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시각] 성과급 더 달라는 현대차 계열사가 간과한 것
지난 15일 단행된 현대차그룹 인사에서 고문으로 물러난 여수동 전 현대트랜시스 사장은 이달 초 노동조합 지회장과의 면담에서 “현대로템을 기준으로 한 성과급은 지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5개월째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을 두고 사측과 대립 중인 노조는 “최소한 같은 계열사인 현대로템만큼 제시를 해야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며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기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타결된 현대로템의 임단협 합의안에는 임금 10만2000원 인상과 기본급 500%에 1800만원을 더한 성과급 지급 등의 내용이 담겼다. 앞서 지난 7월 현대차 노사는 기본급 11만2000원 인상, 기본급 500%와 1800만원을 합산한 성과급 지급, 주식 25주 지급 등에 합의했고, 뒤이어 9월에는 기아도 현대차와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현대로템 직원들은 주식 지급 등을 제외하면 현대차·기아와 비슷한 수준의 대우를 받은 셈이다.
현대트랜시스의 경우 사측이 제시한 조건은 임금 9만6000원 인상과 기본급 400%에 1200만원을 더한 성과급 지급이었다. 적게 잡아도 직원 한 사람당 2000만원 이상의 거액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조건이었지만, 노조는 현대로템만큼은 받아야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다른 계열사인 현대제철, 현대위아 등도 노조가 현대트랜시스와 같은 뜻을 보이며, 역시 임금 협상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성과급을 두고 현대로템과 현대트랜시스의 명암이 엇갈린 것은 최근 실적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22년부터 전체 계열사 임금 협상에서 영업이익률을 잣대로 인상 폭과 성과급 등을 정하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로템의 경우 오랜 기간 부진한 실적을 냈지만, 최근 방위산업 부문에서 실적이 크게 개선되며 3분기 영업이익률을 12.6%로 끌어올렸다. 반면 현대트랜시스는 올 상반기 영업이익률이 2.1%에 그쳤다. 현대제철과 현대위아 역시 최근 영업이익률은 각각 1%대, 2%대에 머물고 있다.
현대트랜시스를 비롯한 부품 계열사 노조는 영업이익률을 근거로 성과급을 산정하는 그룹의 기준에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납품 단가를 완성차 계열사인 현대차·기아가 정하기 때문에 눈에 띄게 실적을 개선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부품사 노조는 현대차그룹의 수직 계열화로 인해 현대차·기아에 이익이 집중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룹의 수직 계열화 구조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노조의 입장은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완성차 시장이 어려운 상황을 맞았을 때 많은 독립 부품사들이 납품처를 찾지 못하고 위기를 겪는 반면, 현대차그룹의 지붕 밑에 있는 부품사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납품 물량을 보장 받는다.
현대차그룹 부품사의 계열사 매출 의존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현대트랜시스의 전체 매출에서 현대차·기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이른다. 현대차그룹은 계열사들에 외부 고객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매출을 늘릴 것을 요구하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많다.
여러 계열사 가운데 현대로템은 그룹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제철이나 자동차 생산 설비 등을 제작하는 에코플랜트 부문의 경우 계열사 물량이 많지만,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방산과 철도차량 제작 등은 사실상 그룹과 상관이 없는 사업들이다. 올해 임단협에서 현대로템이 현대차·기아 수준의 후한 대우를 받은 것도 ‘각자도생’에 성공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부품 계열사 입장에서는 불과 3년여 전까지 현대차·기아의 90~95% 수준의 돈을 받다가 갑작스럽게 성과급 산정 방식이 바뀌면서 임금 격차가 벌어지니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협상을 통해 서로의 입장 차를 좁히려는 시도조차 소홀히 한 채 무작정 성과를 끌어올린 현대로템만큼 대우해 달라는 부품사 노조의 주장에는 동의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인해 현대차그룹의 내년 실적 전망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유세 기간 중 공언한 대로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면 현대차·기아의 미국 판매량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부품 계열사의 임단협 진통이 장기간 계속되고,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현대차·기아는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밖에 없다. 다른 계열사와 동등한 보상을 해 달라는 부품사 노조의 고집이 폭우를 피할 안전한 지붕마저 녹슬게 할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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