 경찰에 따르면 두 기관은 이번 사건에서 ‘불법 대부업’에 주목했다.
서울시는 지난 3일 성매매 종사자를 대상으로 불법 대부업 피해 조사를 실시했다. 경찰도 내년 10월까지 국가수사본부 주관으로 불법 사금융 특별단속에 나선다.
하지만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에 관한 내용은 대책에서 보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불법 추심이 피해자 A씨의 자살을 초래한 것은 맞지만, 그가 불법 사채에 손을 뻗은 것은 성매매 집결지를 방치한 결과라는 점을 같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홍미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성매매 산업과 불법 대부업체는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며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착취당하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불법 추심을 신고하라는 등의 정책은 문제를 개인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성매매 종사 여성을 대상으로 한 영업은 불법 대부업계에서 하나의 산업구조로 자리 잡았다. 채무를 갚을 여력이 없고, 성매매 산업에서 벗어나기 힘든 여성을 대상으로 대출을 꼬드기고 고금리의 이자를 받아낸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A씨도 생활비가 필요해 100만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을 대부업체에서 빌렸지만 채무가 한 달 만에 수천만원으로 불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대부업체는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걸 주변에 알리겠다” 등 협박성 문자를 보냈다.
경찰 수사도 ‘신속하고 엄정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경찰은 A씨 지인의 제보를 받고 46일 만에 수사에 착수했다. 김주희 덕성여대 교수는 “성매매 종사 여성이 왜 가난에 시달리며 엄청난 이자를 감수하고 불법 대부업체를 찾게 됐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데, ‘고리대금업자가 문제’라고만 지적하는 정책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성매매 집결지의 현실도 새롭게 조명됐다. 미아리 텍사스는 지난해부터 재개발을 위한 퇴거가 본격화됐다. 손님이 감소하면서 업소 수익도 급격히 줄었다. 지난달 한 업소에서 만난 성매매 노동자 백모씨(35)는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A씨처럼 급전을 빌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주거권과 보상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성북구청 앞에서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미아리 텍사스뿐 아니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588, 경기 파주시 용주골 등 다른 지역 성매매 집결지의 경우도 비슷하다. 이주 보상금은 토지 소유주와 일부 포주들에게 돌아갔지만 성매매 종사 여성과는 무관했다.
이하영 여성인권센터 보다 소장은 “재개발이 추진되면 여성들은 아무런 보상 없이 쫓겨날 상황”이라며 “최소한의 긴급주거비·생계비 등을 공공에서 보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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