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사과 의미 모르는 정치인들
"백담사도 가고 감옥도 갔다 왔다. 집사람이 추징금 대납도 했다. 그런데 또 압수수색이라니…," 8년간 철권통치를 했던 독재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했다는 하소연이다. '5월 광주'를 밟고 권좌에 오른 그의 집권기간 중 숱한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거나 꿈과 자유를 차압당했는데, 저런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사과는 없다. 거의 망언 일색이다. 수천 억원 가량의 추징급 완납을 거부하면서 "예금이 29만원뿐"이라고 말해 공분을 샀고, 2008년 총선 당시 자신의 언론 보도에 대해 "젊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아직 감정이 안 좋은가 봐.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라고 말해 논란에 휩싸였다.
2017년 자신이 펴낸 회고록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에 했던 비난은 가관이다. 그는 1980년 5월 계엄군의 무차별적 헬기 사격을 목격한 조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이 발언으로 그는 2019년 3월 조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에 서게 된다. 그는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2021년 사망했다. 끝내 5·18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을 향한 진심어린 사과는 없었다.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현장과 마주한 박근혜 전 대통령, 그는 사과에 너무 인색했다. 사고 발생 13일 만에야 사과를 했다. 정홍원 총리의 '대리 사과'와 사의 표명이 반발에 부딪힌 뒤였다. 그는 "사전에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초동 대응과 수습이 미흡했던 데 대해 뭐라 사죄를 드려야 할지…"라고 말했다. 사과의 공간도 실종자 가족이나 국민 앞이 아니었다. 국무위원들 앞이었다. 사과문에서도 자기 반성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과거로부터 쌓여온 잘못된 적폐들을 바로잡지 못하고…." 사태의 원인을 과거 정부에서 찾고 있었다.
당연히 사과는 부족하고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반성이 전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말을 제대로 듣는데서 시작하지 않았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10년 뒤인 2024년 11월,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국민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는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다.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부인인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과 의혹, '정치브로커' 명태균 씨의 공천 개입 의혹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사과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자신이 사과를 하는 이유도 몰랐다. 한 기자가 기자회견 말미 "국민이 과연 대통령이 무엇에 대해 사과했는 지 어리둥절할 것 같다"고 직격탄을 날리자, 윤 대통령은 "잘못한 게 있으면 딱 집어가지고 '이 부분은 잘못한 거 아니냐'고 하면 그 부분에 대해 사과를 드리겠다"고 답했다.
사과를 원한 이들에게 되려 '내가 무엇 때문에 사과해야 하나'라고 반문한 꼴이다. '개선하겠다'는 앞으로의 다짐과 약속을 찾기 힘든 점은 당연지사다. 결국 윤 대통령을 향한 성남 민심은 쉽게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진 않는다.
야당 지도자도 사과를 모르긴 마찬가지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공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자 "수긍하기 어려운 결론"이라며 "항소를 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선고 다음날인 16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3차 국민행동의 날' 집회에선 "이재명은 결코 죽지 않는다"며 "국민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주인이며, 이 나라의 모든 권력은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 쓰여야 하는데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 아닌 것 같다"고 날을 세웠다.
앞 뒤 순서가 뒤바뀐 것 같다. 각종 의혹에 대한 진위 여부는 향후 재판에서 밝혀지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국민을 향한 사과가 먼저 아닌가. 국민에겐 민생 정책을 위해 힘쓰는 '제1야당 대표'의 모습은 생소하다. 오히려 사법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자리를 활용하는 모습이 익숙하다. 국민이 자신에게 부여한 막중한 책무를 제대로 다하지 못한 셈이다.
이 대표는 그 동안 논란의 중심에 올랐던 점에 대해 머리 숙여 자성해야 한다. 정적에 대한 사과는 몰라도 정치인이라면 국민을 향한 사과는 흔쾌하게 해야 한다.
김세희 정치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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