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체성은 선택 아닌 ‘그대로의 나’

오세진 기자 2024. 11. 1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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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트랜스여성 ‘장미’ 이야기…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을 뿐, 우리 삶도 소중”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인 2021년 11월2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열린 트랜스젠더 추모 행사에서 한 참가자가 ‘트랜스 해방’(Trans Liberation) 글귀가 새겨진 목도리를 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무엇이 성별을 결정할까. 영아는 태어날 때 외부 생식기 모양에 따라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성별로 지정된다. 신체 특성이 전형적인 남성 또는 여성으로 구분되지 않는 ‘간성’(인터섹스)으로 판단되는 영아도 있다. 이 생물학적 성별이 병원에서 작성하는 출생증명서(병원 밖 출산이면 분만에 직접 관여한 사람을 적는 출산사실 증명서면)에 기재되고, 이후 출생신고로 이어진다. 이로써 우리는 법적 성별을 갖는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나의 성별’일까.

성별은 생물학적 성별과 법적 성별이 다가 아니다. 본인의 성별을 여성, 남성, 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성별로 인식하는 내적인 감각이 있다. 내가 스스로 느끼는 성별, 즉 ‘성별 정체성’이다. 우리 곁엔 지정된 성별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치하지 않는 사람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비(非)성소수자가 다수인 사회는 성별 불일치를 느끼는 사람들의 존재를 자꾸만 지우려 하고 그들에게 고통을 가한다. 2024년 11월20일, 차별과 혐오로 생을 마감한 트랜스젠더 사람들을 기리면서 이들의 존엄과 권리를 되새기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자신의 삶을 용기 있게 알린 20대 여성의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ㄱ씨에게 어린 시절 기억은 깜깜하다. 화목한 가정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툴 일이 많았다. 아버지의 외도가 원인이었다.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와 이혼했다. 그때의 충격으로 어릴 적 기억이 거의 없다.

다섯 살 무렵, 유치원을 다닐 때였다. 재롱잔치 당일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옷을 건넸다. 꽃잎 모양을 한 치마에 가까운 옷이었다. 남자아이들은 못 입겠다며 떼를 썼다. 그러나 ㄱ씨는 그 옷이 편했다. 치마처럼 생긴 옷을 입고 기쁘게 춤췄다. 이때의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처음으로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한 때가 아닌가 싶다.

유치원 때 성별 정체성 어렴풋이 인식

트랜스젠더 사람들이 지정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다르다는 사실을 느끼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대체로 이른 나이에 성별 불일치를 경험한다. 2015~2021년 순천향대 서울병원 젠더클리닉에서 호르몬 치료(내분비 호르몬을 외부에서 투여해 본인의 성별 정체성에 부합한 신체 외형으로의 변화를 유도하는 의료적 조처) 또는 성확정 수술을 받은 트랜스여성1 153명과 트랜스남성2 149명, 논바이너리3 35명을 분석한 국내 연구가 있다. 2024년 대한산부인과학회 영문 학술지에 실린 ‘트랜스젠더와 논바이너리 사람들이 처음으로 성별 불일치를 경험하는 나이’ 논문이다. 전체 337명 중 29.1%가 6살 이전에 성별 불일치를 경험했고, 7~12살에 성별 불일치를 경험한 비율은 32.1%다.

ㄱ씨는 체구가 왜소해 어릴 때부터 학교폭력에 시달렸다. 초등학교 같은 반 학생들이 ㄱ씨 실내화를 화장실 변기통에 집어넣었고 필통을 창밖으로 던져 망가뜨렸다. ㄱ씨를 보며 “더럽다”고 수군거렸다. 중학교 진학 뒤에도 괴롭힘은 이어졌다. 학생들이 ㄱ씨 머리를 향해 분필을 던졌다. 당시 ㄱ씨 키는 140㎝가 조금 넘었다. “남자가 그 키로 제대로 살겠냐?” 학생들은 ㄱ씨를 남자로 단정하고 흉봤다.

집에서 왕복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남고로 진학했다. 동네 학교에서 벗어나면 끔찍한 학교생활에서 벗어날 것이라 기대했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남교사들은 수업 중에 ‘남자는 여자의 구멍을 잘 찾아야 한다’는 식의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 또 학생들 사이에서 트랜스젠더는 ‘트젠’으로 불리며 멸칭의 대상으로 통했다. ㄱ씨는 3년 내내 학생들로부터 ‘너희 엄마 트젠이잖아’라는 언어폭력(여자답지 않다는 뜻의 조롱)에 시달렸다. 남학생들 앞에서 신체를 드러내며 체육복을 갈아입어야 했고, 성별 구분 없는 성중립 화장실이 없어 남성용 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괴로웠다.

학교폭력과 괴롭힘, 성중립 화장실 부재

트랜스젠더 사람들 584명에게 ‘중·고교 재학 당시 당신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보기에 제시된 경험 중 한 가지 이상을 경험했다고 밝힌 참여자는 92.3%(539명)였다.(이하 중복응답) 힘들었던 경험 중 ‘성소수자 관련 성교육 부재’가 가장 높은 69.2%였고, ‘성별 정체성에 맞지 않는 교복 착용’이 62.3%, ‘성별 정체성에 맞지 않는 화장실 이용’이 51.7%로 나타났다. ‘체육시간에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탈의실 부재’는 45.9%였다.(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지옥 같은 학창 시절을 버틸 수 있도록 ㄱ씨를 지지한 사람이 있다. ‘장미’다. 중학교 때 친했지만, 전학을 가서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여학생 장미와 고1 때 재회했다. 용돈을 모아 커플링을 맞출 만큼 둘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장미는 안전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누구에게도 말 못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아직 스스로 내가 남자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혼란스러워. 차라리 여자로 살았으면 지금보다 행복했을 것 같아.” 커밍아웃. ㄱ씨가 처음으로 어둡고 답답한 ‘벽장’(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과 성적지향을 숨긴 채 살아야 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나온 순간이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장미에게 커밍아웃을 했지만,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장미가 말문을 열었다. “난 네가 남자건 여자건 중요하지 않아. 여자여도 상관없어. 난 네가 너라서 좋은 거야.” ㄱ씨는 이때부터 자신이 여성임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성별 정체성에 눈을 떴다. 취사선택이 아니다.

ㄱ씨에게 ‘내가 나여도 좋다’는 용기를 불어넣어준 장미. 그러나 원인을 알 수 없는 폐질환으로 장미는 세상을 떠났다. 장례 절차가 끝난 뒤 장미 부모에게 장미가 남긴 유서를 전달받았다. ‘내 이름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달라’는 장미의 마지막 부탁이 적혀 있었다. ㄱ씨는 성인이 되어 ‘장미’로 이름을 바꿨다.

장미씨는 고교 때 상담교사의 도움으로 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다. 그 덕분에 또래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많이 만났다. 행복했다. 이 행복을 다른 청소년 성소수자와 나누고 싶었다. 차별과 혐오 때문에 인생의 끝자락에 위태롭게 서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손을 잡고 싶었다. ‘길’이 되고 싶었다. 장미씨는 상담사의 꿈을 안고 대학 상담학과로 진학했다.

고교 때부터 머리를 길러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머리카락 끝이 허리까지 닿았다. 얼굴에 화장하고 치마와 원피스를 자주 입었다. 성별 정체성과 옷차림, 머리 형태와 같은 성별 표현을 일치시켜 세상이 자신을 여성으로 보길 원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장미씨를 남성으로 본다. 법적 성별이 남성이라 남자 전용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했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게시판에 장미씨 외모를 지적하고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네가 여성복을 입고 다녀도 넌 절대 여성이 될 수 없다’는 악담이 쏟아졌다.

동네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맥주를 살 때 신분증 확인을 요구받는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에 ‘남성’을 뜻하는 숫자 ‘3’이 적혀 있다. 점원이 신분증과 장미씨를 번갈아 본다. 장미씨 본인 여부를 의심하는 시선이고, 장미씨가 은행, 병원, 숙박업소, 관공서, 술집 등 신분증을 제시하는 곳에 갈 때마다 늘 받는 시선이다. 나중엔 신분증상 성별과 외모가 일치하지 않아 취업이 쉽지 않은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수 있다.

2022년 11월2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광장에서 열린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추모 메시지를 적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법률 아닌 ‘지침'으로 성별 정정 기각 “죽고 싶은 심정”

신체 특징을 여성의 형태로 변화시키는 성확정 수술(외부성기 성형·생식능력 제거 수술)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다. 2천만~3천만원에 이르는 비용 부담은 둘째 치고 심장질환 때문에 수술이 불가능하다. 현재 전세계에서 영국, 캐나다, 독일, 오스트리아,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40여 개국이 법적 성별 정정 요건으로 성확정 수술을 요구하지 않는다.(국제 성소수자 단체 ‘ILGA’ 누리집) 한국은 현행 법령상 성확정 수술이 성별 정정 허가요건은 아니다. 일단 성별 정정 요건을 정한 법률 자체가 없다.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대법원이 정한 사무처리지침만 있을 뿐이다. 이 지침에도 성확정 수술은 참고사항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일부 법원에서 성확정 수술을 성별 정정 허가 기준으로 삼고 있다.

2013년 3월 서울서부지법에서 외부성기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남성 5명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여’에서 ‘남’으로 정정하는 것을 허가했다. 그 뒤로 성확정 수술 일부 또는 전부를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사람들의 성별 정정 허가 결정이 다른 지방법원에까지 확산하고 있다. 2024년 4월에도 청주지법 영동지원이 비수술 상태의 트랜스여성 5명의 성별 정정 신청을 받아들였다. 성별 정정이 절실한 장미씨는 희망을 품었다. 성장 환경 진술서와 지인들로부터 받은 인우 보증서, 그리고 성확정 수술을 받을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서와 함께 성별 정정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각종 규범을 따르지 않는 여성, 즉 ‘꾸미지 않고 여성스럽지 않은 여성’을 희화화하거나 조롱하는 문화가 만연하다. 굴곡진 몸매와 이를 드러내는 옷차림, 기다란 머리에 매끈하게 정돈된 피부와 메이크업, 이러한 허상의 ‘여성성’을 갖춘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는 세간의 인식은 트랜스여성에게 더욱 가혹하게 작동한다.”(책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장미씨도 애를 써야 했다. 화장하고, 머리를 손질하고, 목걸이를 목에 걸고, 옷도 갖고 있던 옷 중에서 가장 비싼 원피스를 입고 법정에 출석했다.

심문을 마친 뒤에는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언제쯤 결과가 나올까. 매일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고, 초조해서 잠을 잘 못 잤다. 밥을 먹다가도 손이 떨려 수저를 놓칠 뻔한 일도 있었다. 그렇게 2~3주를 기다렸더니 결과가 나왔다. ‘주문. 이 사건 등록부정정 신청을 기각한다. 이 사건 신청은 이유 없으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수업을 듣던 장미씨는 강의실을 나와 통곡했다.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20대 트랜스여성 장미씨가 트랜스젠더 사람들을 상징하는 무늬가 찍힌 배지를 들고 있다. 강동성심병원 LGBTQ+센터, 고려대 안암병원 젠더클리닉, 국립의료원 산부인과,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색다른의원이 공동으로 하는 ‘한국 트랜스젠더 건강 코호트 연구’에 참여한 사람에게 제공된 배지다.

“나로 살기 위해” 차별의 벽 부딪쳐 나아가기로

하지만 장미씨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법적 성별을 ‘남’에서 ‘여’로 바꿀 때까지 부딪칠 예정이다. 이처럼 ‘나로 살겠다’는 트랜스젠더 사람들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2022년 10월부터 전국 가정법원과 지방법원(가정법원이 없는 지역)이 접수하는 성별 정정 신청 사건을 별도로 분류하고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법원에 각각 26건(2022년 10~12월), 200건(2023년), 170건(2024년 1~9월)의 성별 정정 신청이 제기됐다. 성별 정정 허가율은 차례로 80.8%(21건), 84.5%(169건), 82.9%(141건)로 나타났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을 뿐입니다. 우리 삶도 소중합니다. 혐오하고 차별하지 말아주세요. 또 살아가며 매일매일, 태어난 몸과 내가 원하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괴로움을 느끼고, 저처럼 주변에 있는 실제 트랜스젠더 지인을 잃은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트랜스젠더 여러분, 우리 모두 살아서 만나요.”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1. 출생시 지정성별은 남성이지만 성별 정체성은 여성인 사람

2. 출생시 지정성별은 여성이지만 성별 정체성은 남성인 사람

3.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난, 혹은 성별 이분법을 거부하는 성별 정체성을 가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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