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쟁·혼란 용납 못 해” 시진핑 발언 속 고도의 노림수

박민희 기자 2024. 11. 1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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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6일 페루 리마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리마/로이터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각) 페루 리마에서 고별 정상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시진핑 주석은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고 혼란이 나는 것(生戰生亂)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시 주석은 똑같은 발언을 2016~2017년에도 한 적이 있다. 시 주석이 7년여만에 꺼낸 이 발언에는 현재 국제 정세에 대한 복잡한 외교적 계산과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번 회담에서 시 주석은 미·중 관계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은 역사의 숙명이 아니고, ‘신냉전’ 구도에서 미국은 중국과 싸워서도 안 되고 싸워서 이길 수도 없으며, 중국에 대한 억제는 현명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고 실현될 수도 없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 복귀를 앞두고 미국이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대만 독립 반대 △무역·과학기술·인터넷 안보에서 중국의 발전권 △남중국해 △우크라이나 문제와 함께 한반도 문제를 언급하면서,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고 혼란이 나는(生戰生亂)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고, 중국의 전략 안보와 핵심 이익이 위협받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시 주석은 2016년 4월 ‘제5차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외교장관 회의 기조연설에서 “중국은 한반도의 이웃으로서 반도에 전쟁과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쟁과 혼란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고 했다. 2017년 12월14일 베이징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북핵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하고, 한반도에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2016년과 2017년은 한반도 전쟁위기가 위태롭게 고조되던 시기다. 북한은 4~6차 핵 실험을 감행했고 화성14호 등을 비롯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잇따라 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흘리자, 북한은 “괌 주변 타격을 검토 중”이라고 맞받았다. 이런 정세 속에서 중국은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대북 석유제품 수출을 중단했고 군사연습이라며 탱크부대를 압록강변에 배치해 북한을 압박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도 적극 찬성했다.

7년이 지난 지금, 곧 들어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대중국 압박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등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 군사동맹에 준하는 조약을 맺고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는 등 전방위로 밀착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러시아 지원을 위한 대규모 군대를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이 다시 꺼낸 ‘한반도 전쟁 혼란은 용납할 수 없다’는 메시지에는 매우 복잡하고 복합적인 전략적 고려가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은 한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겠다는 메시지다. 시진핑 주석은 15일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북·러 군사협력 심화에 대해 중국이 건설적인 역할을 해달라는 윤 대통령의 요청에 “중국은 역내 정세의 완화를 희망하고 한반도의 긴장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당사자들이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2년 전 발리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며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한국이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이번에는 북한을 포함한 ‘당사자'들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미묘하지만 북한을 견제하면서 한국 쪽에 조금 더 다가서는 미묘한 태도 변화를 보인 것이다.

둘째는 2016~2017년과 마찬가지로 군사적 도발을 통해 한반도 주변 긴장을 고조시키고 북-러 밀착에 나선 북한에 대한 ‘경고’다. 북-중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전략적 우호 협력관계를 이야기하지만, 물밑에서는 불만과 갈등이 확대되고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은 현재 국제정세를 ‘신냉전’으로 규정하고 동북아에서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을 강조하고자 하지만, 중국은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지금 부상하는 것은 중국에 이롭지 않다고 본다. 특히 북한의 러시아 파병은 중국의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이다”라고 했다.

셋째는 트럼프 2기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 핵협상 재개에 대비해 중국이 마련한 대미 협상 카드다. 2016~2017년 북한이 연이은 핵 미사일 도발로 북한과 중국도 갈등했지만 결국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핵 협상으로 나아가자 북한과 중국은 다시 밀착했다. 중국은 ‘북한의 후원자’로서 협상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한권 교수는 “중국은 트럼프가 돌아오는 상황에 대비해 ‘지금 한반도에 전쟁 위험까지 있다’며 북미 핵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중국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이라며 “북미 협상이 재개되면 중국의 입장에선 2016~2017년처럼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고 영향력을 회복하면서 한반도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강조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이번에는 중국이 아닌 러시아를 지렛대로 삼아 북미 협상으로 나아가려 할 수도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협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면 북한도 결국은 러시아에만 의지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중국과도 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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